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암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24. 12:14

암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나의 사무실은 암자와 같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암자와 같은 것이다. 요즘 한가하다. 일감은 뚝 떨어진지 오래 되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언제 폭풍처럼 몰려 올지 모른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이 있다. 하루에 최소한 30분은 앉아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30분 앉아 있기도 쉽지 않다. 마음이 감각대상에 가 있으면 앉아 있을 마음이 없다. 무언가 재미를 추구하다 보면 행선과 좌선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른 아침 일찍 일터에 나와 앉아 있다. 매일 해야 하는 것이 있다. 경전과 책을 읽는 것이다. 읽어야 할 경전도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많다. 언제 이 많은 경전과 책을 다 읽어야 할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한발 한발 가다 보면 멀리 가 있을 것이다. 경전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에 한 게송이라도 읽고, 하루에 한페이지라도 읽으면 어느 때인가 뒤돌아 보면 멀리 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요즘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책 만드는 일이다. 과거에 써 놓은 것을 시기별로,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한권의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78권째 작업 중이다. 일본 성지순례 여행한 것에 대한 책이다. 이것도 욕심 부리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하면 된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

일인사업자에게 시간은 많다. 돈 부자는 아니지만 시간부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일감이 없을 때는 시간부자가 된 것 같다.

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없다. 무언가 남겨야 한다. 그래서 글을 쓴다.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려 놓으면 남는다. 이는 오래 전부터 해 오던 것이다.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책도 읽고 책을 만들고 글도 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행이다. 글을 백번 천번 쓰는 것보다 한시간 명상하는 것만 못하다. 공덕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자바나, 즉 속행이 있다. 무언가 일을 하여 이루면 일시적으러 강한 성취감을 느낀다. 착하고 건전한 행위를 했을 때도 그렇다. 그러나 순간적이다.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명상을 해서 집중된 상태가 되면 자바나, 즉 속행은 계속된다.

한시간 동안 선정에 들었다면 한시간 동안 수행공덕을 쌓게 된다. 이는 보시를 하여 매우 짧은 순간 일시적으로 성취감을 맛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정수행을 하면 그 공덕에 대한 과보가 크기 때문에 업장을 녹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 오전 명상공간에서 행선과 좌선을 하고자 했다. 양탄자 위를 천천히 걸었다. 어느 순간 집중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좋은 징조이다. 집중은 노력해서도 되는 것이긴 하지만 순간적으로 집중의 문이 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아 6단계 행선을 했다. 그러나 순간적 집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 같다. 그러나 평소와는 상태가 달랐다. 일단 다섯 가지 장애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전 시간은 짧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점심시간이다. 식사(食事)가 대사(大事)가 되어서는 안된다. 무언가 하나 건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미 글도 썼고 경전도 읽었고 책 만들기도 조금 했다. 남아 있는 것은 명상밖에 없다.

행선을 20여분 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에 방석을 걸치고 두 발은 요가 매트리스 바닥에 밀착시키는 평좌를 했다. 두 눈을 감았다. 호흡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코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마하시 방식대로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하는 방식이 마하시 전통에서 권유하는 좌선 방식이다. 이는 풍대를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배의 움직임은 결국 호흡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호흡에 따라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볼 수 있다.

배의 움직임을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배의 움직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나만의 방식을 적용해 본다. 배우 움직임을 좀더 확장해서 전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를 경전에 있는 ‘빠리무캉사띠’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빠리무캉사띠는 대념처경을 근거로 한다. 이는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여(parimukha sati upaṭṭhapetvā)”(D22.3)라는 말에 근거한다. 여기서 빠알리어 무카(mukha)는 ‘mouth; face; entrance; opening; front. (adj.), foremost.’의 뜻이 있다. 입, 얼굴, 전면의 뜻이 있는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에서는 빠리무캉사띠에 대하여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는 것”으로 번역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라고 번역했다. 두 번역 공통적으로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것이다. 호흡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사마타 수행이 된다. 그러나 호흡과 관련된 움직임을 관찰한다면 위빠사나 수행이 된다.

흔히 수행처에서 호흡을 보라고 말한다. 이는 호흡에 집중하라는 말과 다르다. 호흡에 따라 배위 부품과 꺼짐은 물론 더 확장해서 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했을 때 호흡은 전면에 있게 된다. 때로 몸 전체가 호흡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되면 호흡을 보기가 쉬워진다.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마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간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특히 마음이 탐욕이나 성냄의 상태에 있을 때 마음의 문으로 들어 갈 수 없다. 그래서 선정의 조건은 먼저 감각의 문을 수호하는 것이다.

감각의 문은 눈, 귀, 코, 혀, 몸을 말한다. 눈이 있어서 대상을 보았을 때 마음은 감각의 대상에 가 있다. 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음이 감각 대상에 가 있으면 들떠 있게 된다.

명상을 하고자 할 때는 TV나 유튜브, 에스엔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뉴스도 보지 말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선원에 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

뉴스를 보지 않는다. 요즘과 같은 시기에 뉴스를 보면 불선법이 일어나게 된다. 뉴스는 보지 않지만 페이스북과 같은 에스엔에스는 하게 된다. 올린 글을 확인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과도하게 집착했을 때 명상에 방해가 된다.

오늘 오전에 행선과 좌선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좌선이 그렇다. 오전시간은 짧기 때문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고작 20분 앉아 있었다.

백천간두진일보’라는 말이 있다. 명상을 한다고 하여 앉아 있을 때 마음 가짐을 말한다. 여기서 미끌어지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마치 졸음 운전할 때 긴장 하는 것과 같다.

운전할 때 졸리면 괴롭다.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아도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순간적으로 졸았을 때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죽음과 직면하면서 사투를 벌인다.

명상도 졸음운전 참듯이 해야 한다. 운전하다 졸면 곧바로 죽음이듯이, 좌선 했을 때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오늘 오후에는 한시간을 목표로 도전하고자 한다.

이 세상에 여러 행복이 있지만 명상하기 위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설령 번뇌가 물밀듯이 밀려 오더라도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그러나 습관 들이지 않으면 앉아 있을 수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 30분 이상 앉아 있고자 한다.


2022-11-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