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새벽마중
오늘 아침 일찍 가고자 했다. 새벽 네 시 반 이전에 일어났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이 무려 세 개가 밀려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모두 처리해야 할 것들이다. 시간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일찍 나가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일찍 나가도 밥은 먹어야 한다. 아침 밥은 김치찌개로 준비 했다. 내가 만드는 김치찌개는 간단하다. 무를 비교적 얇게 썰어 놓는다. 여기에 양파와 묵은지를 넣는다. 묵은지 국물을 한국자 넣는 것이 포인트이다.
김치찌개에 조기나 고등어가 있으면 좋다. 없으면 멸치를 넣으면 된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은 마늘이다. 마늘 다진 것을 반스푼 넣는다. 나만의 비법은 된장 한스푼을 넣는 것이다. 이렇게 15분 가량 끓이면 얼큰하면서도 부두러운 김치찌개가 완성된다.
아침에 밥을 한공기 먹었다. 아침부터 힘을 내려면 잘 먹어야 한다. 빵도 좋고 간편식도 좋지만 힘을 쓰는데 있어서 밥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새벽이 되면 설레인다. 하루 해를 보기 위한 것이다. 해가 뜨기 전에 새벽노을을 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새벽마중이라 할 수 있다.
일터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새벽마중을 하고자 했다. 오피스텔 18층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로비에 서 있으면 동쪽으로 평촌신도시가 보인다. 5시 37분에 도착했다.
집에서 5시 25분에 나섰다. 차로 이동할 때 세상은 캄캄 했다. 그러나 일이십분도 되지 않아 세상이 바뀌는 것을 안다. 꼭대기층에 올라 갔을 때 세상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동쪽하늘을 사진 촬영했다. 해뜨기 전이다. 거뭇한 하늘에 하나의 구름이 화살처럼 가로질러 있다. 마천루 저편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무릇무릇 피어 오른다. 구름처럼 보인다. 구름이라 하지만 같은 구름은 아니다. 아마도 평촌 열병합발전소에서 내뿜는 공해물질일 것이다.
동쪽 하늘을 바로 보고 있으면 자연과 인공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끼지만 마천루를 보면서도 역시 경외감을 느낀다. 하늘의 구름은 모습을 달리하며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지만 도시의 마천루는 요지부동이다.
동쪽 하늘을 바라 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사진 찍었다. 그때 미화원이 올라왔다. 아침 6시 이전임에도 일찍 나온다. 때로 경비원과 마주치기도 한다.
미화원이 말을 걸었다. 아무도 없는 18층 꼭대기 엘리베이터 로비에 서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미화원은 궁금했는지 “뭐하세요?”라고 물어 보았다. 이에 “새벽 사진 찍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사진은 30분 동안 찍었다. 시간간격을 두고 찍으니 구름이 변화는 모습이 잡혔다. 새벽 5시 37분부터 아침 6시 7분까지 있었다.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하늘의 조화를 쳐다 보았다. 점차 밝아 지면서 구름은 붉은 기운이 되었다.
화살처럼 생긴 날카로운 구름은 어느덧 한마리 커다란 용으로 변해 있었다. 붉은 비늘의 연속을 계속 바라 보았다. 누군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자 저편에서 한마리 봉황이 나타난듯 보였다. 불과 이십분 전까지 허공이었는데 어느새 봉황 한마리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하늘의 용과 봉황이 점차 가까이 다가갔다. 절정의 순간이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해가 나오려 하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내려 오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날 샌다’는 말이 있다. 새벽하늘 감상할 때 해가 뜨면 날 새는 것이다.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해뜨기 전에 새벽에 노을이 최상이다. 적층운이 형성되었을 때 최상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불청객이 있다. 열병합발전소에서 내뿜는 시컨먼 연기로 인하여 하늘이 오염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새벽하늘 바라보기를 했다. 이를 새벽마중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새벽마중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새벽하늘은 경이롭다는 것이다. 특히 구름이 끼여 있을 때 그렇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회색에서 붉음으로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할 때 경외를 느낀다. 이는 다름 아닌 ‘숭고함’이다.
밤하늘을 별을 쳐다 볼 때 무한을 느낀다. 바다의 수평선에서도 무한을 느낀다. 지평선도 다르지 않다. 실크로드 여행할 때 고비 사막의 지평선을 보았을 때 무한을 느꼈다. 새벽에 새벽노을을 접할 때도 무한을 본다.
무한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신비한 것이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의 한계를 넘어선 것에서는 경외감을 느낀다. 생명에 대한 것도 그렇다.
이제까지 살아 오면서 가장 신비하게 느끼는 것은 생명이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신비하고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생명에는 동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식물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에는 30여개의 화분이 있다. 출근하면 먼저 식물의 상태부터 챙긴다. 특히 난이 염려스럽다. 말라 죽는 잎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런데 식물은 물만 주어도 잘 자란다는 것이다. 신비로운 일이다. 이를 식물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 식물만 생명이 있을까? 산천도 생명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바위와 흙, 물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람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 수, 화, 풍이 모두 생명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는 ‘항상성’으로 설명한다. 몸의 체온은 항상 36.5도로 유지되는데 이는 항상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 항상성이 있을까? 놀랍게도 지구도 항상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온다는 늘 15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지구의 산소 농도는 21%이고 바다의 염분농도는 3.5%로 늘 일정하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지구는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을까? 이는 동물과 식물과 무생물의 순환작용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인체에서 상호순환작용으로 인하여 항상성이 유지되고 있듯이, 지구에서도 동식물과 지수화풍의 상호순환작용으로 인하여 항상성이 유지되고 있음을 말한다.
항상성이 유지되고 있다면 생명이라고 했다. 항상성 측면에서 본다면 지구도 생명이나 다름 없다. 지구만 생명체일까? 지구를 포함하고 있는 태양계 역시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태양계도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항상성이 유지되고 있는 한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태양계도 생명체로 본다면 우주도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늘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생명체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도 우주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세포가 있다. 그런데 세포는 그것 자체로 생명체라는 것이다. 항성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생명체의 연합이 된다. 그런데 나는 지구의 일원이다. 지구는 태양계의 일원이다. 태양계는 우주의 일원이 된다. 아주 작은 세포에서부터 상상할 수 없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요즘 새벽 마중을 하고 있다. 새벽이 되면 마음이 설렌다. 해가 뜨기 전에 밝아지기 전에 동쪽하늘을 봐야 한다.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때로 붉게 물든 새벽노을과 같은 장관을 본다. 그러나 좀처럼 보여 주지 않는다.
오늘 새벽하늘은 용과 봉황이 만났다. 붉게 물든 커다란 비늘을 가진 용과 역시 불게 물든 커다란 날개를 가진 봉황이 랑데부 하는 장면을 보았다. 자연의 경이, 자연의 경외를 보았다. 이는 다름 아닌 숭고함이다.
하늘은 가이 없다. 가이 없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무한을 본다. 그러나 무한은 헤아릴 수 없다.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찬 우주이다.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같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나도 살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다. 이는 자연의 경이나 경외를 뛰어넘는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숭고함이다. 오늘 새벽하늘을 보면서 숭고한 새벽마중을 했다.
2022-09-0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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