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성지에 갈 때마다 흰 옷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8. 17:08

성지에 갈 때마다 흰 옷을


스리랑카 성지순례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모레이면 출발이다. 준비는 거의 다 되었다. 항공권은 예매 되었고 비자도 받았다. 비자비용은 94달러이다. 한국의 경우 비자가 면제되는 나라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리랑카는 예외인 것 같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까?

스리랑카는 유럽의 하와이라고 불리운다. 미국사람들이 하와이로 여행 떠나듯이 유럽사람들은 예로부터 스리랑카로 여행 떠났다고 한다. 하와이보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적도 부근에는 수많은 세계적인 휴양지가 있다. 스리랑카는 유럽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가고 싶은 휴양지중의 하나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사람들이 휴양을 즐긴 곳 중의 하나가 스리랑카라고 한다.

스리랑카는 적도에 가깝다. 기후는 연중 따뜻해서 살기에 좋은 나라이다. 고지대의 경우 날씨가 선선하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불교유적과 불교문화의 보고와도 같다.

흔히 스리랑카를 테라와다불교의 종가집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불교가 제3차결집 이후에 곧바로 스리랑카에 전달 되었기 때문이다. 섬의 특성이 있어서일까 한번 전래된 공인된 불교는 옛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문화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문화의 특징이다. 그런데 변방에서는 한번 전승된 문화는 여간 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박제된 것처럼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리랑카에 전승된 불교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스리랑카는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지금은 안정되었다고 말한다. 국가부도가 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관광에 의존하는 취약한 산업기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스리랑카는 제조업기반의 나라가 아니다. 관광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하여 관광객이 급감하고 해외취업으로 들어 오는 돈이 줄어 들게 되자 외화가 부족하게 되었다. 어쩌면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부도난 것인지 모른다.

스리랑카 성지순례를 앞두고 있다. 거의 반배낭식이기 때문에 항공권도 홀로 끊어야 했다. 비자도 홀로 신청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인터넷으로 비자신청한 것이다. 모두 처음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비자비용이 94불이라는 것에 놀랐다. 스리랑카가 확실히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처럼 보였다.

스리랑카 성지순례 시도는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실패로 끝났다. 지금으로부터 만 3년전인 2019년 12월 25일은 스리랑카 성지순례 떠나는 날이었다. 불교방송 해외성지사업단에서 주관하는 패키지여행이었다. 그런데 출발하는 날 새벽에 장인이 돌아가셔서 순례가 무산되었다.

스리랑카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다. 그것은 부처님 당시의 불교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인도대륙에서 마하야나와 같은 새로운 사조의 불교가 유행했음에도 공인된 불교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온 것이다.

스리랑카는 청정도론의 고향이기도 하다. 남방 테라와다불교에서 부동의 준거틀이 되고 있는 청정도론은 오부니까야의 주석서이자 동시에 수행지침서이다. 내용은 방대하다. 불교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정도론을 접한지 십년이 넘었다. 수없이 읽고 또 읽었다. 특히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번역되었을 때는 교정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 두 번 읽었다. 청정도론을 읽을 때마다 불교의 진수를 맛보는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불교에 대하여 의문하고 있던 것이 모두 다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청정도론을 읽어 보아야 한다. 청정도론을 읽어 보면 읽는 맛이 난다. 그리고 불교를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다. 그것은 계, 정, 혜 삼학으로 이루어진 논서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청정도론을 접한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청정도론은 6세기에 붓다고사가 지었다. 스리랑카 마하비하라(대사)에서 집필한 것이다. 그런데 청정도론을 보면 마하비하라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청정도론 대미를 장식하는 결어에서 붓다고사는 이렇게 게송으로 말했다.


그러므로 청정을 원하는
지혜가 청정한 수행자들은
이 청정도론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최승의 분별론자로
유명한 테라바다의
마하비하라 계파에 속하고
슬기로운 님이니,

수순한, 버리고 없애는 삶을 살고
계행을 실천하고
행도에 전념하셨으니
대덕이신 쌍가빨라 존자가 계셨다.”(Vism.23.63)


이 게송은 붓다고사가 쌍가빨라 존자를 찬탄하는 내용이다. 상가빨라 존자가 붓다고사에게 요청하여 청정도론을 지었음을 게송에서 밝히고 있다. 후기에서도 마하비하라가 언급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정도론에 후기가 있다. 후기를 보면 붓다고사에 대하여 찬탄을 해 놓았다. 붓다고사와 청정도론에 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상좌부를 증명하는 마하비하라 사원에 주석하는 장로의 혈통으로 장엄된 광대한 혈통을 지닌 깨달음이 있고, 스승들이 붓다고싸라고 명칭을 부여한, 모란다쩨따까 출신의 장로가 만든 청정도론이라는 이름의 이 책이 세상에 존속하기 바란다.”(Vism.23.64)


붓다고사는 인도 모란다쩨따까출신이다. 스리랑카에서 삼장에 통달한 붓다고사를 초빙하여 마하비하라 사원에 머물게 하면서 청정도론을 집필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볼 수 있는 청정도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스리랑카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다. 또한 스리랑카는 테라와다불교의 고향과도 같다. 스리랑카에 여러 유적이 있지만 가장 관심 있는 곳은 단연 마하비하라사원이다.

스리랑카는 먼 나라이다. 비행기를 두 번 타고 가야 한다. 적도 부근에 있어서 테라와다불교 국가 중에서 가장 먼 나라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 옛날 구법승들이 목숨을 걸고 갔었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4세기에 중국의 구법승 법현이 방문했었던 곳이다.

스리랑카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 법보신문에 따른면 “7세기 중국 당나라의 고승 의정 스님이 구법승들의 행적을 정리한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는 고구려 출신 현유가 스승 승철선사를 따라 사자국, 즉 스리랑카에서 출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라고 했다.

아주 오랜 옛날 구법승들은 목숨을 건 순례를 했었다. 가다 보니 인도대륙 최남단 더 이상 갈 수 없는 섬나라 스리랑카에 이르게 되었다. 구법승들은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고구려 출신의 승려 현유가 스리랑카에서 출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먼 아득한 옛날 육로로, 또는 해상으로 머나먼 이국에 왔었던 것이다. 구법승은 사람도 다르고 기후도 다른 스리랑카에 정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부처님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에 출가하여 일생을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스라랑카 성지순례를 앞두고 옷을 준비했다. 재가불자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흰 옷을 준비했다. 오늘날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법복을 말한다. 상의는 흰 색이지만 하의는 회색이다. 3년전에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입지 못했다. 이제 시절인연이 되어서 입게 되었다.


성지에 갈 때마다 흰 옷을 입으려고 한다. 스리랑카불자들은 성지에 갈 때 흰 옷을 입는다. 태국이나 미얀마 불자들도 흰 옷을 입는다. 대만불자들도 단체로 흰 옷을 입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한국불자들의 복장을 보면 울긋불긋 컬러풀하다.

우리나라 불자들은 법당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다. 테라와다불교 전통의 불자들은 성지에 갈 때 흰 옷을 입는다. 법당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듯이, 성지에 갈 때는 흰 옷을 입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만 3년전 스리랑카성지순례를 가고자 열망했으나 불발되었다.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갔다 왔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도 끝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성지순례도 재개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성지순례는 단순히 즐기는 순례가 아니다. 그 옛날 고구려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구도여행이 되고자 한다.


2022-12-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