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송으로 극적반전을
반전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양상을 뜻한다. 극적반전이라는 말도 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반전 없는 영화는 상상할 수 없다. 삶에서 반전은 없을까?
오늘 아침 잠에서 깼을 때 찌푸둥했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음을 말한다. 이럴 때는 반전을 꾀해야 한다. 그것도 극적반전이다.
속이 좋지 않다. 스리랑카 순례 때는 속이 편했다. 한번도 한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한식을 하고 나서부터는 불편하다. 맵고 짠 음식도 영향있는 것 같다. 과식도 있다.
불편한 속을 한방에 잡을 수 있다. 십년환을 먹는 것이다. 십년환 반주먹을 먹고나면 한결 부드러워진다. 플라시보 효과일까? 십년환이 떨어져 간다. 몇 통 더 신청해야겠다.
요즘 해가 짧다. 밖이 컴컴하다. 그렇다고 새벽은 아니다. 아마 여섯 시는 넘었을 것이다. 이 시간에 에스엔에스를 하면 마음을 빼앗긴다. 마음이 악마의 영역에 있기 쉽다.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방에서 가볍게 걸어 본다. 그냥 걷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경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경행이 수행이 되기 위해서는 발의 움직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걸을 때 의도를 알아차려야 한다. 경행이 행선이 되는 것이다.
행선을 해 보지만 쉽지 않다. 잘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비장의 무기가 있다. 비밀병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암송이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동굴같은 방에서 암송해서일까 잘 떠른다. 스리랑카 순례로 공백이 있었지만 외워 놓은 것이 척척 떠오른다. 아마 매혹적인 형상이 있는 곳이나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방해 받을 것이다.
한순간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마음은 한순간에 하나의 일밖에 할 수 없다. 마음을 집중하려면 대상에 집중하면 된다. 이것이 사마타 수행이다. 경을 암송하는 행위도 사마타 수행에 해당된다.
사마타 수행을 하면 집중된다. 빠다나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을 때 집중이 되었다. 이를 반전이라 말 할 수 있다. 그것도 극적반전이다. 왜 극적반전인가? 몸과 마음이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암송으로 집중된 힘을 행선에 적용해야 한다. 무턱대고 걷기만 한다고 해서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경행하다 보면 집중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럴 때는 암송이라는 비밀병기를 사용해야 한다.
암송으로 집중된 힘을 행선에 적용했다. 발의 움직임이 잘 관찰된다. 마음이 발의 움직임에 붙어 있다. 마치 좌선할 때 마음이 호흡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 바로 이것이 수행에 있어서 사띠라고 볼 수 있다.
행선할 때 발의 움직임을 아는 것은 사띠이다.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의도를 아는 것이다. 방향을 돌릴 때 의도를 아는 것이다. 한발 내딛을 때도 의도를 아는 것이다. 의도가 있어서 행위가 있다.
행선을 할 때는 의도도 알아야 하고 행위도 알아야 한다. 이는 정신과 물질을 아는 것이 된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이 된다.
행선을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와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생겨난다. 이는 집중된 상태에서 가능하다. 순간집중된 상태를 말한다.
행선에서 마음이 집중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진다. 마치 자동차가 시동이 걸려서 정주행하는 것과 같다. 똑같은 움직임을 반복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그대로 두면 언제까지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행선하면서 생각할 수 있다. 행선 따로 마음 따로가 되는 것이다. 이때 떠오르는 생각은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 마음이 집중된 상태이기 때문에 오래 전의 기억도 떠 오른다. 오래 전에 들었던 것, 경전에서 봤던 문구도 떠 오른다. 때로 종합되고 정리되기도 한다.
행선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각과 느낌에 대한 것이다. 접촉이 일어 났을 때 지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망상이 된다. 접촉이 일어났을 때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연기가 회전 된다. 전자는 마음의 문이고, 후자는 감각의 문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두 가지 문이 있다. 하나는 감각의 문이고, 또 하나는 마음의 문이다. 감각의 문은 안, 이, 비, 설, 신이라는 문을 말한다. 이를 오문이라 말할 수 있다. 마음의 문은 감각의 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에 들어 오는 문을 말한다. 이를 지각으로 본다. 빠알리어로 산냐라고 한다.
감각의 문에서는 느낌이 발생된다. 마음의 문에서는 지각이 생겨난다. 느낌과 지각은 원초적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끝이다. 왜 그런가? 느낌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갈애가 일어나 집착이 되기 때문이다. 연기가 회전하는 것이다. 결국 업이 된다. 지각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망상이 된다. 허공속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접촉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에스엔에스에서 글을 보는 것도 접촉이다. 이를 지각이라 말할 수 있다. 언어로써 개념화 된 것을 말한다. 여기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망상이 된다. 지각한 것을 사유하고, 사유하다보면 망상과 희론이 된다. 산냐(지각)에 놀아나는 것이다.
늘 알아차려야 한다. 이는 스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느낌이나 지각에 끄달리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업짓기 하지 않음도 해당된다.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본다.
행선을 하면서 생각할 수 있다. 마음이 집중된 상태에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보석같은 것이다. 또한 행선에서 집중된 힘을 좌선으로 가져 갈 수 있다.
자리에 앉았다. 평좌를 하고 앉았다. 행선에서 집중을 그대로 가져 왔기 때문에 따로 집중하느라 애 쓸 필요가 없다. 자동으로 사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라면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
오늘 아침 세 가지를 했다. 암송과 행선과 좌선을 했다. 마음이 혼탁한 상태에서는 행선을 해도 집중이 되지 않고 좌선을 해도 집중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극약처방을 해야 한다. 마음을 반전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극적반전이다. 나에게는 암송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도 그럴까?
2022-12-2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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