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오체투지를 위빠사나로 하기, 대곡사 순례법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4. 09:41

오체투지를 위빠사나로 하기, 대곡사 순례법회


대곡사(大谷寺),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절이다. 작은 시골절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했다. 대곡사는 대찰이었던 것이다.

능인선원 순례법회팀이 대곡사에 도착했다. 경북 의성에 있어서 서울과 수도권 입장에서 봤을 때 오지나 다름 없다. 그것도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절이다. 절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자그마한 시골절로 생각했다.

 


대곡사가 시골절인 것은 맞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보니 관광버스 20대 정도 품을 수 있는 큰 절이다. 대곡사가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라고는 하지만 암자를 열 개 가까이 거느린 본사급 가람이다.

 


내륙 깊숙한 곳에 여법한 가람이 우뚝 서있다. 이곳에도 불교가 있었다. 그 옛날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한반도 내륙 깊은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곡사 주지 혜산 스님으로부터 사찰 소개를 받았다. 자신이 주지로 취임한 이후 가장 손님이 많이 왔다고 했다. 오늘 능인선원 금강회에서는 버스를 다섯 대 동원 했는데, 대곡사 신도는 그 숫자에 지나지 않다고 했다.

 


주지스님에 따르면 대곡사는 약탈과 수탈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도둑들에게 문화재가 털리고 유생들에게 땅을 빼앗겼음을 말한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절 이름을 빼앗긴 것이다.

대곡사는 본래 대국사(大國寺)였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 때 인도승려 지공과 나옹혜근이 1368년 창건한 절 이었는데, 조선시대 숙종 때 1687년 중건하면서 대곡사로 바뀐 것이다. 아마도 대국이라는 말이 유교적 이념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주지스님은 절 이름 되찾기 운동을 하고 있다. 본래 절 이름인 대국사로 변경하기 위한 것이다. 근거는 있다. 400년 전에 강제로 바뀐 절 이름을 되찾아 오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곡사는 본래 대국사였음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대곡사에는 보물이 두 개 있다. 대웅전과 범종루를 말한다. 정유재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중건 한 것으로 4백년 되었다. 보물을 보니 고색창연한 골동품 같다. 어떻게 목조건축물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을까? 한국전쟁 등 전란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우뚝 서 있는 것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산중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전 10시 반부터 법회가 시작 되었다. 범종루에서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37기 동기이자 봉사대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수 선생이 대웅전 법당으로 안내 했다. 비가 간간히 내리는 가운데 사람들은 야외 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법당은 비좁아 모두 들어 갈 수 없다. 스님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만 들어가 있다. 법당에 들어가게 되자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회는 삼귀의, 반야심경, 천수경 순으로 진행 되었다. 순례법회 하이라이트는 정근이다. 관음정근을 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며 염불하는 것을 말한다.

관세음보살정근은 40분 동안 진행되었다. 관음정근할 때 오체투지를 했다. 오랜만에 해 본다. 3분에 열번 했다. 40분 정근 했으므로 150번가량 절한 것 같다.

오체투지는 전신으로 한다. 일어서서 몸을 굽히고 바닥에 오체를 대는 행위는 격심한 운동을 하는 것 같다. 똑 같은 행위를 백번 이상 했을 때 인내를 필요로 한다.

오체투지에서 가장 힘든 과정이 있다. 그것은 일어설 때이다. 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일어날 때 앞쿰치에 힘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뿐히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이는 오체투지를 빠른 속도로 한다. 마치 운동하는 것 같다. 이렇게 운동으로 오체투지 하는 것에 대해서 법정스님은 '굴신운동'이라고 했다.

오체투지가 굴신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체투지할 때 알아차리고자 했다. 마치 행선하듯이 동작 하나하나를 사띠하고자 한 것이다. 과연 오체투지에서도 사띠가 가능할까?

위빠사나 수행서적에서 본 것이 있다. 제자가 스승에게 수행보고를 할 때 삼배를 하는데 테라와다식 삼배를 한다. 앉은 자세에서 허리만 굽히는 것을 말한다. 이때 제자는 삼배할 때 동작 하나하나를 알아차림 한다. 스승은 제자가 생멸의 지혜에 들어섰음을 알게 된다.

