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행을 못하는 것은
명상을 왜 하는가? 청정도론 23장에서는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다."(Vism.23.8)라고 했다. 현법락주의 삶을 말한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법구경에서는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Dhp.204)이라고 했다.
열반은 지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왜 열반에 대하여 최상의 행복이라 했을까? 열반을 제외한 다른 것은 지각할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지각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최상의 행복이다. 왜 그런가? 적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열반이야말로 최상의 행복, 궁극적 행복이라고 했을 것이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무엇인가? 열반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불사의 길로 가는 것이다. 불사이면 불생이 된다. 불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불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사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잃고 헤매기 쉽다. 경전이야말로 확실한 나침반이다. 여기에 참고서와 같은 논서가 있다. 경전으로서는 오부니까야를 들 수 있고, 논서로서는 청정도론만한 것이 없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좌선을 했다. 연 사흘째이다. 오후 5시 5분에 시작했다. 기필코 한시간 앉아 보고자 했다. 예비수행으로서 암송과 행선을 30분 이상 가졌다. 그러나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망상속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은 멀고 멀다. 청정도론에는 열반에 이르는 길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놓았지만 공덕이 짧은 자에게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전생에 수행공덕이 부족해서 그럴 것이다.
트로트 신동이 있다. 전생에 트로트 가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신동이 있다. 역시 전생에 바이올린을 만졌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현생에 한수행한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역시 전생에 수행자로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
열심히 노력하고 슬기로운 수행승이라면,
이 매듭을 풀 수 있으리.”(S1.23)
상윳따니까야 '매듭의 경'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동시에 청정도론 오프닝테마와 같은 게송이다. 계, 정, 혜 삼학에 대한 것으로 청정도론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게송에서 주목하는 말이 있다. 윤회의 매듭을 풀려거든 먼저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지혜인가? 생이지를 말한다. 학습해서 얻어진 지혜가 아니라 타고난 지혜이다. 그래서 '지혜를 갖춘 자(naro sapañña)'라고 했다.
지혜 있는 자는 지혜를 갖춘 자를 말한다. 그래서 빠알리어 사빤냐(sapañña)는 한역으로 유지혜자(有智慧者) 또는 구유지혜자(具有智慧者)라고 하는데, 이는 지혜를 구족했다는 뜻이다. 이는 다름 아닌 ‘생이지자(生而知者)’를 말한다.
타고날 때부터 지혜를 갖춘 자가 있다. 이런 자가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게송에서는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S1.23)라고 한 것이다.
청정도론에서는 위 게송을 주제로 하여 방대한 계, 정, 혜 삼학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현생에서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지혜를 갖춘 자는 세 가지 원인에 의한 업생적 결생의 지혜로 지혜를 갖춘 자이다.”(Vism.1.7)라고 했다.
지혜구족자는 세 가지 원인으로 태어난다고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주석에 따르면 세 가지 원인은 무탐, 무진, 무치를 말한다. 전생에 탐, 진, 치를 소멸하는 수행을 한 자가 그것을 원인으로 해서 이 생에 태어났음을 말한다.
트로트 신동처럼, 바이올린 신동처럼 한수행하는 자는 타고난 자이다. 이에 대하여 붓다아비담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두 가지 원인 있는 사람은 지혜(통찰지)가 부족한 지혜와 결합하지 않은 큰 과보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과 천신을 일컫는다. 이 개인들은 제아무리 노력해도 현생에서는 선정과 도를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현생에서의 명상수행을 하려고 노력한 과보로 다음 생에는 ‘3가지 원인이 있는 개인’이 되어, 명상을 다시 하면 쉽게 선정과 도를 얻을 수 있다.” (붓다아비담마, 231쪽)
주석서에 따르면 내가 수행을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전생에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혜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정에 들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생에 되지 않으면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한다. 이번 생에 명상수행을 하면 그 과보로 다음 생에서는 세 가지 원인, 즉 무탐, 무진, 무치를 조건으로 결생할 것이기 때문에 수행자로서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명상을 다시 하면 쉽게 선정과 도를 얻을 수 있다."라고 했다. 희망의 메세지가 아닐 수 없다.
어제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제 보다 조금이라도 더 앉아 있어야 한다. 집중이 되지 않아 망상으로 가득했지만 인내하기로 했다.
어제 30분 앉아 있었다. 어제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30분 이상 앉아 있어야 했다. 번뇌와 망상으로 가득했지만 버텨 냈다. 한시간 채우고자 했다. 얼마나 시간이 되었을까? 시계를 보니 50분 앉아 있었다.
어떤 이는 수행기를 쓰지 말라고 한다. 개인적인 일을 왜 세상에 알리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초보수행에 대한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향상되는 모습, 어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수행기를 보고 코치 하고자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여 충고하는 것이다. 한수행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초보단계 수행자의 행태를 보고 우월적 자만을 가질지 모르겠다.
수행자로서 삶을 살고자 한다. 전생에 수행공덕이 부족하여 선정에 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그래도 앉아 있으면 편안하다. 비록 번뇌가 죽 끓듯 해도 감각대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거의 매일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은 방석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단 5분도 앉아 있기 힘들 것이다. 아니 앉아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평생 수행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수행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생에 안되면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한다. 다음 생을 위한 발판이라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다음 생에 수행자로 살려거든 이번 생에 수행자로 살아야 한다. 지혜를 갖춘 자로 태어나기 위함이다. 어제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
2022-11-1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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