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2. 9. 25. 07:33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 몸이 나의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숨쉬기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호흡한다. 또 하나 들 수 있는 것은 신진대사작용이다. 몸속에서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포가 생성되고 소멸한다.

매일 음식을 먹는다. 하루라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이 몸을 지탱하기 위해 먹어야 한다.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없다. 몸이 알아서 다 처리한다. 놀랍게도 물질이 물질을 만들어 낸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음식을 재료로 하여 열 번 가량 물질이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음식을 먹으면 살이 되고 뼈가 되고 피가 된다. 이는 물질의 연쇄반응에 따른 것이다. 물질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물질을 재료로 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최대 열 번 진행된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은 나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다. 생명이 있는 한 몸이 알아서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다. 그러나 몸 안에서는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신체의 기관들이 있어서 이 몸이 지탱하고 있다. 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몸만 일을 하는 것은 아나다. 마음도 일하고 있다. 눈이 있어서 형상을 보고 있다면 마음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귀가 있어서 소리를 듣고 있다면 역시 마음이 일을 하고 있다. 마음은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

마음은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마음은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밥 먹는 일이 가장 크다. 밥을 먹어야 신체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지 않는다면 신체는 올스톱될 것이다. 공장에서 재료가 없어서 더 이상 물건을 찍어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식사가 대사이다. 밥 먹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신체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 먹는다. 그러다 보니 놀이나 사치, 장식, 치장을 위해서 먹는 것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다기 보다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먹고,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먹고, 살찌기 위해서 먹고, 몸매를 위해서 먹는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즐기기 위해서 먹는다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정신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신적인 일을 하려면 알아차려야 한다. 눈이 있어 형상을 보고 귀가 있어 소리를 듣지만 즐기려 한다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없이 앉아 있어도 몸과 마음은 일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은 알아서 일을 한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을 했을 때 내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몸과 마음을 내것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띠하는 것이다. 늘 알아차림을 유지할 때 몸과 마음은 내것이 된다. 나의 통제하에 있을 때 내것이 된다. 사띠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사띠가 없다면 짐승이나 다름없다. 본능대로 사는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을 때 "본능대로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띠가 있으면 일을 하는 것이고 사띠가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띠란 무엇인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는 가르침에 따른다. 담마를 기억하는 것이 사띠하는 것이다.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사띠가 있는 사람과 사띠가 없는 사람이다. 사띠가 없는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띠가 있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다. 몸과 마음이 저절로 알아서 일하는 것과 다른 일이다.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일이다.

경전을 읽고, 게송을 외우고, 경을 암송하고 있다. 경전에 근거하여 글을 쓰는 것도 사띠하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다. 나에게는 일이 있다. 일이 있어서 좋다.

2022-09-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