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슬퍼하지 마라, 무엇을 근심하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2. 9. 20. 13:42

슬퍼하지 마라, 무엇을 근심하는가?

 

 

나는 세상사에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사람이 죽었을 때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이 들어 돌아가신 어른들은 그다지 슬프지 않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죽으면 무척 슬퍼진다. 자신의 자식이라면 어떠할까?

 

난다마따는 아들이 죽었을 때 조금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존자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들이 붙잡힐 때나 붙잡혀 있을 때나 포박되었을 때나 상처받을 때나 살해될 때나 살해되었을 때 저는 저의 마음의 변화를 알지 못했습니다.(A7.53)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난다마따의 평정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경을 읽어보면 난다마따의 수행력으로 본다. 난다마따는 부처님의 재가여제자중에서 ‘선정을 닦는 님 가운데 제일(jhāyīna agga)’로 알려져 있다. 아나함의 경지에 오른 난다마따는 탐욕과 성냄이라는 오염원이 뿌리째 뽑혔기 때문에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범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자타카를 읽고 있다. 교정본이다. 지난 2월에 교정본을 한번 읽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러나 길지 않다. 자타카 451에서 500번까지 자타카를 읽고 있다. 편집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시기에 작은 부분을 맡아 다시 읽게 되었다.

 

자타카 461번은 다싸라타의 본생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461번 자타카에 따르면 아버지를 읽은 한 자산가가 있었다. 자산가는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하여 무척 슬퍼했다. 이에 부처님은 청신사여, 옛 현자들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를 있는 그대로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Jat.461)라고 말해 주었다.

 

현자들은 슬픈 일을 당해도 슬퍼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슬퍼해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전생에 현자로 살았을 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열 수의 무상에 대한 게송이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말해도

수호할 수 없는 것에 관하여

현명한 자, 총명한 자가

어찌 자신을 괴롭힐 것인가?”(Jak.1614)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리석은 이도 현명한 이도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Jak.1615)

 

결국 무르익은 과일처럼

항상 떨어져야 하는 두려움에 처한다.

이처럼 태어난 자들은 죽어야 하고

언제나 죽음의 두려움에 떨어진다.” (Jak.1616)

 

아침에 만난 많은 사람들,

저녁에는 몇몇은 보이지 않는다.

저녁에 만난 많은 사람들,

아침에 몇몇은 보이지 않는다.” (Jak.1617)

 

미혹한 자가 자신을 해치며,

비탄한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명한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다.” (Jak.1618)

 

자신을 해치면서

몸은 여의고 추하게 된다.

그렇다고 망자를 수호할 수도 없으니,

비탄한들 아무 이익이 없다.” (Jak.1619)

 

단호하고 학식있고

총명하고 현명한 님이라면,

불난 보금자리를 물로 끄듯,

바람이 솜을 날리듯,

생겨난 슬픔을 없애야 하리.” (Jak.1620)

 

죽어야 할 자는 홀로 죽고

홀로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다.

모든 뭇삶들의 궁극의

행복은 타자와의 결합이다.” (Jak.1621)

 

그러므로 현명하고 학식 있는 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살펴서

슬픔이 크다 해도 가르침을 알아서

마음과 정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Jak.1622)

 

나는 친족들에게

영예를 부여하고 권리를 누리게 하고

그들을 부양하리라.

그리고 다른 이들을 수호할 것이다.

이것이 현자의 할 이다.” (Jak.1623)

 

 

보살이 왕자였을 때 아버지가 죽었는데 두 동생이 슬퍼하자 열 수의 시를 읊은 것이다. 게송을 보면 숫따니빠따 화살의 경과 일치하는 게송도 있다. 결국 모두 죽어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는데 현자들은 이치를 알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다는 게송이다.

 

현자들은 가까운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aṭṭhalokadhamma)’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한역으로는 팔세법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득, 불익, 명예, 불명예, 칭찬, 비난, 행복, 불행을 말한다.

 

현자는 이득이 생겨나도 기뻐하지 않고 불익이 생겨도 낙담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명예와 불명예에도 해당되고, 칭찬과 비난에도 적용된다. 당연히 행복과 불행에도 초연하다. 그래서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를 추가하고 있다.

 

 

이득과 손실, 명예와 치욕

비난과 칭찬, 행복과 불행

이것들은 인간 세상의 무상한 원리이니

뽓따빠다여, 슬퍼하지 마라.

무엇을 근심하는가?”(Jat.329)

 

 

세상 살다 보면 이익 볼 때도 있고 손해 볼 때도 있다. 주식시장에서 이익과 손실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작은 이익에 환호하고 작은 손실에 낙담한다면 어리석다.

 

세상 살다 보면 명예도 있고 치욕도 있다. 지금 영예로운 자는 항상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만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명예가 있으면 불명예는 있기 마련이다.

 

세상 살다 보면 비난 받을 때도 있고 칭찬 받을 때도 있다. 비난 받는다고 발끈한다거나 칭찬 받는다고 우쭐한다면 마음이 어린 아이 같은 것이다.

 

지금 행복하다고 하여 이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모든 행복은 불행으로 귀결되고 만다.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를 안다면 불행에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여덟 가지 법이 있다고 했다. 이를 팔세법이라고 한다. 또는 세속팔풍이라고 한다. 마치 팔랑개비처럼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고 하여 팔풍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속 팔풍은 무상하다는 것이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 것이다.

 

바람개비는 바람 부는 대로 방향을 바꾼다. 이득과 손실,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라는 바람은 늘 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면 범부의 삶이다. 그러나 현자는 저 높은 산에 있는 바위산과도 같다고 했다. 그 어떤 강력한 바람이 불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2022-09-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