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아시안 하이웨이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9. 26. 11:01

아시안 하이웨이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고요한 새벽이다. 이렇게 또다시 새벽을 맞는다. 잠을 더 잘 수 있다. 더 자면 꿈만 꿀 것이다. 귀중한 시간을 꿈으로 보낼 수 없다. 하나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일박이일 고성지방 여행을 했다. 이른바 가족여행이다. 처가 사람들과 함께 한 것이다. 처가의 형제들이 장모를 모시고 낯선 곳에서 하루 밤 보낸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다.

 


사람들의 성향은 모두 다르다. 정치성향 또한 예외는 아니다. 놀랍게도 기호 2번을 찍은 사람들이 있었다. 처남도 그 중 한사람이다. 처가 쪽이 38선 이북 출신인 것도 이유가 되는 것 같다. 포천과 철원의 경계 지역으로 수복된 곳이다.

처남은 2번 찍은 것을 후회했다. 농담으로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욕설때문이라고 했다. 욕설하는 것을 보고서 전부 의심하게 된 것이다. 이정도일줄 몰랐다고 말했다.

설악산이 보이는 콘도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울산바위가 보이는 곳이다. 저 바위도 변함 없고 건물도 변함 없다. 다만 콘도 명칭이 바뀌었다. 생소한 외국 이름이다. 이름도 무상한 것이다. 그럼에도 옛날 이름으로 부른다.

 


콘도에서 새벽을 맞았다. 이 새벽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다. 산책하기로 했다. 새벽에도 설악의 바위산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새벽에는 일출을 봐야 한다. 급히 차를 속초해수욕장으로 몰았다. 바다에서 새벽노을을 맞이하고자 한 것이다.


새벽노을은 장엄했다. 도시에서 본 것이나 바다에서나 본 것이나 차이가 없다. 왜 그런가? 허공의 조화이기 때문이다. 새벽노을은 태고적부터 있어 온 것이다.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새벽바다에서 하늘과 바다와 구름이 만든 파노라마를 보았다.

 


흔히 대자연이라고 말한다. 큰 자연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다. 자연을 노래하기에는 큰 대()자로는 부족하다. 마하(Maha) 또는 그레이트(Great)라는 말을 붙여 주어야 한다. 위대한 자연이다.

종종 산 위에서 거대한 도시를 본다. 끝없이 펼쳐진 백색의 아파트 단지를 보았을 때 경이롭다. 이럴 때도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줄 수 있을까? 인공구조물이 아무리 아름답고 경이로워도 위대한 자연과 비교하면 십육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암덩어리와도 같은 것이다.

 


암은 무한증식을 특징으로 한다. 생성만 있고 소멸이 없을 때 암덩어리가 된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없을 때 암이 된다. 도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도시가 팽창하는 것은 암덩어리가 증식하는 것과 같다. 도시는 한마디로 욕망의 덩어리라고 볼 수 있다.

도시는 욕망으로 형성되었다. 거대한 도시에서 거대한 욕망을 본다. 인간이 백층이 넘는 빌딩을 지었을 때 경이롭기는 하지만 염려스럽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인공구조물은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것이다. 도시의 마천루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무한히 확장되었을 때 도시도 무한히 팽창된다. 마침내 백층 이상의 바벨탑을 만들어 낸다. 생성만 있고 소멸은 없는 도시, 생태계의 순환이 없는 도시는 암덩어리와도 같다.

도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바벨탑이다. 도시는 경이롭기는 하지만 위대하지는 않다. 위대한 것은 자연이다. 자연이 왜 위대한가? 순환하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순환하는 것이다. 순환하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자연은 살아있다.

인간만 살아 있을까? 자연도 살아 있다. 어느 것이든지 순환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한 살아 있다.

 


인간의 체온이 항상성을 유지할 때 살아 있다고 말한다. 지구도 살아 있다. 지구의 온도가 일정하고 대기의 산소농도가 일정하고 바다의 염기농도가 일정하면 살아 있는 것으로 본다. 이는 대기가 순환하기 때문이다. 광물과 식물, 동물의 상호작용에 따른 것이다.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가 살아 있는 것이다.

