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3. 14:24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토요일 아침이다. 주오일제를 누리는 자들은 나른한 아침일 것이다. 밖에 영하의 엄동의 날씨이지만 안에만 있으면 추운줄 모른다. 욕실에는 온수가 콸콸 쏟아진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잔뜩 있다. 더구나 김장김치도 있다. 자만에 가득찬 중산층은 "추위여, 오려거든 오라."라고 말할 것이다.

 


자만은 망하는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만이 고개를 드는 순간 망조의 조짐이 보인다. 젊다고 하여 청춘의 교만으로 산다면 늙음이 덥칠 것이다. 병이 없다고 하여 건강의 교만으로 산다면 질병이 덥칠 것이다. 지금 행복하다고 하여 삶의 교만으로 산다면 죽음이 덥칠 것이다.

날씨가 춥다.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춥다. 옷을 껴입고 목도리까지 해도 춥다. 귀가 가장 시렵다. 목도리로 귀를 막아 본다. 잔뜩 웅크린 자세가 된다. 마침 귀마게가 있다. 오늘 일터에 갈 때는 귀마게를 하고 가야 겠다.

 


춥다고 전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일어난다. 나를 죽이려는 적은 취약한 곳을 노려 기습하려 할 것이다. 눈보라와 비바람친다고 안심할 수 없다. 오히려 최악의 날씨일수록 밖으로 나가야 한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오늘 끝내야 할 일이 있다  남들은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보낼 때 차가운 현장에서 보내야 한다. 주말이라 난방도 되지 않는다. 히터에 의지하여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마음 가짐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 걸어가야 한다. 추위를 뚫고 가는 것이다.

일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 일이 없을까?"라고 은근히 고민하던 차에 일이 쏟아졌다. 메일에 두 개나 와 있었던 것이다. 한 건은 재주문이고 또 한건은 신규주문이다. 이전 주문한 것과 합하면 세 건이 걸려 있다.

일이 많다고 해서 부자되는 것은 아니다. 영세사업자가 하는 일은 밥값 정도 되는 자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일감을 주는 담당이 고맙다. 나를 버리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실수가 없어야 한다.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끝장이다.

 


일인사업자에게는 주말이 없다.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다. 일이 없어도 나간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나간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냉골의 일터에서 글쓰기도 하고, 책도 만들고, 경전도 읽어야 하고, 좌선도 해야 한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촛불은 들어야 한다. 이제 일어나야 한다. 따뜻함과 안락함을 떨쳐버리고 삶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2022-12-0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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