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기쁨으로 충만된 담마까야, 법신사 태국절 까티나축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24. 07:16

기쁨으로 충만된 담마까야, 법신사 태국절 까티나축제

 


어제 하루종일 충만했었다. 카티나축제, 가사공양법요식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의정부 담마까야, 법신사 태국절에 다녀왔다.

 


담마까야에 간 것은 4년만이다. 2018년 법요식에 참석하여 '한국속의 태국불교공동체, 의정부 담마까야(法身寺) 2018 까티나축제'(2018-11-12,https://bolee591.tistory.com/m/16159006)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그동안 코로나로 큰 행사를 하지 못했으나 이제 코로나가 거의 끝나감에 따라 다시 큰 행사를 치루게 된 것이다.

올해 2022년 불교박람회가 10월 초에 열렸다. 그때 담마까야 부스를 보았다. 한번 인연이 있어서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까티나 행사가 10 23일에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요즘 까티나 철이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안거가 끝나고 한달 이내에 가사공양법요식을 치루도록 되어 있다. 까티나 행사는 율장에도 실려 있어서 장려되고 있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가능하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대로 살고자 노력한다. 그래서일까 까티나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하는 것 같다. 봄에 열리는 붓다의 날 행사와 함께 가장 크게 열린다.

까티나 행사를 축제라고 한다. 왜 축제인가? 그것은 신도들이 기쁨으로 가사를 보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사원에서 있으면서 보시도 하고 공양도 하고 법문도 듣는다. 마음이 충만되어 있어서 축제의 날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불자들은 까티나가 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아마 그것은 불교전통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별도의 가사공양법요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안거가 끝나는 날, 팔월 보름날 안거해제 때 가사공양하는 행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날은 백중날이기도 해서 천도재로서 성격이 짙다.

인터넷에 까티나 행사에 대한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한국에 수많은 테라와다불교 전통이 들어와 있지만 언제 어디서 행사가 열리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주민들은 까티나 행사에 모인다. 아마 그들 나름대로 통신망이 있는 것 같다.

현재 한국에는 수많은 이주민들이 있다. 대부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사람들이다. 특히 불교권 나라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테라와다 3국으로 하여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사람들의 이주민공동체가 가장 큰 것 같다.

각 공동체마다 수많은 이주민들이 있다. 그들의 쉼터가 없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수많은 사원이 생겨났다. 사원은 이주민들을 위한 것이어서 자국에서 온 스님들이 상주하고 있다. 마치 한국사람들이 미국에 이민 갔을 때 교회나 절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이주민공동체의 사원에서 그 나라 특유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붓다의 날 행사나 까티나 행사 때 찾아 가서 문화체험을 한다. 현지에 가지 않고서도 한국에서 종교체험과 문화체험이 가능한 것이다.

스리랑카 사원으로는 양주에 마하보디사가 있고, 아산에 마하위하라 사원이 있다. 태국 사원으로서는 의정부에 담마까야, 법신사가 있다. 미얀마 사원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행사에 참석하고 나면 반드시 기록을 남겼다.

안양에서 의정부까지 53키로로 1시간 9분 찍혔다. 행사가 9시 반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여유 있게 길을 나섰다. 의정부역 공영주차장에 주차했다. 차가 경차이기 때문에 주차비용은 반값이다. 통행료도 반값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는 아마도 경차가 아닐까 생각한다.

 


담마까야는 의정부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시간에 맞게 도착하니 스님이 반겨준다. 주황색 가사를 입은 태국스님이다. 한국어가 유창하다. 4년 전 왔었는데 얼굴을 기억 했다. 스님의 안내로 3층 법당에 들어 갔다.

 


담마까야는 5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법당은 넓직하다. 공양식당도 있고 스님 거처도 있는 것 같다. 각 나라 이주민들의 사원을 보면 대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에 위치해 했다. 그런데 담마까야는 도심에 빌딩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심에 이렇게 여법한 이주민 사원이 있다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행사는 태국 이주민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태국말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도 있다. 그것은 빠알리 예경문과 삼귀의, 오계 등을 말한다. 스리랑카, 미얀마 등 테라와다불교권 법회에서도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각 나라의 말은 달라도 빠알리 의식은 같은 것이다. 마치 카톨릭 국가에서 라틴어가 공통어로 사용되는 것과 같다.

