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사람은 신용이 있어야 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터로 갔다. 논산에서 3시간 이상 운전하고 귀가 했는데 고객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간 것이다. 30분이면 충분했다.
어제 월요일 평일이었음에도 외부에 있었다. 고객 담당으로부터 오전에 전화를 받았다. 고객은 늘 빨리 해달라고 한다. 하루만 늦어도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한다. 늦으면 늦는다고 말해야 한다. 저녁에 들어가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고객과 약속을 지켰다. 저녁에 운전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터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고객 요구사항을 확인 했다. 만일 고객 요청을 무시하고 다음날 확인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업체 교체까지 생각할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심리는 미묘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알 수 없지만 한번 아닌 것은 아닌 것이 된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그렇다. 잘못 했으면 잘못했다고 말해야 한다. 실수 했으면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손해를 끼쳤으면 손실을 보상해 주어야 한다. 그것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면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신용과 신뢰는 같은 말이다. 신뢰는 비즈니스 관계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도 성립된다. 자식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식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하다.
부처님은 라훌라를 훈육 시킬 때 특별한 이벤트를 시행했다. 일곱살가량 먹은 라훌라가 거짓말을 하자 발 씻는 대야를 엎어 버린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을 이벤트로서 보여준 것이다.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말로써만 훈육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오늘날 회자 되는 '꼰대'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부처님은 대야를 엎어 보인 이벤트를 함으로써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이는 다름아닌 신용에 대한 것이다. 거짓말 하는 사람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어제 논산 자연휴양림에서 나오는 길에 개태사에 들렀다. 개태사는 생소한 절이지만 이름은 들어 본 것 같다. 국도 바로 옆에 있는 중간 사이즈정도 되는 아담한 절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서 창건한 것이라고 한다.
개태사에서 촛불 하나를 켰다. 아들을 위한 촛불이다. 아내가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축원문은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이라고 썼다. 법구경에 실려 있는 게송의 후송이다. 이것 보다 더 좋은 축원문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장로가 보시하는 시주에게 "아유(장수하고) 반노(아름답고) 수캉(행복하고) 발랑(건강하길!)"(Dhp.109)라며 축원 해 주는 것이다.
자식과도 소통이 있어야 한다. 아내는 자주 소통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무뚝뚝한 편이다.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다 큰 자식에게 훈육하려 한다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쉽다. 이럴 때는 이벤트를 하는 것이 좋다.
자식에게 카톡을 보냈다. 항상 바른 길로 갈 것과 슬기롭게 대처할 것을 주문 했다. 초에다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라는 문구와 이름을 쓴 사진을 보냈다. 이렇게 한 것은 아내가 시켰기 때문이다.
효과는 즉시 있었다.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단지 말로서 훈계하려 했다면 꼰대 소리 들었을 것이다. 부처님처럼 이벤트를 해서 훈육해야 한다. 초에 축원문을 써서 석탑 앞에 있는 촛불 공양단에 올린 사진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부모자식간에도 보이지 않는 미묘한 심리상태가 있다. 고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신뢰관계이다. 한번 아닌 것은 아닌 것이 된다.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과 어떻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까? 그 다음으로는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다. 이것도 부처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다.
앙굿따라니까야에 '사업의 경'이 있다. 경에 따르면 "그가 약속한 것을 의도한 것 이상으로 보시한다."(A4.79)라고 했다. 사과를 살 때 하나 더 주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주어야 한다. 만족을 넘어 흡족하게 했다면 감동하지 않을 사람 없을 것이다.
이윤만 따지면 소탐대실하기 쉽다. 퍼주듯이 준다면 흡족하게 생각할 것이다. 마음 속에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마음을 감동시켜야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있다. 피곤에 절어 지친 몸을 이끌고 일터에 간 것도 신용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2022-11-0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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