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내가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은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25. 15:47

내가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은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 한다. 어려웠던 때를 떠 올려야 한다. 지옥과도 같은 상황을 떠 올려야 한다. 지금 여기서 누리고 있는 행복은 과거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한 결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시각 새벽 4 23분이다. 모두 잠든 시간이다. 어떤 이는 너무 일찍 일어난다고 한다. 어떤 이는 건강을 염려한다. 잠을 많이 자야 하고, 잠을 자되 숙면을 취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인생을 잠으로 보낼 수 없다.

잠을 자면 꿈을 꾸게 마련이다. 꿈꾸기 위해서 잠을 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꿈은 꿈일 뿐이다. 예지력 등을 기대하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대개는 의식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
수행승이여, 일어나라.
왜 누워있는가?
잠잔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독화살을 맞아 상처받은 자,
병든 자에게 잠이란 무엇인가?"(S9.2)


잠 잘 때 보다 깨어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잠은 잠이 올 때 자는 것이다. 잠은 억지로 청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늘 깨어 있으라고 했다. 잠 들 때는 일어나는 상황을 가정하여 잠 자라고 했다. 잠 들 때도 사띠해야 하고 잠에서 깰 때도 사띠하라고 했다. 꿈을 꿀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잠은 두 시간으로 충분할 수 있다. 가행정진할 때 여섯 시간 잘 것을 네 시간으로 줄이고 더 줄이면 두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이다. 꿈 꿀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항상 깨어 있게 하는 것이다.

숙면을 취하면 정신이 맑다. 맑은 정신으로 일하면 효율이 높다. 그렇다고 반드시 많이 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잠깐 조는 것으로도 극복할 수 있다. 운전하다 졸릴 때 졸음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였을 때 새로운 기분이 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한다. 여기에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 장수, 아름다움, 행복, 건강, 이 네 가지는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는 시주에게 "아유 반노 수캉 발랑(
āyu vaṇṇo sukha bala)”(Dhp.109)이라며 축원을 해준다.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길!"라고 축원 해 주는 것이다.

절에 가면 등을 단다. 축원문을 어떻게 써야 할까? 대부분 자신이 바라는 소원을 쓸 것이다. 대개 정형화 되어 있다. 이른바 사대축원문이라 하여 건강, 학업, 사업, 치유를 말한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이득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다.

사대축원문을 보면 이기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학업기도나 사업기도 같은 것이다. 불보살의 가피를 바라는 기도를 말한다. 모든 기도는 아름다운 것이다. 기도를 하는 것 자체가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갈애가 수반된 기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기도와 축원은 다른 것이다. 기도는 거래가 수반되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면 신을 먼저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축원은 다르다. 자신이 하기를 바라는 것에 대해서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지금 행복한 자도 잠시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사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의 경우는 늘 부처님 가르침과 함께 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기억하고 새기는 것도 사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야 한다. 불자라면 어떤 보험을 들어야 할까? 그것은 다름아닌 공덕이라는 보험이다. 공덕을 쌓는 것이 보험을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인의 공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경전에 근거해서 글을 쓰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이 경전 저 경전을 보고 논서와 해설서, 사야도 법문집을 보면 지식이 풍부해진다. 그러나 지식으로만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지혜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은 공덕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공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말한다. 불자라면 이 세 가지 공덕을 쌓아야 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여 보험을 들어 놓는 것과 같다.

지난주 일요일 성원정사에 갔었다. 한달에 한번 있는 정기 천도재가 있는 날이었다. 천도재 비용과 등 값을 온라인으로 미리 보냈다. 송위지 법사가 가족 축원등을 달아 주고자 했다. 종이에 가족 이름과 생년, 그리고 축원을 쓰라고 했다.

절에 등을 달 때 축원문 문구가 있다. 부처님 원음을 중시하는 불자로서 이른바 사대축원은 지양한다. 그대신 법구경에 있는 사대축원을 지향한다. 그것은 장수, 아름다움, 행복, 건강이다. 이 네 단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원문이다. 그래서 등을 달 때마다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길!"이라는 축원문을 써 놓는다.

송위지 법사가 내 놓은 양식에는 개별 축원문이었다. 그래서 차례로 장수, 아름다움, 행복, 건강이라고 칸에 넣었다. 써 놓고 나니 의미가 있어 보였다. 나의 경우 장수가 축원이 된 것이다.

인간의 수명은 알 수 없다. 수타니파타 '화살의 경'에서도 인간의 수명은 알 수 없어서 애처롭다고 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들이 그렇다. 그렇다면 왜 장로는 시주에게 장수(
āyu) 축원을 해 줄까? 그것은 오래오래 살아서 공덕을 많이 지으라는 말과 같다. 보시공덕뿐만 아니라 지계공덕, 수행공덕도 함께 지으라는 말로 받아 들이면 될 것 같다. 오래 살면 살수록 그에 따라 공덕도 많이 짓게 될 것이다.

왜 사는 걸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그냥 사니까 사는 것일까? "사는데 이유가 있어?"라고 반문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사는게 별거 있어? 즐기며 사는 거지 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는데 이유가 있다. 공덕짓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 짓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는 장수축원을 해 준다. 오래오래 살아서 공덕을 많이 지으라는 것이다.

축원 중에서 최상의 축원은 장수축원이다. 그렇다고 오래오래 즐기며 살라는 것은 아니다. 오래오래 공덕 짓기 위해서 오래 살라는 것이다. 만일 즐기기 위해서 오래 산다면 악덕만 짓게 된다. 즐기는 행위 자체가 공덕과 반대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즐기는 자에게 장수축원을 해 주면 저주의 축원이 될 수 있다. 오래 살아 장기가 손상되는 등 신체가 망가졌을 때 즐기는 삶을 살 수 없다. 장수가 고통이 되는 것이다.

돈 많은 부자가 즐기며 오래 사는 것은 악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보시, 지계, 수행의 삶을 산다면 공덕이 된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 단지 즐기는 것으로 그치면 악덕이 된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공덕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잠을 많이 자야 할까?

지금은 새벽 5 35분이다. 선원이라면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새벽 4시에 첫번째 좌선에 들어갈 시간이다. 인생을 잠으로 보낼 수 없다.


2022-11-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