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시민군 윤상원’을 보고
세상에는 별일도 다 있다. 정찬주 작가의 페이스북에서 전우원을 보았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이 5.18 관련 사람들과 기념사진 찍은 것이다. 더구나 손에는 정찬주 작가의 소설 '광주 아리랑'이 들려 있었다.
전우원은 5.18관련 사람들과 정찬주 작가 댁을 찾았나 보다. 이에 정찬주 작가는 “나의 광주5.18민중항쟁소설 <광주아리랑>(전2권)이 전두환 일가 중에서 유일하게 참회하고 있는 손자 전우원 씨의 손에 들릴 줄이야!”라고 글을 써 놓았다. 이어서 "오죽 괴로웠으면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손자가 전씨 일가를 대신하여 참회하게 됐을까 싶어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2023-05-29)라고 했다.
페이스북친구 중에는 5.18관련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그 중에 김동명 페친도 있다. 김영철 열사의 아들이다. 종종 내 글에 공감을 표시해 준다.
어제 김동명 페친이 올린 글을 보았다. 그것은 ‘마흔세살 오일팔’(https://youtu.be/yqRFMIG3BeY)이라는 제목의 다큐이다. 부제로 ‘5.18둥이들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5.18이 일어난지 43년 되었다. 그때 80년에 태어난 사람은 이제 마흔 세 살이 되었다. 5.18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이다. 그들에게 5.18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언젠가 아들 숙제를 해주었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 6.10에 대해서 숙제를 내 준 것이다. 부모에게 물어서 글을 써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6.10은 먼 옛날 이야기나 다름 없다. 마치 우리 세대가 6.25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있어서 6.25는 엇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날 것이다. 5.18둥이들 역시 5.18은 먼 옛날 삼국시대 때 이야기로 들릴 것임에 틀림 없다.
6.25는 겪어 보지 않았다. 그러나 5.18과 6.10은 겪어 보았다. 비록 간접적으로 겪었다고 할지라도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말할 수 있다.
세월이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아들의 숙제를 해 주느라 회사일로 바쁨에도 나름대로 글을 써주었다. 이런 주제로 숙제를 내준 선생은 대단히 의식 있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의식 있는 선생들이 있는 것 같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중학교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해 봄날 그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묵념하자고 했다. 선생님은 오늘이 4.19라고 했다.
4.19를 겪어 보지 않았다. 4.19둥이 학생들은 4.19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선생님은 4.19를 겪었을 것이다. 어쩌면 주변에 희생자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묵념하자고 했는지 모른다.
5.18때 묵념하자는 선생도 있을까? 광주이야기에 대한 선생의 숙제는 없었을까? 5.18 항쟁의 의미, 특히 도청에서 결사항전에 대한 것이다. 그런 숙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김동명 님이 공유한 ‘마흔세살 오일팔’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김동명 님에 대한 가족사도 있다. 김동명 님의 여동생이 5.18둥이였기 때문이다. 세 명의 5.18둥이 이야기를 보았다.
다큐에서 본 것이 있다. 그것은 5.18이 금기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간에 5.18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 살아 생전의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열세 살 때 육이오를 맞았다고 한다. 그때 남동생이 세 명 있었는데 모두 죽었다. 그런데 이런 비극에 대해서 외할머니와 한번도 얘기 나눈 적이 없다고 했다.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그랬을 것이다.
요즘 유튜브시대이다. 어떤 유튜브를 보면 유사한 콘텐츠로 이끌어 준다. 이른바 유튜브 알고리즘이 작동되는 것이다. 알고리즘에 의해서 ‘시민군 윤상원’(1부 https://youtu.be/Qa3LQcN65hU, 2부 https://youtu.be/kmj1RyEtV3I)을 보게 되었다.
5.18과 관련하여 수많은 콘텐츠가 있다. 다큐, 소설, 영화, 연극, 미술, 음악 등 매우 다양하다. 5.18과 관련하여 영화 몇 편을 보았다.
5.18관련 소설로는 정찬주 작가의 ‘광주 아리랑’을 보았다. 전기로는 김상집 선생의 ‘윤상원 평전’을 보았다. 그런데 어제 알고리즘이 ‘시민군 윤상원’이라는 다큐영화로 이끌어 주었다.
다큐영화 ‘시민군 윤상원’은 오래 된 것이다. 광주MBC에서 만든 것으로 1996년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27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큐영화에 나오는 인물이 매우 젊다. 김상윤 선생은 47세의 얼굴로 나온다.
다큐영화 ‘시민군 윤상원’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윤상원 역을 박효선 열사가 했다는 것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 다큐에 대한 극본과 주연이 박효선 열사라는 사실이다. 박효선 열사는 5.18당시 극단 광대를 이끌던 인물이다. 또한 정찬주 작가의 친구이기도 한다.
정찬주 작가의 소설 ‘광주 아리랑’ 첫 장면이 있다. 그것은 수배를 받아 쫓긴 몸이 된 박효선 열사가 작가의 하숙집에 찾아 오는 이야기를 말한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박효선 열사를 다큐영화 ‘시민군 윤상원’에서 본 것이다. 그것도 윤상원 역을 매우 실감나게 했다는 것이다.
다큐영화 '시민군 윤상원'에는 5.18 당시 활약 했던 사람들이 나온다. 영상제작연도가 1996년이므로 사건이 일어 난지 16년 후가 된다. 그때 30살 이었던 사람은 46세이고, 그때 20살이었던 사람은 36살이다. 모두 젊은 얼굴들이다.
1996년 영상이 제작된 이후 27년이 흘렀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27년 전의 영상을 보았다. 다큐영상이 마치 역사적 기록물처럼 보인다.
1996년 영상에서는 그때 당시 활약했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박효선 열사의 얼굴을 본 것은 뜻밖이다. 그것도 동료였던 윤상원 역을 대단히 리얼하게 연기했다.
해마다 5.18주간이 되면 늘 묻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은 왜 도청에 들어갔을까?”에 대한 것이다. 다큐영화 ‘시민군 윤상원’에도 이런 물음이 나온다.
그들은 패배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 죽은 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항쟁한 것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가정해 본다면 이런 것이 있다. 그때 시민수습위원장 김창길 말대로 모두 무기를 버리고 도청을 비워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5.18은 폭동이 되었을 것이고 가담한 자들은 폭도가 되었을 것이다. 죽은 자의 목숨도 헛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일인까지 지키겠다는 결의가 있었기 때문에 되찾아 올 수 있었다.
도청을 순순히 내주는 것과 결사항전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내 주었기 때문에 도청을 되찾아 올 수 없다. 그러나 후자는 빼앗기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되찾아 올 수 있었다.
시민군은 패배했다. 그러나 영원히 패배한 것이 아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도청을 빼앗겼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빼앗기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윤상원 열사는 결사항전에 임하는 외신기자회견에서 “오늘은 진다 해도 영원히 패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시민군은 도청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시민군은 물리적 공간인 도청을 지키고자 결사항전 했을까? 패배는 이미 예고 되어 있었다. 시민군은 단지 도청이라는 물리적 공간만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시민군들이 그토록 지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항쟁을 지키고자했다. 그리고 항쟁에서 흘린 피를 지키고자 했다. 이런 결사항전 정신이 있었기에 물리적으로 빼앗긴 것을 되찾아 올 수 있었다. 항전이 있어서 6.10도 있었다. 그리고 2016년 광화문촛불도 있었다.
역사에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 80년대 역사를 보면 힘 있는 자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5.18당시 힘으로 세상을 제압하던 세력은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반대로 죽임을 당하던 세력은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전두환 손자 전우원의 행보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2023-05-3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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