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선조(新選組) 신드롬을 보며
“무사보다 더 무사다운”이 말에 매료 되었다. 그들은 본래 무사가 아니었다. 농민이었거나 상인이었거나 부랑자들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무사보다 더 무사다운, 최강 무사집단이 되었다. 신선조(新選組)를 말한다.
신선조가 있다. 일본 도쿠가와 막부 말기 최강무사집단이다. 일본어로 ‘신센구미’라고 한다. 그들은 하급무사출신도 아니고 농민, 상인, 부랑자 출신들이었다. 그때 당시 그들은 잡놈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칼을 차게 되었을 때 최강의 무사집단이 되었다. 역사는 그들을 최후의 사무라이들이라고도 한다.
한때 일본 NHK 사극에 매료 되었다. 일년에 걸쳐서 진행되는 대하드라마로서 막말유신초나 전국시대가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 NHK 사극을 접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 모른다. 2000년대 인터넷 시대가 본견화 되었고, 2005년 이후 일인사업자로서 삶을 살면서 블로그 활동을 하는 등 인터넷과 접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일본 사극을 접한 것은 2008년도의 일이다. 그때 당시 인터넷에서 우연히 아츠히메(篤姫)를 보게 되었다. 아츠히메는 막부말기 사츠마번 공주가 도쿠가와막부 장군에게 시집가는 것을 스토리로 한다.
인터넷 카페에서 제공되는 아츠히메 동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자막과 함께 매주 서비스 되었는데 다음 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몹시 궁금했다. 마치 KBS 사극 ‘용의 눈물’에서 그 다음 회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한 것과 똑같았다.
2008년 이후 매년 일본 NHK 대하드라마를 보았다. 2009년에는 천지인(天地人), 2010년에는 료마전(龍馬伝), 2012년에는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淸盛), 2014년에는 군사 칸베에(軍師官兵衛)를 보았다. 도중에 2004년에 방영되었던 신센구미! (新選組!)를 보았다.
드라마도 한때인 것 같다. 지금은 더 이상 일본 시대사극 대하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몇 편을 보자 알 것을 다 안 것 같다. 처음에는 일본문화의 호기심 때문에 보았으나 지금은 시들하다. 마치 우리나라 사극에 열광하다가 시들해진 것과 같다.
일본 시대사극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 그것은 2004년에 방영된 신선조이다. 블로그 기록을 찾아 보니 2009년에 보았다. 과거에 방영했던 것을 찾아 본 것이다.
무엇이든지 본 것은 기록해 놓는다. 대하드라마도 본 것을 기록해 놓았다. 블로그에 ‘영화드라마후기’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쓴 것을 모아 놓았다. 신선조에 대해서는 열 편 가량 썼다. 이 밖에도 신선조에 대해서 언급한 글이 많다. 신선조에 푹 빠진 것이다. 대체 신선조가 뭐길래 그토록 매료 된 것일까?
최근 유튜브에서 신선조에 대한 것을 보게 되었다. 일본 어느 지자체에서 신선조축제를 한 것이다. 신선조도 축제의 주제가 된 것이다! 도쿄 외곽에 있는 히노시에서 매년 5월 신선조마츠리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로 20회가 넘는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신선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선조 대원들은 영웅시 되고 있다. 특히 신선조 국장 곤도 이사미, 신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죠, 신선조 1번 대장 오키다 소지는 국민적 영웅이다. 어느 정도일까?
일본인이 좋아하는 영웅 100인이 있다. 이 중에 신선조 3인방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상위에 랭크 되어 있다. 참고로 일본인이 좋아하는 위인 1위부터 10위까지를 보면, 1위는 오다 노부나가, 2위는 사카모토 료마, 3위는 에디슨, 4위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5위는 마츠시타 고노스케, 6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7위는 노구치 히데요, 8위는 마더 테레사, 9위는 헬렌 켈러, 10위는 히지카타 토시죠이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위인이자 영웅으로서 신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죠가 10위에 랭크 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상인 출신으로 신선조의 도깨비 부장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무서운 이미지, 잔인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왠 일일까?
히지카타 토시죠는 끝까지 저항했다. 보신전쟁으로 신정부군에게 패해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근거지를 옮겨 가며 끝까지 싸웠다. 마치 빨치산의 최후를 보는 것 같다.
히지카타 토시죠가 최후를 맞이한 것은 혹카이도 하코다테 오능곽성이 있는 곳이다. 신정부군에게 쫓기고 쫓겨서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일본 최북단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그것도 말을 타고 적진에 돌파를 감행하여 총탄 세례를 맞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사람들은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신선조는 패전한 무사집단이다. 그것도 시대의 흐름을 방해한 집단이다. 막부의 장군을 경호하기 위한 무사집단으로 출발했는데 돈을 받고 고용된 칼잡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그들을 역사에서는 ‘낭사조’라고 불렀다. 떠돌이 무사집단이라는 뜻이다.
