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강추위에 도보로 일터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23. 08:16

강추위에 도보로 일터에

 

 

오늘이 올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뉴스를 기피하니 몇 도인지 알 수 없으나 에스엔에스에서는 영하 18도 될 것이라고 한다.

 

아파트는 따뜻하다. 요새 지은 아파트는 방음과 방한이 잘 되어 있어서 대로변에 있어도 시끄러운 줄 모르고 겨울에 추운 줄 모른다. 오늘 새벽처럼 차가운 날에는 집에만 있고 싶어 진다.

 

추운 날에는 게을러지기 쉽다. 집에만 있으면 자세가 나오고 누워 있기 쉽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삶을 편하게 살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다. 편하게 사는 것은 죄악이라고 여긴다. 즐기는 것은 악덕이라고 여긴다. 자신을 강하게 단련해야 한다. 오늘 아침 같은 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터에 차를 가져갈 수 있다. 지하주차장에서 지하주차장으로 가면 추운 줄 모른다. 오늘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다.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단단히 갖추어 입어야 한다.

 

목도리는 기본이다. 마스크는 늘 쓰는 것이다. 머리가 문제가 된다. 이는 등산용 또는 겨울용 모자를 쓰면 된다. 귀를 덮는 모자를 말한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어떤 추위에도 안심이다. 가죽 장갑도 챙겼다. 이제 출발이다.

 

아파트 동 현관에서 657분에 출발했다. 세상은 캄캄하다. 동지에서 하루 지났기 때문에 일곱 시가 다 되어도 캄캄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음의 기운은 약화 되고 양의 기운이 살아나는 날이다. 새해 아침인 것이다.

 

이마트를 지나 경수산업도로를 건넜다. 안양천에 이르자 손이 시러웠다. 가죽 장갑을 끼었음에도 손이 추운 것이다. 사지 중에서 가장 취약한 곳이 손이라고 본다. 가죽 장갑을 낀 손을 잠바 주머니에 넣어야만 보호된다.

 

 

안양천을 건너야 한다. 평소 잘 다니는 징검다리이다. 그러나 다리는 꽁꽁 얼었다. 커다란 바위가 얼음에 덮여 있다. 우회하여 무지개다리로 갈 수 있으나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얼음판으로 변한 너럭바위 위를 조심조심 건넜다.

 

일터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걸린다.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 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요즘 암송하고 있는 빠다나경(Sn3.2)을 외웠다. 오랜만에 암송해본다. 스리랑카 순례 때문에 한동안 암송하지 못했다.

 

빠다나경은 꽤 긴 길이의 경이다. 게송이 무려 25개나 된다. 이 경을 외우는데 66일 걸렸다. 지금은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암송한다. 그러나 암송하고 나면 집중이 잘 된다. 행선을 하기 전에 암송하면 그 집중된 힘으로 행선을 할 수 있다.

 

암송을 하면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암송에 집중하면 근심걱정이 일어날 일이 없다. 왜 그런가? 암송하면 근심걱정은 이전 마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암송해서일까 80프로 가량 기억해 냈다.

 

일터에 도착했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좋다. 해가 뜨면 날 새는 것 같다. 일터 건물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 동녁 하늘을 촬영하기 위해서이다. 평촌신도시 너머 하늘이 불그스름 하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무실 문을 열었다. 스리랑카순례 기간 중에 자리를 비웠어도 식물은 잘 자라고 있다. 불과 8일 사이에 알라카시아에는 새로운 잎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행운목꽃이 반겨준다.

 

행운목꽃은 순례기간 중에 절정을 맞이하여 시들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진행중이다. 아마 2-3일 후면 개화할 것 같다. 꽃대가 나올 때까지 나와서 개화를 기다리고 있다.

 

 

행운목꽃을 오랜만에 보게 된다. 그것도 주어온 행운목이다. 아파트단지 쓰레기버리는 날에 누군가 버린 것을 주어 온 것이다. 잎파리가 몇 개 없어서 몰골은 처참했다. 그런데 여기 온지 6개월만에 새잎이 나고 마침내 꽃대가 나왔다. 그것도 네 개나 나왔다.

 

 

행운목꽃 향기가 나는 아침이다. 아침에는 절구커피를 마셔야 한다. 원두를 절구질하여 종이필터에 걸러 마시는 것이다. 기계로 돌려 가는 것과는 맛이 다르다. 절구질하면 알갱이가 제각각 인데 바로 이것이 맛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다. 오늘도 하루일과가 시작되었다.

 

 

2022-12-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