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시간이 없다. 몹시 바쁘다. 정년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생업이 있어서 바쁘다. 납기는 지켜 주어야 한다. 어제도 밤 늦게까지 작업했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럼에도 글은 써야 한다. 매일 한 개 이상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일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글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경전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고 게송을 외우는 것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고 외운 것을 암송하는 것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다.
요즘 자타카 교정본을 보고 있다. 지난 2월과 3월에 교정본을 보았지만 이제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 교정이 될 것 같다. 통합본으로 출간될 것이기 때문에 인쇄와 제본하는데 한달 보름 걸릴 것이라고 한다. 잘 하면 연말에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출간되는 빠알리 원문 직역 자타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타카 교정본에서 3권을 보고 있다. 3권을 반으로 쪼갠 것으로 후반부에 대한 것이다. 450번 자타카에서 500번 자타까까지 50개 자타카에 대한 것이다. 이번주 니까야 모임이 있는데 그 이전까지는 다 읽어야 한다.
오늘 새벽 자타카를 읽었다. 교정본 읽을 시간이 없어서 새벽에 본 것이다. 모두 세 개의 자타카를 읽었다.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모두 삶에 도움 되는 것들이다. 특히 재가의 삶에서 그렇다.
남방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자타카가 가장 인기 있는 경전이라고 한다. 실제로 읽어 보니 삶의 지혜로 가득하다. 이는 출가수행승 위주로 되어 있는 사부니까야와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자타카에는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와 같은 교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속에 숨어 있다. 부처님이 전생로 보살에 살 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부처님이 자타카를 설할 때는 현실에서 발생된 이야기가 과거 생에도 똑같이 발생했음을 알려 준다.
자타카를 보면 중생들은 매 생마다 똑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는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지금 하고 있는 행위는 과거 생에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타카를 보면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그러했다.’라는 문구가 매 자타카마다 정형구로 실려 있다.
경전에서 좋은 글을 읽으면 기억해 두고자 한다. 가장 확실환 것은 글로 쓰는 것이다.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려 놓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다른 글에 인용도 가능하다. 오늘 새벽 읽은 ‘물수리의 큰 본생이야기’(Jat.486)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부처님 당시 사밧티 시에 어느 재가신도가 살았다. 그런데 자타카에 따르면 놀랍게도 이 재가신도는 부처님과도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재가신도가 부처님과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오늘날 스님과 친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느 재가신도는 나이가 되어서 결혼하고자 했다. 그러나 영락한 가문의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어느 훌륭한 가문의 여인에게 청혼했다. 친구를 보내서 청혼한 것이다. 이럴 경우 성사되기 힘들다. 조건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인은 조건을 하나 걸었다. 친구에게 “그에게 할 일이 생겼을 때에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벗이나 친구가 있습니까?”(Jat.486)라며 물어 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조건이다.
결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맞아야 한다. 중매는 물론 연애 결혼 하는데 있어서도 조건을 따진다. 하물며 결혼전문 업체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에 대하여 학력, 직업, 지역 등 갖가지 정보를 입력해 놓고 등급을 매긴다. 서로 조건이 맞는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여인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다. 딱 하나 물어 보았다. 그것은 친구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진실한 친구를 말한다. 친구 중의 친구인 절친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할 일이 생겼을 때에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벗이나 친구가 있습니까?”(Jat.486)라며 물어 본 것이다.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이다. 이는 법구경에서 “일이 일어났을 때는 벗이 행복이고”(Dhp.331)라는 가르침으로도 알 수 있다. 가난한 자는 과연 친구가 있었을까?
가난한 자는 친구가 없었다. 여인에게 청혼을 했으나 거절 당한 것과 다름 없다. 여인은 “그렇다면, 그가 먼저 친구를 만들게 하십시오.”라며 돌려 보냈다.
가난한 남자는 여인의 청혼을 거절 당했다. 친구를 만들어야 청혼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가난한 남자는 여인의 훈계에 따라 친구만들기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그래서 먼저 성문에 있는 네 문지기를 친구로 만들었다. 이어서 시장, 사력관, 대신도 친구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장군과 부왕과도 친구가 되었다. 더구나 왕도 친구로 만들었다.
가난한 남자의 친구만들기 프로젝트는 계속 되었다. 자타카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여든 명의 대장로들과 아난다 장로와 함께 마침내 여래와도 친구를 만들었다.”(Jat.486)라고 했다.
가난한 남자는 왕은 물론 부처님까지 친구를 만들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친구는 지위와 무관한 것이다. 우정을 나누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왕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심지어 부처님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부처님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이는 “세존을 좋은 벗으로 삼아 (Mamañhi kalyāṇamittaṃ)”(S3.18)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청정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 부처님을 수행도반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가난한 남자는 사밧티 시에서 모든 사람들과 친구를 맺었다. 이에 여인은 청혼을 받아 들였다. 남자는 왕을 친구로 두었기 때문에 왕이 선물을 보내 왔다. 그의 아내는 왕의 선물을 부왕에게 주고, 부왕이 준 선물을 장군에게 주고, 이런 식으로 모든 친구들을 연결 시켰다. 이렛날이 되었을 때 부처님을 비롯하여 오백명의 수행승들에게 큰 공양을 베풀었다.