떠돌이 무사들이 모여 최강의 무사집단을 이루었다. 검 한자루에 목숨을 걸고 검 한자루에 청춘을 바친 것이다. 무사도를 어기면 할복이다. 드라마를 보면 무사도를 어겼을 때 할복하는 장면도 종종 보여 준다. 할복 할 때 고통없이 죽으라고 목을 쳐주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장면은 우리나라 사극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신선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설 제국의 아침’을 읽었을 때이다.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따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를 우리말로 번역한 대하소설이다. 그때 당시 소설을 읽었을 때가 90년대 초로 30대 초반이었다.
시바 료따로의 소설에서 신선조는 불가사의한 집단이었다. 또한 잔인하고 무서운 집단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신선조는 그때 당시 교토 치안을 담당했었는데 신선조가 지나가는 길에는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최강의 무사집단이 어떤 존재들인지 몹시 궁금했었다.
2000년대가 되었다. 90년대와는 달리 인터넷 세상이 되었다. 90년대에는 소설로서 신선조를 상상했으나 2000년대가 되자 드라마로 접하게 되었다. 2004년에 방영된 50부작 이상의 신선조가 그것이다. 이를 2009년에 보았다.
50부작 이상의 신선조를 보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일본인들이 왜 신선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왜 신선조 3인방이 영웅시 되고 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신선조,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여 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 오늘날 소설과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심지어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열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본에는 분명히 신선조 신드롬이 있다. 신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죠가 태어난 히노시에서는 신센구미마츠리라 하여 매년 신선조축제가 열리고 있다. 왜 일본인들은 신선조에 열광하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최강무사집단인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저항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신선조는 최강무사집단으로서 철의 결속을 자랑했다. 무사도를 어기면 할복했다. 왜 이렇게 엄격하게 관리했을까? 그것은 모두 출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농민도 있고, 상인도 있고, 떠돌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결속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율이 필요했을 것이다.
신선조는 기본적으로 낭사들의 조직에 지나지 않는다. 떠돌이 무사들의 집단인 것이다. 그런데 낭사들도 훈련을 받으면 최강의 무사집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선조 간부들은 “무사보다 더 무사답게”라는 구호를 내 걸었다. 이는 “사무라이보다 더 사무라이답게”라는 말과 같다.
신선조는 사무라이도 아닌 것들이 모여서 사무라이 집단을 만들었다. 태생적으로 천한 것들의 모임인 것이다. 그럼에도 무사보다 더 무사다운 집단, 사무라이보다 더 사무라이다운 사무라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점에 매료 된 것 같다.
선선조가 인기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끝까지 저항한 것이다. 신정부군과 싸웠는데 항복하지 않은 것이다. 신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죠가 대표적이다. 그는 최후까지 싸워 적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 사람들은 이런 저항정신을 높게 평가한 것 같다.
한때 일본 드라마에 매료 되었다. 시대사극을 통해서 일본 문화와 역사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친일파는 아니다. 일본을 극복하려면 일본을 알아야 하겠기에 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일파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한때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1985년 처음 입사했을 때 그랬다. 그때 당시 수원에 있는 S전기에 다녔었는데 기술격차를 실감했다. 그때는 “어떻게 하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어떻게 하면 잘 카피를 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회사에 자료실이 있었다. 회사 내에 있는 도서관 같은 곳이다. 그때 자료실 여직원은 20대 모습 그대로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기억에 남아 있는 그 모습은 변함없다. 신입사원 시절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사람을 뽑아 놓고 신규사업한다며 놀려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실에는 온통 일본 것뿐이었다. 일본어를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일본어 교육을 시켰다. 일본과 합작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모르면 일을 할 수 없었다. 일과가 끝나면 사내에 있는 일본어 강좌를 들었다. 그리고 이어령 선생의 ‘축소지향인의 일본인’을 일본어판으로 읽었다. 그 결과 일본어를 읽는 것은 가능해졌다. 유튜브에서 자막서비스가 제공되면 보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은 일본을 앞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980년 중후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때 당시에는 따라 하기도 바빴고 카피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불과 30여년 만에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일본에 대하여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
“무사보다 더 무사답게”이 말을 좋아한다. 무사도 아닌 것들이 칼 한자루에 인생을 걸고 수련한 결과 사무라이보다 더 사무라이다운 사무라이가 된 것이다. 스님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보통불자가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출가수행자보다 더 수행자다운 재가수행자”가 되고 싶다. 또한 “불교학자 보다 더 학자다운 블로거”가 되고 싶다.
2022-10-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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