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그 사람은 왜 친구요청을 거절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30. 10:05

그 사람은 왜 친구요청을 거절했을까?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친구이다. 어제 책 소개 공지가 떠서 책을 한권 샀다. 페이스북친구(페친)가 공지한 것이다.

페이스북친구는 역사학자이다. 역사소설도 쓰고 있다. 강단에 서지 않기 때문에 재야역사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페친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올린 글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 '좋아요' 등으로 공감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는 읽어야 할 책이 많다. 선물 받은 것도 많다. 책 선물도 선물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었다. "책을 선물하지 말라."라고. 왜 그럴까? 그 사람은 "책을 선물하면 읽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선물한 책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취향에 맞는 다면 흥미롭게 읽어 볼 것이다. 나의 분야가 아니고 나의 관심사가 아니라면 그저 서가에 꼽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책을 선물한 사람을 생각한다면 읽어야 할 것이다.

페친의 책을 돈 주고 샀다. 아마 내일 도착할 것이다. 돈 주고 산 것이기 때문에 읽어 볼 것이다. 늘 공감을 표시해 주는 친구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런 것도 감동을 주는 삶일 것 같다.

페이스북 계정을 새로 만든지 12일 되었다. 지난 5년 동안 사용되었던 구계정은 로그아웃시켜 놓았다. 페이스북친구가 5천명에 달했지만 허수였다. 공감표시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듯이 새계정을 만들어서 관리하기로 했다.

현재 페친은 340명이다. 어제만 해도 50명을 승인했다. 친구요청 승인할 때 특별한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외국인이나 채팅녀는 사양한다. 승인할 때 메세지를 남겼다. 그것은 "친구요청 감사합니다. 공감할 수 있어야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좋아요' 등 공감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이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구독과 좋아요에 목매는 것 같다. 알람 설정도 요구한다. 왜 그럴까?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좋아요' 등 공감에 목 매는가? 그것은 글을 쓸 때 힘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앞서 언급된 공감요청 메세지를 보내지 않는다. 대개 안면 있거나 전에 페친이었던 사람들이다.

친구요청을 했음에도 반응이 없는 사람이 있다. 두 가지 타입이 있다. 검색창에 이름을 넣어 검색하면 알 수 있다. 한부류는 취소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는 왜 요청을 받아주지 않았을까?

그 친구는 며칠전에 댓글을 남겼다. 글이 길다는 것이다. 글을 줄이라고 충고 했다. 또한 글을 너무 자주 올린다고 지적했다. 자신은 일주일에 한번 올린다고 했다. 그런 그는 남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다. 수행과 관련하여 종종 한 수 가르쳐 주는 식으로 충고하기도 했다. 그는 왜 친구요청을 거절했을까?

또 한 부류가 있다. 그녀는 안면 있어서 잘 아는 사이이다. 계정을 새로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친구요청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검색해 보니 "이 검색과 일치하는 결과를 찾지 못했습니다."라는 메세지가 떴다. 이 메세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차단시킨 것일까? 모 신문사 종교전문기자 계정에서도 동일한 메세지가 떴다.

모두 다 친구가 될 수 없다. 성향이 맞는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는 부처님도 인정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뭇삶들은 세계에 따라 관계를 맺고 어울린다. 저열한 경향을 가진 자들은 저열한 경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 탁월한 경향을 가진 자들은 탁월한 경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S14:4)

친구요청을 거부하거나 차단한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된다. 나의 긴 글이 그들을 피로하게 했는지 모른다. 나의 글이 그들의 사상이나 종교에 맞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내 스타일을 포기할 수 없다.

오래 전부터 긴 글을 써 왔다. 블로그에서 쓰던 스타일이 페이스북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블로그는 전문적 글쓰기의 영역이다. 다만 미안한 것은 있다. 긴 글이 페이스북 생태환경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시간 소통을 특징으로 하고 감각위주의 콘텐츠 환경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근거로 하는 긴 글에 질려 버렸을지 모른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특정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껄끄러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한다. 이런 때는 "저는 그 사람의 장점만 보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2022-11-3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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