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그때 좀더 참을껄, 그때 좀더 수행할껄, 그때 좀더 베풀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22. 10:26

그때 좀더 참을껄, 그때 좀더 수행할껄, 그때 좀더 베풀껄


영화 버킷리스트가 있다. 영화 대사에서 “당신은 이제까지 인생을 살아 오면서 남을 감동하게 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어 보는 장면이 있다. 말기암 환자 두 명의 남자가 나눈 대화에 대한 것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 보게 될 것이다. 영광된 것보다는 후회스러운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임종을 앞둔 사람은 “그때 좀더 참을껄, 그때 좀더 즐길껄, 그때 좀더 베풀껄”하며 껄껄껄한다고 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본다. 역시 “껄껄껄”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좀더 참을껄이라는 말과 좀더 베풀껄이라는 말이 와 닿는다. 특히 베풀껄이라는 말에 걸린다.

살아오면서 그다지 베푼 것이 없다. 응당 받는 것만 생각했었다. 부모님에게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심지어 아내에게도 받는 것만 생각했었다. 모든 것을 자신 위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된 것 같다.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줄 줄을 모른다. 한평생 받기만 하며 산 사람들은 주는 즐거움을 모른다. 베푸는 즐거움, 나누는 즐거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군대 군가를 보면 ‘한까치 담배도 나누어핀다’라는 가사가 있다. 담배 한까치를 한모듬 빨고, 다른 사람에게도 한모금 빨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우애일 것이다. 일상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식당에서 식사할 때 어떤 이는 서비스를 한다. 테이블 위에 냅킨을 깔고 그 위에 숫가락과 젓가락을 사람 수만큼 올려 놓는다. 그리고 컵에 물을 따라 또한 사람 수만큼 올려 놓는다. 물도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

자타카를 보면 물도 나누어 마신다는 말이 있다. 물은 공짜이다. 공짜이기 때문에 주는 것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식사를 할 때 물도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499번 자타카에 “이 세상에 생을 받은 자에게 보시보다 최상의 것은 없다.”라고 했다. 왕이 두 눈을 다시 얻게 되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어서 왕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했다.


“이것 또한 보고 씨비 국의 백성들아,
그대들은 보시를 행하고 식사를 하라.
능력에 따라 보시도 하고 식사도 하고,
비난 받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라.”(Jat.499)


게송에서는 “보시를 행하고 식사를 하라.”라고 했다. 이는 아마도 고대 인도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본다. 탁발자에게 먼저 보시를 하고 식사하라는 말과 같다. 물도 나눌 정도라면 밥도 나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시는 능력껏 해야 한다. 많으면 많은 대로 보시하면 되고, 적으면 적은대로 보시하면 된다. 보시할 것이 없으면 보시하지 않아도 된다.

보시의 금액에 따라 공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적은 보시라도 능력껏 했을 때 재벌못지 않은 공덕이 된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린다. 글을 올리는 것도 일종의 보시로 본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법보시가 된다. 누군가 글을 보고 공감했다면 할 일을 다한 것이다.

글은 아는 만큼 능력껏 쓴다. 보시를 가진 만큼 능력껏 하는 것과 같다. 조금 알면 조금 쓰는 것이고, 많이 알면 많이 쓰는 것이다. 경전에서 가슴 울리는 문구를 보았다면 타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글을 공유한다.

지난주 일요일 정진산행 할 때 김우헌 선생에게 사진 액자를 주었다. 금요니까야모임 회향 사진을 액자로 만든 것이다. 이런 것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귀한 선물이 된다. 앞으로 모임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사진액자를 선물하려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자애수행 최종단계는 주는 것이다. 이는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알 수 있다.


“보시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를 길들이고
보시는 일체의 이익을 성취하게 하는 것,
보시하는 것과 사랑스러운 말로써
머리를 들고 그리고 머리를 숙인다.”(Vism.9.39)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면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뻣뻣하게 하며 받는 경우는 드물다. 선물을 하면 원한 맺힌 자의 마음도 녹일 수 있다. 그런데 보시는 반드시 물질적 보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보시도 있다. 미소보시도 있고 말로 하는 보시도 있다.

사랑스럽게 말하는 것도 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말로써”로써 보시를 하면, 시주는 머리를 들고 보시를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인다고 했다.

나는 살아 오면서 얼마나 타인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다. 만일 내가 오늘 최후를 맞이 한다면 후회할 것 같다. “그때 좀더 참을껄, 그때 좀더 수행할껄, 그때 좀더 베풀껄”라며 껄껄껄할 것 같다.


2022-11-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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