 


법당은 꽤 넓다. 꽉 차면 3백명 가량 되는 것 같다. 스님은 아홉 명이다. 불상은 법신상이다. 한국사람은 열 명가량 참석했다. 비구니 스님 두 분과 국제포교사 여러 명, 그리고 관내 경찰 두 명이 내빈으로 초청 되었다. 스스로 찾아 간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행사는 9시 반에 시작해서 2 50분에 끝났다. 오전에는 탁발이 있었고 오후에는 가사공양식이 있었다. 탁발은 실내탁발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축제라고 하지만 시종 여법하게 거행되었다.

오전과 오후 행사에서는 예불과 함께 명상시간이 있었다. 태국말로 유도명상하는 것이 특징이다. 꽤 길게 유도명상을 하고 난 후에 침묵의 명상이 이어졌다. 이십분 이상 한 것 같다.

 


태국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유도명상할 때 태국 말에 충만 되었다. 뜻은 알 수 없었지만 훌륭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구리 만두까 이야기가 생각났다.

청정도론에 개구리 만두까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이 짬빠국 각가라 연못에서 설법할 때 개구리 만두까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개구리는 부처님 설법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부처님 목소리에 충만 되었다. 부처님 목소리에 표상을 취한 것이다. 그때 설법을 듣던 목동의 막대기에 짖이겨져서 죽었다. 개구리는 그 즉시 천상에 태어났다. 충만된 마음의 표상을 조건으로 재생연결식이 일어나 삼십삼천에 태어난 것이다.

 


스리랑카 사원에 가면 빠알리 챈팅을 한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운 운율에 충만되는 것 같다. 미얀마 담마마마까 사야도가 게송 읊는 것을 들었을 때 충만되었다. 우리나라 염불 잘 하는 스님의 염불소리를 들으면 역시 충만된다. 뜻은 알 수 없지만 모두 부처님 말씀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극한직업 프로에서 어느 작업자의 말이 남았다.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 작업자는 점심 시간과 퇴근 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고 했다. 법요식 때도 점심 공양시간이 기다려졌다. 최상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스님들과 한국인은 별도의 공양식당에서 식사했다. 이주민들은 5층 옥상에 마련된 장소에서 식사했다. 음식은 태국식이 기본이지만 한국사람들 식탁에는 태국식과 한국식이 반반 나왔다. 테이블 하나가 더 있었는데 싱가폴에서 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녀들은 우리말로 말하면 대보살이다. 큰 시주를 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까티나 철이 되면 전세계를 다니며 보시한다고 들었다.

 


절에 갈 때 빈손으로 갈 수 없다. 이미우이 명상치유음악씨디를 준비했다. 참석한 한국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봉사자들에게도 주고 싱가폴 대보살들에게도 주었다.

마음이 충만되자 보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현금이 부족했다. 돈나무를 보자 가지고 있는 만원짜리 한장을 달았다. 매번 얻어먹기만 하는 것 같아서 봉투를 준비했다. 준비된 것이 아니어서 금액은 적다. 이를 봉사자에게 전달했더니 보시함에 넣어 주겠다고 했다.

 


태국 사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도들이 보시하는 것을 보니 쌀도 있었다. 각종 생필품을 보시하는 것이다. 물론 봉투로도 보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돈나무이다.

 

나무가지 형상에 지폐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이를 돈나무라고 한다. 우산 형태로 된 것도 있다. 돈나무는 미얀마에서도 볼 수 있었다. 태국불자들은 돈으로 장엄된 돈나무를 승가에 보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곳이 태국절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것 같다.

 


언젠가 절에서 어느 노보살 얘기를 들었다. 노보살은 법당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누구든지 법당에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하물며 염불소리를 들으면 어떨까? 충만될 것이다. 염불 소리에 집중이 되어 기쁨과 환희가 일어날 것이다.

염불은 듣는 이로 하여금 충만하게 만든다. 염불은 태국 말이든, 미얀마 말이든, 스리랑카 말이든 뜻을 몰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개구리 만두까가 부처님 말씀에 충만된 것과 같다. 기쁨과 지혜와 자극이 있는 충만이다.

 


보시하면 기쁨이 일어난다. 보시하면 과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서 자극받아 보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함께 하고, 자극받아 보시하는 것은 욕계 유익한 마음에 해당된다.

 


이번 까티나 축제에서 아름다운 마음을 보았다. 이는 다름아닌 충만이다. 충만한 마음 상태에서 죽는다면 천상에 태어나지 않을까?


2022-10-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