담마의 거울

천사(天使)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16. 07:05

천사(天使)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바싹 마른 노인이 간신히 발을 옮긴다. 양옆에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축하고 있다. 두 아가씨는 빨리빨리 발걸음을 떼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노인은 발을 빨리 옮겨 보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며칠전 점심때 명학공원에서 본 것이다.

 

노인은 왜 공원에 왔을까? 근처 요양병원에서 왔는지 모른다. 두 젊은 아가씨는 요양원 보호자인 것 같다. 마치 아기가 된 듯한 노인은 아기처럼 아장아장 걷는다. 노인의 표정은 당혹하고 절망적이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공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절둑절둑 걷는 사람들을 말한다. 마치 좀비영화에서 본 것처럼 비틀비틀 걷는다. 아마 뇌졸중이 왔을 것이다. 그들은 한때 건강했을 것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나도 안심할 수 없다.

공원에서 본사람들은 천사들이다. 그들이 왜 천사인가? 그들은 '내가 마래에 이렇게 되리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리 보여주기 때문에 하늘의 사절단과 같은 사람들이다.

찬사들이 있다. 하늘의 사절단을 말한다. 생, 노, 병, 사의 사절단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공원에서는 노의 사절단, 병의 사절단을 종종 볼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에 '천사의 경'이 있다. 맛지마니까야 130번 경을 천사의 경이라고 한다. 왜 천사의 경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경의 제목이 빠알리어로 데바뚜따(Devadūta)이기 때문이다. 데바는 하늘 또는 신의 뜻이다. 두따는 사절을 말한다. 그래서 데바두따는 천사(天使)가 된다.

부처님은 도처에 천사들이 있다고 했다. 공원에서 비틀비틀 간신히 한걸음 떼며 걷는 노인도 천사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천사를 외면한다. 보고도 못본채 한다. 그렇게 살다가 같은 처지가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어 갈까?

어떤 사람이 죽었다. 죽어서 야마왕 앞에 섰다. 마치 영화 '신과 함께'의 한 장면을 떠 오르게 한다. 죽음을 관장하는 야마왕은 다음과 같이 추궁하고 심문한다.

"이 사람아, 그대는 세상에서 세 번째 천사가 나타난 것을 보지 못했는가?"

"대왕이여,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아, 인간 가운데 여자나 남자가 병들고 괴로워하는데 중태이고, 스스로 똥과 오줌으로 분칠을 하고, 다른 사람이 일으켜 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앉혀 주어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대왕이여, 보았습니다."

"이 사람아, 지성적이고 성숙한 사람인 그대에게 이와 같이 '나도 병들어야만 하고 질병을 뛰어 넘을 수 없다. 나는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는가?"

"대왕이여, 저는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방일하였습니다."(M130)

야마왕 앞에 선 자는 지적인 자였다. 세상의 지식인이었다. 그럼에도 천사를 보지 못한 것이다. 아니 천사 보기를 회피한 것이다.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배운자의 교만이다.

공원에서 비틀비틀 걷는 사람은 하늘이 보낸 사절과도 같다. 요양원에 누워 있는 사람도 하늘의 사절, 천사이다. 도처에 천사들이 있다.

요양원에 누워 있으면 똥오줌도 가리지 못할 것이다. 어린 아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잘 보면 보인다. 도처에 천사들이 있다. 그럼에도 천사를 보지 못한 것은 일부로 회피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방일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야마왕은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그대는 방일한 탓으로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지 못했다. 어찌 그들은 방일함에 걸맞게 그대를 처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대의 악한 행위는 그대의 어머니나 아버지나 형제나 자매나 친구나 동료나 친지나 친척이나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들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악한 행위는 그대가 스스로 행한 것이다. 그대가 그 과보를 받아야 한다."(M130)

지식인은 천사의 경고를 무시했다. 젊음과 건강이 천년만년 갈 것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오욕락을 즐겼을 것이다. 더구나 불로소득으로 형성된 재물로 감각적 쾌락을 즐겼다면 악행을 한 것이다. 그 과보는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지식인은 삶의 과정에서 천사들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천사의 경고는 어떤 것일까?

첫번째 천사는 아기이다. 똥과 오줌으로 분칠한 천사를 말한다. 이는 태어남과 관련이 있다. 아기천사를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 야마왕은 "나도 태어나야만 하고 태어남을 뛰어 넘을 수 없다. 나는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M130)라는 생각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번째 천사는 노인이다. 어느 정도인가? 이는 "인간 가운데 여자나 남자로 태어나 팔십 세나 구십 세나 일백 세가 되어 늙고, 허리가 서까래처럼 굽어지고, 지팡이를 짚고, 몸을 떨며 걷고, 병들고, 젊음을 잃고, 이빨이 빠지고, 머리가 희어지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대머리가 되고, 주름이 지고, 검버섯이 피어나고, 사지가 얼룩진 것을 본 적이 있는가?"(M130)라며 야마왕이 묻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변에 노인들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형편없이 늙어 버린 모습을 보았을 때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애써 피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젊음의 교만과 건강의 교만으로 살아갈지 모른다.

