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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권 진흙속의연꽃 2015 III, 자만은 추락한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26. 08:33

74권 진흙속의연꽃 2015 III, 자만은 추락한다

 

 

자만은 추락한다.”이 말은 붓다아비담마에서 본 것이다. 미얀마 멤 틴 몸이 지은 것이다. 해로운 마음부수 중에 자만(mana)이 있는데, 이는 나는 최고이다.’, 라든가, ‘나는 가장 많이 안다.’, ‘나는 세상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는 자만이 대표적이다.

 

흔히 말하는 3대 자만이 있다. 그것은 태생의 자만, 배운자의 자만, 부자의 자만을 말한다. 태생의 자만은 부처님 당시 브라만에 해당된다. 가문의 자만이라로고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성직자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배운자의 자만은 학위를 가진 자가 해당된다. 피에치디 학위를 가진 교수가 대표적이다. 부자의 자만은 많이 가졌기 때문에 가난한 자를 경멸한다.

 

누군가 자신이 수행자임을 드러낸다면 태생의 자만이 될 것이다. 누군가 학위를 나타낸다면 배운자의 자만이 될 것이다. 누군가 고급차를 몰고 다닌다면 부자의 자만이 될 것이다. 이는 모두 우월적 자만에 해당된다. 그래서 내가 누군데.”라든가, 더 나아가 내가 누군데, 감히!”라고 말한다.

 

자만은 죽음의 길이다. 운동선수가 메달을 딴 후에 자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자만이 죽음의 길임을 잘 알고 있다. 로마 개선장군에게 메멘토 모리(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말해주는 것도 자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학자의 자만과 자주 마주친다. 그들은 많이 배운자들이다. 지위도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교수라고 불리운다. 정년퇴임했어도 여전히 교수라고 불리운다. 명예교수라는 타이틀이 이를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다지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교직에 오래 있다 보면 천성이 될 것이다. 남을 가르치려 드는 것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나이 어린 학생들 하고만 상대해서일까 모임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어느 명문대학 교수는 모임에서 여기 집중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회의할 때 잡담을 하자 주의를 준 것이다. 학생에게나 하는 말을 머리가 허연 사람들에게도 말한 것이다. 아마 이런 것도 배운자의 자만에 해당될 것이다.

 

배운자에게 한가지 의문이 있다. 피에치디 학위를 가진 자들은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특히 지위가 있는 자들이 그렇다. 불교관련 배운자의 경우 좀처럼 공부모임에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들은 초기경전을 다 읽었을까?

 

배운자의 자만 중에는 지기 싫어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명예가 추락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자만은 배운자나 성직자나 부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열등적 자만도 있고 동등적 자만도 있다. 모두 비교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자에게도 자만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매일 새로운 글을 올리고 있다. 그것도 장문의 글이다. 이런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자만이다. 왜 그런가? 결국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자랑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터넷에 글을 쓰는 모든 행위는 자만이 된다. 사진을 올리는 것도 자만이 된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행위는 필업(筆業)을 짓는 것이다. 필업은 구업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끊지 못하고 쓰고 있는 것은 자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글이 자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찰하는 글을 써야 한다.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 보는 글을 썼을 때 향상이 있고 성장이 있다. 성찰이 없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에스엔에스에 올려진 대부분의 글은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자만이 되지 않는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 글을 쓸 때는 영원히 남는 글을 쓰고자 한다. 어느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장경각에 있는 경전처럼 남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공감한다. 비록 인터넷 잡문에 지나지 않지만 영원히 남는 글을 쓰고 싶다.

 

과거 쓴 글을 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의무와 같은 일이다. 이번에 내는 책은 2015년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책의 제목을 ‘74권 진흙속의연꽃 2015 III’으로 정했다. 201593일부터 1231일까지 4개월간의 기록이다. 목차는 66개로 610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니들이 이 맛을 알어?” 먹방을 보면서

2. 중국전승절 퍼레이드를 보고

3. 동트는 새벽에

4. 기득권 스님들과 학자들, 경에 대한 무지인가 직무유기인가?

5. 선물용 법구경을 발견하고

6. 사랑보다 자애

7. 자비의 분노 정의로운 폭력이라고?

