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권 율장의 가르침 I 14-15, 나 자신에게 유산을 남겨 주고자
“저에게 유산을 주십시오.”라훌라가 부처님에게 말한 것이다. 라훌라의 어머니는 나이가 일곱 살 정도되는 라훌라에게 “라훌라야, 이 분이 아버지이다. 유산을 달라고 해라.”라며 시켰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고 까삘라성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일어난 일이다.
부처님에게 어떤 유산이 있었을까? 출가 전에 왕권을 물려 받을 태자였기 때문에 왕권이라는 유산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재물을 유산으로 달라고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왜 그런가? 왕은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라훌라는 어머니가 시킨 대로 했다. 라훌라는 부처님을 졸졸 따라 다니며 “수행자여, 제게 유산을 주십시오. 수행자여, 제게 유산을 주십시오.”라며 졸랐다. 부처님은 어떻게 했을까? 부처님은 사리뿟따에게 “사리뿟따여, 그렇다면 그대가 왕자 라훌라를 출가시켜라.”라고 말했다. 율장 대품 ‘라훌라에 대한 이야기(rāhulavatthukathā, Vin.I.54)’에 실려 있다.
부처님은 유산을 달라고 조르는 외동아들 라훌라를 출가시켰다. 라훌라에게 왕권을 유산으로 물려 주는 것보다 출가시키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왕권은 유한하다. 그러나 가르침을 실천하여 완전한 열반에 들면 이것처럼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훌라에게 부처님의 최대 유산은 가르침이었다. 이 세상에 부처님 가르침처럼 위대한 유산이 어디 있을까? 부처님이 유산을 달라고 떼 쓰는 라훌라를 출가시킨 이유가 된다.
부처님 유산으로 살고 있다. 매일 니까야를 읽고, 매일 경을 암송한다. 매일 경전에 근거한 글을 쓰고, 매일 부처님의 수행방법대로 실천하고자 한다. 이쯤 되면 부처님이 남겨주신 유산으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의 유산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밥벌이 수단으로 삼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가 된 사향사과의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열반을 향해 간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예류자가 되면 일곱생 이내에 완전한 열반이 보장되어 있다. 더 이상 태어남은 없기 때문에 윤회가 끝난다. 동시에 괴로움도 끝난다.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진정한 유산 아닐까? 그래서 사향사과의 성자가 탁발 음식을 먹을 때 부처님 유산으로 먹는다고 말한다.
탁발음식을 부채로 먹는 사람도 있다. 아직 성자의 흐름에 들지 못하는 수행승을 말한다. 음식을 얻어 먹지만 빚진 것으로 먹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부채로 얻어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야 부처님 유산으로 먹게 된다. 음식을 먹어도 부담이 없다. 떳떳하게 탁발음식을 수용할 수 있다.
탁발음식을 도둑으로 먹는 사람도 있다. 출가해서 사원에서 살지만 계행이 엉망인 자가 이에 해당된다. 계행도 지키지 않는 자가 탁발음식을 수용했을 때 이는 밥도둑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도둑으로 음식을 즐기는 자라고 말한다.
탁발음식을 수용할 때 최상은 자기음식으로 먹는 것이다. 누군가 시주한 음식을 먹을 때 마치 자기 것처럼 먹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복전(福田)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보시자는 번뇌 다한 무아의 성자에게 보시하면 커다란 과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처님 유산으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사향사과의 성자가 아니다. 사향사과의 성자들은 가르침을 실천한 자들이다.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 부처님이 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부처님 유산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재가불자는 음식을 얻어 먹지는 않는다. 그대신 부처님이 남겨 놓은 유산, 즉 가르침을 매일 접하기 때문에 유산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유산을 남기고자 한다. 나에게는 어떤 유산이 있을까? 재산이 있을 수 있다. 부동산과 동산을 말한다.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유산을 남겨 주어도 상속자가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로또 맞은 것과 같다.
로또 맞은 자는 대부분 불행해진다고 한다. 갑자기 큰 재산이 생겼을 때 지혜가 없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도둑이 가져가고, 왕이 몰수 하고, 불이 나서 타버리고, 물이 휩쓸어 버리고, 악의적인 상속자가 빼앗아가 버린다. 결국 남는 것이 없게 된다.
