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산행이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은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7. 07:27

산행이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은


지금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다. 고래바위계곡이다. 내비산 산림욕장 입구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있다. 관양계곡이라고도 한다. 관악산 비밀계곡이다.

오늘 비밀계곡, 관양계곡, 고래바위계곡을 찾았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무더위에 계곡보다 좋은 곳이 없다. 집에서 에어컨 바람 쐬는 것보다 천배만배 낫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집에서 5626번 버스를 타고 내비산 종점에서 내려 30분 올라가면 된다.

무더운 날씨이다. 더운 날씨에는 집에서 가만 있는 게 좋다. 그러면 병 날것 같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 산다.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산행에 나섰다. 고래바위계곡으로.

 


땀이 비오듯 하다. 얼굴에도 주룩주룩 흐르고 가슴에도 주룩주룩이다. 가야 할 길은 멀다. 이럴 때 앞을 쳐다보면 안된다. "고지가 저긴데 예서 말수 없다."라고 하면 안된다. 고지는 잊어 버려야 한다.

방법을 달리했다. 발에 집중하기로 했다. 발을 옮길 때 발의 움직임을 보았다. 경행하듯이, 행선하듯이 올랐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이다.

산에 오르기 직전에 거의 환자수준이었다. 몸이 까라 앉아 한발 떼기도 힘들었다. 잠을 못자서 그런 것 같다.

열대야에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더구나 대로변이라 시끄럽다. 오늘 토요일임에도 새벽 일찍 깨어 일터로 갔다. 오전에 일을 마치고 산행을 했다.

여름에는 땀을 흘려야 한다. 덥다고 에어컨 바람이나 쐬면 면역력이 약해질 것이다.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산행을 했다.

산행에 경행의 원리를 적용해보고자 했다. 6단계는 힘들다. 3단계가 적합할 것 같다. 발을 들어서 나아가고 딛는 동작을 말한다. 이 세 가지 동작을 알아차려야 한다.

산행은 오르막이라 볼 수 있다. 빨리 가고자 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언제 저기까지 갈까?"라고 생각하면 산행이 몹시 힘들어진다. 이럴땐 발에 집중해야 한다. 행선하듯이 발의 움직임에 마음을 두면 산행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산행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산행이 힘든 것은 심리적인 것이 아닐까?"라고. 왜 그런가? 빨리가고자 할 때 목적지만 생각하게 되는데 마음이 급해지는 요인이 된다. 마음이 급하면 마음이 압박을 받는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어진다. 산행이 두 배로 힘들어진다.

발에 집중하며 올라갔다. 발을 들 때는 경쾌함이 있다. 발을 딛을 때는 무거움이 있다. 사대에서 풍대를 느끼는 것이다. 오로지 발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잡념이 생겨나지 않는다. 당연히 힘들다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산행하면서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셀파는 모두 수행자가 아닐까?"라고. 왜 그런가? 짐을 나르는 것이 일인 셀파에게 있어서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일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발한발 발에 마음을 집중했을 때 그 먼거리를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땀이 비오듯했다. 얼굴에도 가슴에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르막길을 쉬지도 않고 올라갔다. 마치 좌선할 때 호흡을 보는것 같았다.

좌선할 때 호흡을 봐야 한다. 그러나 호흡보기가 힘들다. 꽤 집중을 해야 호흡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번 호흡을 보면 그 다음부터는 쉽다는 것이다. 잡념이 일어나도 금방 부서진다. 호흡만이 있게 될 때 어떤 번뇌도 치고 들어오지 못한다. 사띠가 된 상태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사띠에 대해서 이런 비유로 설명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목우자가 야생의 암소 모든 우유를 삼키고 성장한 야생의 송아지를 제어하고자 암소에게서 떼어내어 한쪽 구석에 커다란 기둥을 박고 거기에 밧줄로 묶으면, 그 송아지가 여기저기 날뛰어도 도망 갈 수가 없고 그 기둥 가까이 앉거나 누울 수 있듯이, 그 수행승은 오랜 시간 형상 등의 대상의 맛에 심취한 사악한 마음을 제어하고자 형상 등의 대상에서 떼어내어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게 해서 그곳에서 호흡의 기둥에 새김의 밧줄을 묶으면, 그 마음이 여기저기 날뛰어도 이전에 습관화된 대상을 얻을 수 없고 새김의 밧줄을 끊고 도망갈 수가 없고, 그 대상에 대하여 근접삼매와 근본삼매를 통해서 가까이 앉고 누울 수 있게 된다.”(Vism.8.153)

청정도론에서는 사띠하는 것에 대하여 "호흡의 기둥에 새김의 밧줄을 묶으면,"이라고 했다. 호흡은 기둥이고 사띠는 줄과 같은 것이다.

미쳐 날뛰는 마음을 호흡이라는 기둥에 묶어 놓아야 한다. 줄의 길이만큼만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줄이 느슨하면 잡념이 치고 들어올 것이다. 사띠라는 줄을 바싹 당기면 번뇌에서 해방될 것이다. 행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산에 오를 때 발에 집중하면 힘들지 않다. 급경사도 거침없이 성큼성큼 오른다. 자동으로 가는 것 같다. 대체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발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름아닌 실재()를 보기 때문이다.

개념과 실재가 있다. 산행할 때 "힘들어!"라고 생각하면 실체도 없는 개념에 지배당하게 된다. "고지가 저긴데!"라며 개념산행을 하면 산행이 몹시 힘들어진다. 이럴 때는 발의 움직임에 맡겨야 한다. 오로지 발의 움직임과 이를 아는 마음만 있게 되면 산행이 쉬워진다.

고래바위계곡에 도착했다. 매번 찾는 곳이다. 무더위에 도시탈출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아는 사람들만 찾는 비밀계곡이다.

 


고래바위계곡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웃통을 벗고 물속에 들어 갔다. 요즘 비가 자주 내려서 그런지 수량이 풍부하다.

계곡에 발을 담구었다. 그리고 머리를 물에 넣었다. 땀 흘린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천연 에어컨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별유천지비인간이다.

 

 


2022-08-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