8. 전세계인 찾는 무상사, 관음스쿨의 위력은?

9. 초기불교를 구약에 비유한 불교학자

10. 전통혼례식에서 본 외국인 신랑

11. 연금귀족의 철밥통

12. 저는 그 사람 장점만 보고 가렵니다

13. 돈벌기 선수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14. 청련, 홍련, 백련 중에 으뜸은?

15. 전쟁터에서 죽었을 때

16. 보험은 정말 삶을 보장할까?

17. 왜 세상과 다투는가?

18. 출가는 아무나 하나?

19. 전혀 다른 불교를 접하고

20. 진화연기론이 있다는데

21. 명상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22. 글그림 작가 거람 김반석의 그림세계

23. 사무실을 녹색으로 꾸미고

24. 불자들에게 혼란만 야기하는 환공망상

25. ()이 존중되어야

26. 늘 바쁘다는 핑계로

27. 불교근본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28.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

29. 재가성직자에 대하여

30. 경행과 함께 스쿼트(Squat)

31. 퇴보의 길을 걸어온 불교사

32. 오늘 밤까지 살되 영원히 살자

33. 가르침에 승속의 구별이 없다

34. ? 깨달음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고?

35. 어느 수학자의 단멸론에 대하여

36. 술은 어리석은 자가 즐기는 것

37. 윤회를 부정하는 사람들

38. 향상으로 이끄는 초인의 힘과 의지

39. 착하게만 살면 될까?

40. 각산스님과 사사나스님의 법문을 비교해 보았더니

41. 예수의 말이나 부처의 말이나 똑같다는 어느 스님의 법문

42. 너무 행복해서 죽겠다는 사람

43. 먼저 본사람이 먼저 치우기

44. 전현수 선생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강연을 듣고

45. “이것뿐이야. 바로 이것뿐이거든”불이법문을 듣고

46. 스님들 하루 한끼만 드시라!

47. 뻐꾸기의 탁란(托卵)과 밀어내기를 보며

48. 존재를 윤회케 하는 네 가지 식사

49. 과학을 불교에 접목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50. 법문하기에 좋은 목소리 여덟 가지

51. 축소지향인의 일본인을 보다가

52. 두 건의 송년회를 치루고

53. 생체유전자와 문화유전자에 따른 공시공환생(共時空還生)

54. 승가는 부자여도 스님은 가난해야

55. 담마 아닌 것은 지혜의 검으로

56. 황진이는 지족선사에게 관세음보살이었을까?

57. 외도가 강연하는 불교를 보고

58. 금지곡 스텐카라친(Stenka Razin)

59. 불교닷컴 자발적유료화에 동참하며

60. 견격(犬格)이 존중되는 사회

61. 득보다 실이 많은 가까운 사이 거래

62. 스님의 손은 마이더스의 손?

63. 출가를 결심한 법우님

64. 원담스님의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한 우려와 고뇌

65.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악마의 달콤한 유혹

66. 오늘 밤까지만 살아도 여한이

74권 진흙속의연꽃 2015 III_221026.pdf
5.09MB

 

목차를 보면 수많은 일상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기록하다 보니 모두 다른 주제로 되어 있다. 하나의 주제로 되어 있는 책과는 다른 것이다. 이른바 잡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잡문도 모아 놓으면 책이 된다. 책이 되려면 책의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목차를 만들고 서문을 쓴다. 그런데 서문을 쓰기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서문 없는 책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자판을 치고 있는지 모른다.

 

글에는 글 쓴 자의 자만도 보인다. 사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며 쓰려한다면 글을 쓸 수가 없다. 마치 강연자가 청중의 눈을 무서워하면 강연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강연자는 청중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보고 강연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청중을 개무시하듯 강연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강연에는 자만이 가득할 것이다. 글도 그런 것 같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자만에 가득한 글이 될 것이다.

 

필업이 악업이 되지 않고자 한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반드시 날자와 함께 서명을 한다. 글에 대한 무한책임이다. 그럼에도 한번 쓴 글은 구업이 된다. 필업이 선업이 되길 바란다.

 

 

2022-10-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