자식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 주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초고층 아파트 너른 평수를 딸의 결혼기념으로 주었다. 그만큼 경제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자식이 부모 재산만 믿고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가 빨리 죽기만을 바랄지 모른다. 부모의 유산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재산보다는 지혜를 물려 주어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궁핍하고 결핍된 삶을 살 필요도 있다. 집안이 가난하다면 열심히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에게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때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것이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는 것보다 더 나을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와서 어떤 유산을 남기고 가야 할까? 재산이 있다면 재산을 남길 것이다.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해당된다. 그러나 가진 것이 별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소설가나 시인은 아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블로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읽어 주는 사람이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글도 어쩌면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더 확실한 유산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 만든 책은 율장에 대한 것이다. 율장을 보고서 느낀 것을 쓴 것이다. 2014년과 2015년에 쓴 것으로 모두 24개의 글이 실려 있다. 책 제목은 ‘76권 율장의 가르침 I 2015’이라고 정했다. 총 304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율장은 출가자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2. 참을 수 없는 무료와 권태, 야사의 출가이야기
3. 하안거를 폐지해야
4. 키치불자의 키치스님에 의한 키치로서의 불교
5. 출가시켜서는 안될 사람과 구족계를 받기에 부적합한 자들
6. “태양이 어두운 허공을 비추듯”보리수이야기
7. 흥흥거리는 오만한 바라문
8. 궁극적 행복이란? 무짤린다 용왕이야기
9. 최초의 재가신자와 최초의 재가제자
10. 교계(敎誡)가 지속되는 이유
11. 부처님의 전도선언은 행복론이 아니라 열반론
12. 라훌라의 출가와 최고의 유산
13. 여자를 찾을 것인가 자기자신을 찾을 것인가?
14. 노래를 금한 부처님
15. 교단분열의 대명사 데바닷따
16. 청정한 삶의 보편성과 부처님의 평등사상
17. 바다를 독이 든 단지로 더럽힌다고 생각한다면
18. 반복적 원한의 악순환고리를 끊어야
19.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며 법담을
20. 테라와다 스님들은 돈을 받지 않는다
21. 승가를 구성하는 최소인원과 갈마
22. 부처님의 재채기와 맹목적 아부성 발언
23. 스님이 수염을 길러도 되나?
24. 스님들의 범계행위에 방관한다면
율장은 출가자의 전유물일까? 목차에서 첫번째 글은 율장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써 보았다. 율장은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도 읽어야 함을 말한다.
한국불교에서 율장은 재가자에게 금서로 되어 있다. 율장은 출가자만 보는 것으로 재가자는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한국불교에서 율장은 오로지 출가자만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율장에는 오로지 출가자의 계율에 대한 것만 있기 때문이다. 재가자가 볼 이유가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렇게 의문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출가자들이 율장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한국불교에서 율장은 금서이지만 스리랑카에서는 재가불자도 반드시 보아야 하는 필독서라고 한다. 출가자가 계율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테라와다불교전통에서는 신도들에게 율장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율장을 접한지 8년 되었다. 2014년 처음으로 율장을 구입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에서 출간된 마하박가(대품)을 말한다. 이후 차례로 쭐라박가(소품), 빅쿠비방가(비구계), 빅쿠니비방가(비구니계)를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부기가 있는데, 이는 KPTS에서 통합본으로 출간되자 자동적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율장을 왜 재가자에게 금서라고 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너무나도 적나라한 성적 표현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율장의 절반 이상은 음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금서라고 할 수 있을까? 재가자들은 이미 겪은 일이다.
율장은 재가자들에게 장려 되어야 한다. 경장만 알아서는 반쪽만 아는 것이 된다. 율장까지 보아야 완전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아는 것이 된다. 율장은 경장과 다르게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흔히 빠알리삼장이라고 말한다. 율장, 경장, 논장을 말한다. 순서는 항상 율장이 앞서 있다. 결집 때 율장이 먼저 합송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율장 대품을 보면 이런 게송이 있다.
“만약에 경전과 논서를
잃어버리더라도
계율을 망가뜨리지 않으면,
교계는 언제나 지속합니다.”(Vin.I.98)
율장 대품 제1장 크나큰 다발(대건도) 후렴시에 실려 있는 게송 중의 하나이다. 경장과 논장이 없어도 율장만 있으면 부처님 가르침이 유지된다고 했다. 왜 그런가? 부처님 가르침은 승가공동체가 있어야 유지되기 때문이다.
승가공동체가 없는 불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승가공동체가 존속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불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아마 철학적 사상으로는 존재할지 모르지만 종교로서 불교는 끝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빠알리 삼장 중에서 율장이 가장 중요하다.
대승불교에서는 삼장에 대하여 경장, 율장, 논장 순으로 말한다. 그러나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는 율장, 경장, 논장 순이다. 율장을 경장보다 더 앞에 세우는 것이다. 이는 승가가 있어야 부처님 가르침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재가불자로서 율장을 보고 있다. 율장을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썼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PDF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려 놓으면 누군가 다운 받아 갈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나의 유산 아닐까?
나의 유산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글이나 책을 남기는 것도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나의 유산은 다음 생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없다면 힘들게 경전을 읽고, 암송을 하고, 행선을 하고, 보시를 하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 유산을 남겨 주고자 부처님 유산을 즐긴다.
부처님 유산으로 살고 있다. 가르침을 매일 접하는 것 자체가 부처님 유산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 출가자들은 부처님 유산으로 사는 스님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부처님 가르침 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마음을 두는 것 같다. 특히 율장을 보지 않는 것 같다.
스님들은 율장을 보아야 한다. 율장을 보면 스님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재가불자도 보는데 하물며 스님이 율장을 보지 않는다면 스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출가자나 재가자나 부처님이 남겨 주신 유산을 즐겨야 한다. 마치 부채 없이 음식을 수용하듯이.
2022-11-1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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