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동지날 팥죽과 동시성 현상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23. 15:48

동지날 팥죽과 동시성 현상

 


꿈속에서 본 듯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꿈속에서 본 듯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융은 이를 동시성 현상(synchronicity)이라고 했다.

어제 도반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일 청계사로 팥죽가지러 오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30분 전에 페이스북에서 어는 페이스북 친구가 "내일 어는 절이든지 가면 팥죽 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 글을 읽고 "나도 내일 팥죽먹으로 절에 가볼까?"라고 생각하던 차에 전화를 받은 것이다.

내일 동지날에 절에 가면 어느 절이 좋을지 생각했다. 그러나 딱히 마땅한 절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던차에 도반으로 부터 전화를 받은 것이다. 이것도 동시성 현상으로 이해해야 할까?

동시성 현상은 알고 있었다. 한때 융의 분석심리학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꿈의 해석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해 보고자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더이상 분석심리학에 관심갖지 않는다.

동시성 현상이란 무엇일까? 이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것 같은 두 개의 사건, 예컨데 정신적 사건과 물질적 사건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약간 오컬트적이다.

융이 주장한 동시적 현상은 주류 정통학문에서는 지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봄이나 파울리는 융의 동시적 현상을 지지했다. 융은 자신의 책에서 동시성 현상의 한 사례를 소개했다.

융은 환자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환자는 꿈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부터 황금색 풍댕이 모양의 보석을 선물받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진료소 창문에 황금색 풍댕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 풍댕이를 잡아서 환자에게 주었다고 한다. 아마 이것이 동시성 현상의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오늘 12월 22일 동지날이다.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오늘만 지나면 내일부터는 낮이 차츰 길어진다. 음기운은 약화되고 양기운이 차츰 늘어나는 날이다. 그래서일까 옛날부터 동지날을 한 해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런 이유로 동지를 작은 설날이라고 한다.

 


오늘 오전 청계사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글이 길어져서 가지 못했다. 도반은 오후에 오라고 했다. 팥죽이 동나서 더 끓여야 한다고 했다.

오후 3시 이전에 청계사에 도착했다. 사시사철 늘 가는 곳이다. 안양권 제일의 사찰이다. 안양, 군포, 의왕, 과천의 백만인구가 청계사의 배후가 된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 청계사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몹시 추운 날씨이다.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가 되는 것 같다. 산사에는 모든 것이 꽁꽁 얼어 붙었다. 절의 입구에 해당되는 만세루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절에 가면 법당에 가야 한다. 대웅전에서 삼배해야 한다. 대웅전에 큰 제사가 있는 것 같다. 갖가지 컬러풀한 휘호가 휘날린다. 그럼에도 들어가고자 했다. 법당보살에게 "들어 갈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법당보살은 "못 들어가요. 제사지내요."라며 짧게 말했다.

 


청계사에는 와불이 있다. 엄동설한에 와불이 몹시 추워 보였다. 미얀마나 스리랑카의 와불은 실내에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처럼 밖에 모셔져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런 와불은 열반상이기 쉽다.

청계사와 인연은 안양에 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95년 이후를 말한다. 그때가 언제가였던가 아마 200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때 청계사에 갔었다. 그날은 부처님오신날이었다. 아직 정식불자가 아니었던 때이다. 가서 보니 큰스님 법문이 있었다.

큰스님은 풍채가 좋았다. 말도 시원시원하게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스님은 "한번 넣어봐. 넣고 말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보시함에 넣으라는 것이다. 아마 보시공덕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경내에는 여러 개의 플랜카드가 있다. 그 중 한개를 보니 "OO OO 대종사 원로의원 되심을 경하드립니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큰스님은 이후 대종사가 되었는데 이번에 원로의원이 된 것이다.

청계사는 의왕 청계산 남쪽 자락에 있다. 경허스님이 출가한 절로 알려져 있다. 스님이 일곱살 때 어머니 손 잡고 온 절이다. 그래서일까 절에는 경허스님 부도탑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만공스님 부도탑도 있다. 모두 다섯 기의 부도탑이 있다. 모두 근대 한국선불교의 중흥기를 이끈 기라성 같은 스님들의 부도탑이다.

청계사는 현재 불국사 문중에 속해 있다.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의왕에 있는 청계사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큰 스님 상좌스님들이 청계사에 살면서 주지로도 있다는 것이다.

청계사는 '우담바라 핀 청계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큰스님이 90년대 말에 청계사 주지로 왔을 때 일어난 일이다. 이 기적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결과 퇴락했었던 절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오늘날의 청계사는 큰스님이 중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부처님보러 절에 간다고 말한다. 이는 스님보러 절에 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부처님이 있어서 간다는 의미와 같다. 절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살고 있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다. 스님들은 오고 가지만 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천년동안 그대로 있다. 그래서 스님보러 절에 간다기 보다는 부처님 보러 가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있어서 가는 것이다.

도반은 귀가 했다가 다시 왔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 온 것이다. 오후 3시에 공양식당에서 만났다. 오전에 팥죽이 동나서 새로 만든 팥죽을 쑤었는데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

 


팥죽은 포장해서 가져 가야 한다. 큰 용기 하나 가득 담으면 3인분이라고 한다. 두 개나 주었다. 과거 인연이 있어서 대우 받는 것 같았다.

도반은 능인선원 동기이다. 2004년 불교교양대학 동기로 인연 맺었다. 40대 때 만나서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마치 가족과 같다. 그런데 도반은 의왕으로 이사오면서 청계사에 다니게 됐다. 청계사 불교대학도 수료했다. 지금은 지장회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도반은 옛인연을 잊지 않았다. 어느 절이든지 절에 가서 팥죽을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 왔다. 어쩌면 이것도 동시성 현상일 것이다.

오늘은 동지날이다. 절기상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영하의 한겨울이지만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한달 후에는 설날이다. 2월 4일이면 입춘이다. 3월 2일이면 개학이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일 뿐인데 정서적으로는 봄이다.

오늘 저녁에는 식구들과 팥죽을 먹을 수 있겠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도반과 청계사에 감사드린다. 팥죽은 부처님 유산으로 알고 먹고자 한다. 팥죽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새해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2022-12-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