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진실을 고백하여 힘을 불러오는 진실선언

담마다사 이병욱 2022. 9. 12. 07:57

진실을 고백하여 힘을 불러오는 진실선언

 

 

와로 와란뉴 와라도 와라하로~”이미우이 음악이 흐르는 아침이다. 오늘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라따나경을 들었다. 매일 아침 듣는 것이다. 벌써 15년되었다.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듣는다. 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는 승리의 노래를 듣는다. 자야망갈라가타를 말한다.

 

라따나경 13번 게송은 부처님에 대한 예경과 찬탄에 대한 것이다. 게송은 와로 와란뉴 와라도 와라하로~ (Varo varaññū varado varāharo)”(Stn.234)로 시작된다. 이 말은 위없는 것을 알고, 위없는 것을 주고, 위없는 것을 가져오는, 위없는 님께서라는 뜻이다. 위없는 담마를 설하신 부처님에 대하여 훌륭한 보배라는 뜻이다. 이는 다름 아닌 진실선언이다.

 

라따나경 17게송은 후렴구가 있다. 후렴구는 공통적으로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Etena saccena suvatthi hotu)”로 끝난다. 이 문구는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진실선언이다.

 

진실선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타카 교정본을 보다가 진실선언과 관련된 자타카를 알게 되었다. 게송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스스로 기억하는 한,

철이 든 지금까지

고의적으로 한 생명도

나는 해친 적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진리의 선언으로

내가 안전하게 돌아가기를!”(Jat.463)

 

 

이 게송은 쑵빠라까의 전생 이야기(Suppārakajātaka: Jat.463)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보살이 현자로 살았을 때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보살은 진실선언을 했다. 보살은 한번도 고의로 살생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위기에 처했을 때 위와 같은 게송으로 진실선언을 했다.

 

양심선언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봤다. 그러나 진실선언이라는 말은 생소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아도 진실선언에 대한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니까야에서는 숫따니빠따 라따나경에 진실선언이 등장한다. 자타카에서는 여러 자타카에서 발견된다.

 

양심선언은 개인의 양심과 과오를 고백하는 행위를 말한다. 진실선언도 이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양심선언과 진실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안전과 수호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타카 주석에 따르면 진실선언에 대하여 진실을 고백하여 힘을 불러오는 것을 말한다.”라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타카에서 진실선언에 대한 것을 보면 에떼나 삿짜밧제나 솟팅 나바 니밧따뚜띠(Etena saccavajjena, sotthi nāvā nivattatūti)”라고 했다. 여기서 진실선언이라는 말은 삿짜밧자(saccavajja)이다. 진실을 말함으로 인하여 장애가 멈추고 새로운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진실선언은 맛지마니까야 앙굴리말라의 경’(M86)에서도 발견된다.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앙굴리말라에게 사밧티 시로 가서 출산한 어느 부인에게 가라고 했다. 부인에게 가서 자매여, 내가 태어난 이래 나는 의도적으로 뭇삶의 생명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진실로 인하여 당신이 잘 되고 당신의 아기가 잘 되길 바랍니다.”(M86)라고 말하라고 했다.

 

앙굴리말라는 연쇄살인자 출신이다. 부처님에게 감화되어서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 앙굴리말라에게 내가 태어난 이래 나는 의도적으로 뭇삶의 생명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라며 진실선언을 하라고 했다. 이에 앙굴리말라는 세존이시여, 저는 의도적으로 뭇삶의 생명을 빼앗았는데, 저보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라는 것입니까?”(M86)라며 반문했다.

 

앙굴리말라는 출가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죽이지 않았다고 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답해 주었다.

 

 

앙굴리말라여, 그렇다면, 그대는 지금 싸밧띠 시로 가라. 가서 그 부인에게 자매여, 내가 고귀한 태어남으로 거듭난 이래 나는 의도적으로 뭇 삶의 생명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진실로 당신이 잘되고 당신의 아이가 잘되길 바랍니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라.”(M86)

 

 

부처님은 고귀한 태어남(āriyā jāti)’이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고귀한 태어남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성자로 태어난 것을 말한다. 몸은 예전의 앙굴리말라 그대로의 몸이지만 정신은 성자의 계보로 바뀐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어 갔을 때 성자로 거듭 태어남(āriyāya jātiyā jāto)’이라고 했다.

 

누구나 거듭 태어날 수 있다. 현재의 자신을 죽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출가를 하는 것도 거듭 태어남에 해당된다. 이전의 나는 죽고 없는 것이다. 몸은 그대로이지만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것이다. 앙굴리말라도 그랬다.

 

앙굴리말라는 이전에는 연쇄살인자였다. 그러나 부처님 교단에 들어 와서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출가한 것 자체가 새로운 태어남이다. 이전의 앙굴리말라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더 이상 중생이 아니다. 성자의 흐름에 들어선 순간 성자의 계보에 들어간 것이 된다.

 

연쇄살인자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만나서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앙굴리말라는 예전에 나는 흉적으로서 앙굴리말라라고 알려졌다. 커다란 폭류에 휩쓸렸으나 부처님께 안식처를 얻었네.”(M86)라며 게송으로 노래했다.

 

앙굴리말라는 성자로 거듭 태어났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네 가지 악한 운명을 벗어나고, 또한 여섯 가지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Stn.231)라고 했다.성자의 흐름에 들면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와 같은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고, 부모를 살해하는 등 육무간죄를 저지르지 않음을 말한다.

 

앙굴리말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성자로 거듭 태어났을 때 의도적으로 살해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부인한테 가서 부인에게 진실선언을 하라고 했다. 부인에게 자매여, 내가 고귀한 태어남으로 거듭난 이래 나는 의도적으로 뭇 삶의 생명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진실로 당신이 잘되고 당신의 아이가 잘되길 바랍니다.”(M86)라며 진실선언을 하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날 남방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앙굴리말라의 진실선언문은 수호경으로 간주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을 위한 수호경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남방에서는 스님들이 분만에 가까운 임신한 여인을 위하여 수호주문으로 자주 외운다고 한다.

 

양심선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선언은 누구나 할 수 없다. 진실한 삶을 산 자가 진실선언을 할 수 있다. 진리의 삶을 산 자가 진리선언을 할 수 있다. 진실선언과 진리의 선언은 삿짜밧자(saccavajja)로 같은 날이다.

 

진실이 아닌 것이나 진리가 아닌 것은 선언할 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이고 진리이다. 진리의 삶을 산 자가 위기에 닥쳤을 때 진실선언을 하면 진실의 힘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라따나경(Sn.2.1)이 테라와다불교에서 수호경이 된 이유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오늘도 하루를 라따나경으로 시작했다. 이미우이의 라따나경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어느 게송이든지 아름답다. 붓다와 담마와 상가에 대하여 찬탄하고 예경하는 게송이다. 각 게송마다 공통적으로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라는 후렴구가 붙는다.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진실선언이다. 진실을 고백하여 힘을 불러 오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로 모두 행복하기를!

 

 

2022-09-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