지구만 살아 있을까? 우주도 살아 있다. 태양계는 궤도가 있어서 운행을 한다. 우주도 궤도가 있어서 운행을 하고 있다. 변화가 있는 가운데 항상성이 있어서 살아 있는 것이다. 항상성이 있다면 사람도 살아 있고, 지구도 살아 있고, 우주도 살아 있다.

이 몸도 언젠가는 죽고 말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항상성이 사라짐을 뜻한다. 지구도 우주도 항상성을 멈추었을 때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욕망이 개입되면 더 빨리 사라진다는 것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오래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알콜중독자가 장수하지 못하는 것은 욕망 때문이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했을 때 제명에 살지 못한다고 말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는 성주괴공한다. 우주가 망할 때 징조가 있다. 그것은 겁화(劫火)로 나타난다. 먼저 대지가 뜨거워진다. 니까야에 따르면 일곱 개의 태양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겁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치성했을 때 불에 의해서 색계초선천까지 파괴될 것이라고 한다.

저 바위산 아래 콘도가 있다. 콘도가 아무리 예술작품 같아도 자연 속에 있으면 흉물처럼 보인다. 마치 암덩어리처럼 보인다. 한번 형성되면 소멸되지 않는 암덩어리 같은 것이다. 거대한 인공구조물일수록 자연과 부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오랜만에 위대한 자연을 접하게 되었다. 통일전망대를 목표로 아시안하이웨이를 달렸다. 바다와 함께 달리는 해안길이다. 해안선이 직선으로 되어 있어서 이국적 풍광이다.

 


아시안하이웨이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나라에 가까이 갈수록 자연은 점점 위대해졌다. 화진포 김일성 별장에서 본 풍광은 이제까지 본 것 중에 최상이었다. 별장의 진수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2015년 싱가포르 리센룽 총리 부부가 이곳 고성에서 개인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김일성 별장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한국전쟁 이전에 이곳 화진포는 38선 이북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이 전쟁 나기 전까지 별장으로 사용한 것이다. 본래 1937년 외국인이 지은 별장인데 김일성이 머물렀기 때문에 김일성 별장이라고 한다.

 


김일성 별장에서 하늘을 보았다. 새털구름이 빨래판처럼 모양을 이루고 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조만간 구름은 흩어져 사라지고 없어도 사진은 남는다. 김일성 별장에서 유년기의 김정일 사진을 보듯이.

 


김일성 별장은 절경에 있다. 그래서일까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된 것 같다. 일단의 단체관광객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도 들어가야 하기에 지나가다 사진찍어 주기를 자청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화이팅!”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인연이 있어서일까 건봉사에서 단체관람객 중의 한사람이 아는체 했다.

 


또 다시 아시안하이웨이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나라에 이르렀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서 작성하는 것에서 실감했다. 검문소를 통과해서 마침내 전망대에 섰을 때 세상의 끝에 온 것 같았다.

 


세상의 끝에서 세상을 바라 보았다. 같은 땅이고 같은 하늘이고 같은 바다이다. 그러나 더 이상 갈 수 없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더 이상 갈 수 없다면 이 나라는 섬과 같다. 아시안하이웨이가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면 단절된 것 같다. 이 나라는 섬나라가 된 것이다.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 보았다. 접경지대여서일까 해안에 인공구조물이 보이지 않는다. 해변은 원시그대로의 모습이다. 사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다. TV에서 보던 외국의 풍광 못지 않다. 수평선은 아득하다. 높은 데서 보니 바다물 색깔도 차이가 있다. 수평선 너머에는 아스라이 흰구름이 있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역에 가면 지역상품을 팔아 주어야 한다. 지역특산품을 말한다. 이곳 고성의 특산품은 시레기인 것 같다. 시레기 말린 것 한다발이 7,000원이다. 세 개를 사면 14,000원이다. 이른바 투플러스원(2+1)이 적용된 것 같다. 강원도 억양의 주인에게 세 다발 팔아 주었다.

 


세상의 끝에 이르렀다. 가보고 싶어도 가볼 수 없는 나라를 망원경으로 바라 보았다. 언제나 저기에 가 볼 수 있을까? 아시안하이웨이를 타고 계속 달리고 싶다.


2022-09-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