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하루를 설레임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21. 08:32

하루를 설레임으로

 

 

하루를 설레임으로 시작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오늘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설레였다. 그것은 동쪽 하늘을 흘낏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 굉장한 일출이 될 것 같았다.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급했다. 그 사이 해가 떠 버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18층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다행이 해는 뜨지 않았다. 요즘 해가 짧아져서 그런지 725분이 되었어도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새털구름이 햇볕을 받아 새벽노을을 형성했다.

 

 

남동쪽 모악산 너머로 동녘하늘이 붉은 기운으로 장엄되었다. 이런 날은 드물다. 하늘과 구름과 도시의 완벽한 조화이다. 온갖 쓰레기로 가득한 도시도 이 순간만큼은 숭고하고 거룩해 보인다.

 

안양 사방을 촬영했다. 동쪽으로는 청계산이 보이는 평촌신도시가 전개 되었다. 북쪽으로는 관악산 하늘을 장엄했고, 서쪽으로는 수리산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었다. 하루일과를 떠 오르는 태양과 함께 시작한다.

 

 

 

태양은 어제도 떴고 그제도 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도 있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태양은 동녘 하늘을 장엄하며 떠오를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세계가 있는데

거기에는 땅도 없고, 물도 없고, 불도 없고, 바람도 없고,

무한공간의 세계도 없고, 무한의식의 세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세계도 없고,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태양도 없고 달도 없다.”(Ud.80)

 

 

태양도 없고 달도 없는 세계가 있다고 한다. 해와 달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어두울까? 해와 달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삭막할까? 그런데 해와 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열반의 세계이다.

 

열반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은 비유로서 설명해 놓았다. 본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이지만 비유로 설명하면 눈 있는 자들은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이다.

 

열반의 세계는 물리적으로만 없는 세계는 아니다. 정신적으로 없는 세계이다. 어떤 세계일까? 부처님은 또다시 비유로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없다면,

세상에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부터의 여읨이 알려질 수 없다.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세상에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부터의 여읨이 알려진다.(Ud.80)

 

 

열반의 세계는 여읨의 세계이다. 무엇을 여의는 것인가? 갈애를 여의는 것이다. 갈애를 여의면 열반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했다. 정신적 오염원을 남김없이 사라지게 했을 때, 세상속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고 사는 것이다.

 

열반의 세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가까이에 있다. 열반은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자만, 견해, 의심 등과 같은 오염원을 남김 없이 여의었을 때 열반의 세계가 된다.

 

오늘 하루도 일출과 함께 시작되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늘 사띠를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유튜브를 보고 에스엔에스를 하게 되면 마음이 오염된다. 똥구덩이에 빠진 자가 된다.

 

 

마음이 늘 대상에 가 있으면 나의 삶이 아니다. 마치 악마에게 혼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원하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애착의 대상이 되는,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하면,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악마의 소굴에 들어가 악마의 지배를 받는 자라고 한다. 악마의 밧줄이 그를 사로잡고 그가 악마의 밧줄에 묶이면 그는 악마 빠삐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한다.”(S35.114)라고 했다.

 

하루를 설레임으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지금 이후 어떻게 마음이 악마의 지배를 받게 될지 모르지만 자판을 치는 이 순간만큼은 청정하다.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명상을 해야 한다. 마음이 더러워지면 앉고 싶어도 앉을 수가 없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하는 것이고 일이 없으면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빠뜨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30분 이상은 앉아 있어야 한다. 내면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마음을 항상 현재에 두면 괴롭지 않다. 마음을 항상 현재 두면 슬프지 않다. 마음을 항상 현재에 두면 두렵지 않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는 일시적이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떤 원인이 있어서 생겨나는 것은 사라질 때는 조건 없이 사라진다. 사라지고 말 것을 붙들어 매고 있을 필요가 없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떠올랐다.

 

 

2022-11-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