천사의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천사가 나타났을 때 크게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깨닫는가? "나도 늙어야만 하고 늙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나는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M130)라고 깨닫는 것이다.

세 번째 천사는 병에 대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이다.

네 번째 천사는 형벌에 대한 것이다. 오계를 어겨서 그로 인해 가혹한 형벌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 "참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현세에서도 이와 같은 여러 종류의 형벌을 받는다. 하물며 다른 세상에서 이랴?"(M130)라며 생각하라고 했다.

다섯 번째 천사는 죽음에 대한 것이다. 시체를 보는 것에 대해서 찬사를 봤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 "나도 죽어야만 하고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다. 나는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좋겠다."(M130)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맛지마니까야에 따르면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천사가 있다. 태어남의 천사, 늙음의 천사, 질병의 천사, 형벌의 천사, 그리고 죽음의 천사를 말한다. 이와 같은 천사들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애써 회피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젊음의 교만, 건강의 교만, 삶의 교만으로 살아간다.

젊음은 늙음에 종속되고 만다. 젊음은 늙음을 벗어날 수 없다. 젊음의 교만은 늙음으로 인하여 부서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젊음과 이 건강과 이 삶이 천년만년 계속될 것처럼 즐기며 살아 간다.

젊음은 늙음에 종속되고, 건강은 질병에 종속되고, 삶은 죽음에 종속된다. 생, 노, 병, 벌, 사라는 다섯 천사가 경고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게으르게 살아간다. 그 결과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갖가지 악행을 저지른다. 그 결과 죽음의 신 야마왕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야마왕은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 무시무시한 지옥의 과보에 대해서 설명한다. 경에 따르면 대분뇨지옥, 대열지옥, 대연면수지옥, 대검엽지옥 등 갖가지 지옥이 있다. 고통을 받는데 간격이 없는 아비지옥이다. 이런 지옥에 대해서 경에서는 "그에게 악업이 다하지 않는 한, 그는 죽지도 못한다."(M130)라고 했다. 정말 이런 지옥은 있는 것일까? 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다른 수행자나 성직자로부터 듣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알고, 실제로 보고, 실제로 발견한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M130)

회의론자들이 있다. 그들은 경전에서 초월적인 이야기나 신통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 것 같다. 부처님이 경전에서 지옥이야기한 것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분명하게 말했다. "내가 실제로 알고, 실제로 보고, 실제로 발견한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M130)라고.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죽어서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경전을 통해서 아는 것이다. 더구나 부처님은 실제로 있다고 했다.

초기경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에 회의론자들은 비웃는다. 부처님이 지옥이 있다고 했을 때 회의론자들은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지옥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부정한다면 배운 자의 교만에 해당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지성적이고 성숙한 사람인 그대에게"(M130)라며 경고했다.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사의 경고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사후세계에 대한 것이다. 이는 죽음과 관련 있다. 그런데 죽음은 태어남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죽음과 태어남에 대해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행승들이여, 이를테면 문이 달린 두 채의 집이 있는데, 거기에 눈 있는 자가 가운데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고 나가고 찾아오고 떠나는 것을 보듯,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해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죽거나 태어나고 비천하거나 존귀하고, 아름답거나 추하고, 행복하거나 불행한 모든 뭇삶을 본다."(M130)

부처님은 천안통으로 중생의 갖가지 삶을 본다고 했다. 업보에 따른 삶이다. 그런데 죽음과 태어남에 대해서 문의 비유로 설명했다. 이 방에서 저 방에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방은 이 세상과 같은 것이고 저 방은 저 세상과 같은 것이다. 문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다.

생과 사의 사이에 문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틈이 없음을 말한다. 죽음과 탄생에 틈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간에서는 중유가 존재할 수 없다. 영혼과 같은 중간적 존재가 있어서 죽음의 왕으로부터 심판 받아 저 세상이 결정된다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그럼에도 경에서는 야마왕이 등장한다. 이는 방편으로 받어 들여져야 한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을 말한다.

“천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는 방일하네.
비속한 몸을 받는 사람들
그들은 오랜 세월 슬퍼한다.

천사의 경고를 받고 나서야
이 세상에서 참사람들은
언제나 고귀한 가르침에
교훈을 찾고 방일하지 않는다.

집착에서 두려움을 보고
태어남과 죽음의 원인에
집착하지 않아 해탈하고
태어남과 죽음을 부수었다.

안온에 도달하여 행복하고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얻어
모든 원한과 두려움을 뛰어넘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M130)

2022-08-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