 


위빠사나 수행처에서는 삼배할 때도 알아차림을 유지하라고 한다. 이런 논리를 108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굴신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동작 하나하나를 알아차림 했을 때 천천히 할 수밖에 없다.

오체투지는 몹시 힘들다. 허리가 아픈 사람이나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다. 열번 했을 때 시계를 보니 3분밖에 되지 않았다. 관음정근하면 기본이 30분 이상이다. 오늘은 40분 했다. 백번이상 굴신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했다.

"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자에게 길은 멀다.
올바른 가르침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는 아득하다."(Dhp.60)

 


오체투지 하면서 법구경 게송 문구가 떠 올랐다. 법구경에서는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다."라고 했다. 왜 밤이 길다고 했을까? 주석을 봐야 한다. 주석에 따르면 "명상수행에 돌입하여 밤을 지새우며 정진하는 자, 진리의 말씀을 설하는 해설자, 그에게 가까이 앉아 설법을 듣는 자, 머리 등에 통증이 있는 자, 손발 등에 고통을 겪는 자, 밤을 길에서 지새우는 여행자는 그 길이를 알게 된다."라고 했다.

오체투지할 때 관음정근이 자장가처럼 들렸다. 요령소리와 목탁소리가 대웅전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을 때 빨려 들어 가는것 같았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정근에 귀 기울이고 있다 보면 저절로 삼매에 들것 같았다.

염불은 기본적으로 사마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오체투지를 하면 사마타가 될 수 없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을 알아차림 했을 때 위빠사나가 될 수밖에 없다.

관음정근할 때 오체투지하며 위빠사나 수행을 했다. 법당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오체투지를 백배 이상 한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장가처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을 것이다. 점심시간이기 때문이다.

 

김동수 선생 때문에 오체투지하게 되었다. 법당으로 인도했기 때문에 가만 있을 수 없어서 굴신한 것이다. 법당 바깥에 있었다면 겉돌았을 것이다.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을지 모른다.

 


오체투지를 150번가량 하고 나니 몸이 가뿐했다. 속이 더부룩한 것도 사라졌다. 동작 하나하나를 알아차림 했을 때 몸이 가벼워졌다. 행선할 때 알아차림이 강하면 구름 위를 걷는 듯 한데 굴신운동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밥맛도 좋았다.

대곡사 신도들이 총동원 된 것 같다. 서울에서 손님들이 온다고 하여 도량을 꽃으로 장식하고 비빔밥을 준비했다. 설거지도 신도들이 해 주었다. 이럴 때는 서울 절 사람들이 시골 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불사에 동참하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지방에 가면 지역 특산품이 있다. 의성의 특산품은 무엇일까? 전국적으로 의성마늘이 유명하다.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의성사과이다. 트럭 한대가 와서 사과를 풀었다.

순례법회 가면 먹거리 장터가 열리기도 한다. 지역 농산물과 특산품이 진열되어 있다. 이럴 때는 팔아 주어야 한다. 직거래 하면 서로 좋은 것이다.

 


사과트럭이 왔을 때 팔아 주고자 했다. 마트에서 파는 것 보다 저렴했다. 무엇보다 맛이 있다. 사과를 시식해 보니 매우 달다. 시나노사과라고 한다. 한봉지에 만원이다. 사과 큰 것이 일곱 개 들어 있는데 두 개를 더 넣어 주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가져갔다.

예전에는 삼사순례 했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삼사가 이사순례로 바뀌었다. 하루에 세 곳을 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 없어졌다. 일사순례로 그치고 그 대신 박물관 등을 보는 순례로 바뀌었다. 이번 순례에서는 조문국 박물관에 들렀다.

 

 

조문국, 사람 이름 같다. 조국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문국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나라 이름이다. 옛날 이 지역에 조문국이라 나라가 있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근거가 있다고 한다.

대곡사 순례를 마쳤다. 지광스님에 따르면 3년만이라고 한다. 코로나로 인하여 그동안 움직이지 못했는데 이제 갈 때가 되었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상이 하나 둘 회복되고 있다. 이제 코로나는 더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 무섭던 코로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무력화 되었다. 코로나도 무상한 것이다. 이번 순례는 일상회복의 신호탄이 될 것 같다. 순례가기를 잘 했다.

 


2022-10-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