가난한 남자 밋따반다까는 아내의 말을 들어서 크게 성공했다. 이에 부처님은 “벗들이여, 밋따반다까는 자신의 아내에 의지해서 그녀의 말을 따라 모두와 친구를 만들어 왕으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고, 또한 여래와 친구가 되어 그 두 부부가 흐름에 든 경지를 얻었다.”(Jat.486)라고 말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밋따반다까는 이번 생에서만 아내의 말을 잘 들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과거생에도 그랬다는 것이다. 전생에 두 부부는 수컷 매와 암컷 매였다. 이에 대한 전생담이 ‘물수리의 큰 본생이야기(mahāukkusajātaka)’(Jat.486)에 실려 있다.
두 부부는 전생에서 매부부로 살았다. 그때에도 수컷 매는 암컷 매에게 “나의 아내가 되어 주시오.”라며 청혼을 했다. 그때에도 암컷 매는 “우리에게 생겨난 두려움이나 고통을 제거해줄 수 있는 친구나 벗을 얻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먼저 친구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수컷 매는 여기저기에 친구를 만들었다. 자타카에 따르면 동쪽에 사는 독수리왕과 친구를 맺었고, 북쪽에는 사자, 호수 한복판에는 거북이와 친구를 맺었다.
친구가 왜 필요한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수컷 매는 암컷 매의 훈계에 따라 독수리, 사자, 거북이와 친구를 맺었다. 매 부부는 새끼가 사냥꾼들에게 잡혀 먹게 될 위기에 처하자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매 부부는 독수리와 거북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사냥꾼을 물리 칠 수 있었다. 이들로부터도 새끼를 보호할 수 없었을 때 최후로 사자가 나타났을 것이다. 사자가 한번 포효하면 사냥꾼들은 모두 도망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전생에 보살로 살 때 사자였다. 수컷 매가 암컷 매의 훈계를 받아 들여서 사자와도 친구를 만들었기 때문에 새끼가 잡혀 먹을 위기에 빠졌을 때 도움을 준 것이다.
“벗은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하기 어려운 것을 하고,
그리고 또한 그에게
참기 어려운 폭언을 참아내네.
그에게 비밀을 고백하면,
그는 비밀을 지켜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가난할 때 경멸하지 않네.
세상에 이와 같은 것들이
발견되는 사람이 있다면,
벗을 바라는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을
벗으로 사귀어야 하리.”(A7.36)
앙굿따라니까야 ‘벗의 경(mittasutta)’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게송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라는 말이다. 이 정도 된다면 친구중의 친구, 절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우정의 가르침이 많다. 상대적으로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많지 않다. 우정에 대한 가르침은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되지만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는 법구경에서 “사랑하는 자 때문에 슬픔이 생겨난다.”(Dhp.212)라고 하는 가르침에서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자에게서 왜 슬픔이 생겨날까?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기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슬픔이 생겨난다는 것은 결국 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도 갖지 말라.”(Dhp.210)라고 했다. 더 나아가 “사랑하지 않는 자도 갖지 말라.”(Dhp.210)라고 했다.
사랑하는 자를 만들지도 말고 사랑하지 않는 자를 갖지도 말라고 했다. 왜 그럴까? 이는 “사랑하는 자는 만나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만남이 괴로움이다.”(Dhp.210)라고 했다. 이는 고성제의 팔고 중에서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증회고(怨憎會苦)에 대한 것이다.
사랑하는 자를 만들면 괴로움의 뿌리가 되기 쉽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두려움이 생겨난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애정과 우정은 다른 것이다. 애정은 사랑하는 자에게서 생겨나는 것이지만 우정은 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사랑은 이성에 대한 것이지만 우정은 성을 초월한다. 우정은 성을 초월하고 나이도 초월하고 심지어 지위도 초월한다. 가난한 남자 밋따반다까가 왕과 부처님과 우정의 관계를 유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랑에는 조건이 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따져 보고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우정에는 조건이 없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왕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부처님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우정을 맺어 놓으면 필요할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때로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친구도 친구 나름이라는 것이다. 술친구는 친구라고 볼 수 없다. 향상과 성장으로 이끄는 친구가 좋은 친구이다.
가장 좋은 친구, 친구중의 친구, 베스트 프렌드가 있다. 이는 “비밀을 털어 놓고 비밀을 지켜 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목숨도 그를 위해 버립니다.”(D31.16)라고 했다. 이런 친구 어디 없을까?
일터에 나와서 아침 7시 10분부터 자판을 쳤다. 현재시각 8시 37분이다. 이제 9시가 되면 고객사 사람들이 출근할 시간이다. 아침시간을 활용해서 글을 하나 완성했다.
지난 십여년 동안 이렇게 아침 시간을 이용하여 쓴 글이 수천개에 달한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바쁜 삶을 산다. 이렇게 초치기, 분치기 할 때 살아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우정에 대해서 써 보았다. 사랑보다 우정이다. 부처님이 왜 사랑보다 우정을 강조했는지에 대한 것이 자타카에 실려 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친구를 만드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 두려울 때 피난처가 되어 줄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남는 것은 친구밖에 없다. 사랑하는 자는 세월이 가면 사라지지만 친구는 사귀어 두면 계속 남아 있다. 사랑은 슬픔과 두려움을 주지만 우정은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연인보다 친구이고, 사랑보다 우정이다.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2022-09-2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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