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고색창연한 강리도를 거실에 걸어 놓는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22. 19:24

고색창연한 강리도를 거실에 걸어 놓는다면


그분이 왔다. 키도 훤칠하고 영국신사처럼 생긴 멋진 사람이 왔다. 최근 간행된 '1402 강리도'의 저자 김선흥 선생이 사무실에 왔다. 김선흥 선생은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일했다.

사무실에 사람이 찾아 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강리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벽에 붙여 놓은 강리도의 인쇄상태를 보기 위함이다. 마치 스님 바랑처럼 생긴 바랑에서 도록과 원두 한봉지를 꺼내 선물로 주었다.

김선흥 선생은 페이스북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그런데 강리도로 맺어진 인연이 더 큰 것 같다. 지도보기를 좋아해서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최근 강리도가 출간되었다. 김선흥 선생의 17년 역작이다. 2005년 처음 강리도의 존재를 발견한 이래 강리도를 추적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리도에 대하여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었는데 마무리 작업이 필요해서일까 일년전에 페이스북을 나갔다. 그리고 일년 후에 마침내 한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강리도가 출간되었을 때 구입 후기를 썼다. 그리고 김선흥 선생에게 공유했다. 이런 노력에 자극 받은 것 같다. 사무실 방문을 하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사무실에는 강리도가 벽에 붙여져 있다. 작년 초에 김선흥 선생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하여 강리도 파일을 입수한 것이다. 규장각 사이트에 가면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강리도를 전지 사이즈로 하여 출력했다. 원본파일은 10메가인데 무척 선명했다. 출력한 것도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무척 선명하다. 이것이 원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설명을 들어 보니 모사품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1983년에 모사한 것이다.

벽에 걸어 놓은 것이 모사품이라는 말에 실망했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지리학 교수가 사람을 시켜서 일본에 있는 강리도를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제 방금 그린 것처럼 선명했던 것이다.

강리도는 1402년에 그려졌다.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10년후에 비단 위에 그린 것이다. 그러나 원본은 사라졌다. 그 대신 1480년대 초반에 모사된 강리도가 일본 류코쿠 대학에 보관 되어 있다. 현존 강리도로서는 가장 오래 된 것이다.

류코쿠본 강리도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류코쿠본을 모사한 강리도가 일본에서 1910년에 제작 되었다. 이를 교토대모사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에 류코쿠 모사본을 또 모사했다. 현재 사무실에 걸려져 있는 강리도가 바로 그것이다.

강리도는 모사에 모사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데 모사 과정에서 빠진 것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983년에 모사된 것을 보면 파로스등대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의 파로스등대를 말한다. 그러나 1910년 교토대 모사품에서는 발견된다. 당연히 1480년 모사본에서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모사본에서는 왜 파로스등대가 사라졌을까?


1980년대 개발팀에서 전설적으로 회자 되었던 이야기가 있다. 1985년에 입사한 회사는 전자부품전문메이커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튜너였다. 튜너는 TV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중의 핵심부품이었다.

회사는 1973년 일본과 합작으로 설립되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합작을 청산하고 독자개발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개발된 튜너에 문제가 생겼다. 일본 것을 그대로 카피했는데 특성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튜너는 고주파부품이다. 인쇄회로기판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특성이 달라진다. 또한 기구물을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주파이기 때문에 철판으로 쉴드를 해 주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기구설계자가 홀을 하나 뚫지 않은 것이다.

흔히 하는 말 중에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라.”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카피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독자적으로 개발하게 된다. 초창기 때는 개발이라기 보다는 카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도 엎어 놓고 베낀다고 하여 ‘데드카피(Dead Copy)’라고 한다.

튜너 기구설계자는 제대로 베꼈어야 했다. 기구설계자에 따르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쓸데 없는 홀이 하나 있어서 무시했다고 한다. 구멍을 막아 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고주파 제품이기 때문에 그 구멍이 꼭 있어야 했던 것이다.

베끼려면 제대로 배껴야 한다. 엎어 놓고 베낄 때는 하나도 빠짐없이 배껴야 한다.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삭제한다면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사건 이후로 연구실에서는 “베끼려면 제대로 배껴라!”라는 말이 전설적으로 전해져 왔다고 한다.

강리도는 한국에서 제작된 위대한 인류문화유산이다. 그러나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강리도의 존재를 몰랐다. 1910년 일본에서 강리도 모사품이 나옴으로서 본격적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에 강리도의 존재를 알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에 1910년본을 모사했다. 그런데 완전히 카피한 것은 아니다. 파로스등대가 빠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파로스등대는 왜 빠졌을까? 아마 모사한 사람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여겨서 자의적으로 그리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에 류코쿠본을 모사했다. 이는 1402 강리도 292쪽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강리도를 모사한 이찬 선생의 노고에 김사드린다. 우리문화 유산을 우리 손으로 다시 그렸다는 것에서는 의미가 있다. 사라진 강리도를 다시 재현한 노고는 크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강리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1480년에 모사된 류코쿠본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디지털본을 인쇄한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종류의 강리도를 전시하고 있는데 유독 1983년 우리나라에서 그린 강리도는 전시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역사가 짧은 것도 있지만 아마도 제대로 표현하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강리도 류코쿠본을 구하고자 한다. 디지털본을 구해서 실사로 출력하는 것이다.현존하는 강리도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1480년대 초반에 모사되었으니 600년된 것이다. 이를 실크인쇄하여 족자형태로 만들고자 한다. 집에 거실에도 걸어 놓고 사무실에도 걸어 놓고자 한다.


거실을 장식하는 것 중에 그림이 있다. 서양화도 있고 동양화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리도와 같은 고색창연한 세계지도를 걸어 놓으면 근사할 것 같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을 걸어 놓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꿈은 실현될 것이다.


2022-11-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