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여전히 현역이고 싶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4. 07:22

나는 여전히 현역이고 싶다


오늘 발주서를 하나 받았다. 새해 들어 처음 받은 것이다. 주고객사로부터 받았다. 재주문이다. 이른바 리피트오더를 말한다.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올 한해 사업을 스타트한 것이다.

주문서를 받으면 철해 둔다. 철하려 하다 보니 철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세 개를 만들어야 한다. 2023년 매출세금계산서 철, 2023년 매입세금계산서 철, 그리고 2023년 주고객사 주문서 철을 말한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 철을 만들다 보니 작년 2022년 철은 자연스럽게 퇴장 하게 되었다. 2022년 철을 보니 두툼하다. 한 철 당 70페이지 이상 되는 것 같다. 한달에 5건만 발행해도 60페이지가 된다. 매입은 이보다 약간 적다.

 


2022
년 세 철의 무게가 꽤 된다. 내가 지난 일년 동안 일한 증거가 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돈은 남아 있지 않다. 알한 증거물만 남아 있는 것이다.

모으는 버릇이 있다. 아무것이나 모으지 않고 삶과 관련된 것, 생계와 관련된 것을 모은다. 업무노트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둔다.

직장생활은 1985년부터 했다. 1985 7 S그룹 그룹공채로 들어간 것이 회사생활의 시작이다. 그때 당시 수원에서 근무했었다.

업무노트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이다. 업무노트에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해 놓았다. 회의 내용은 물론 아이디어 구상, 심지어 낙서도 써 놓았다. 이렇게 기록을 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회사에 일본 고문이 있었다. 일본 기술고문을 말한다. 사업부마다 한명씩 있었다. 그 고문의 이름은 하야시 토시오이다. 우리말로는 임민웅이다. 보통 하야시 고문이라고 불렀다.

일본 고문은 늘 기록했다. 실험한 것을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를 눈 여겨 보았다. 좋은 점은 본받아야 한다. 일본 고문의 기록 습관을 본 받고자 한 것이다. 이후 업무 노트에 기록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기록했다.

해가 지나면 업무노트를 새로 장만해야 한다. 지난 업무 노트를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 사람들은 버렸다.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버리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도 모두 모아 두었다.

한해 두해 여러 해가 지나자 업무노트도 많아 졌다. 업무노트를 일기 쓰듯이 기록하다 보니 하나로는 부족했다. 일년에 여러 권 썼다. 평균 4-5권 쓴 것 같다.

업무노트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 5, 10년이 되자 몇 박스 되었다. 회사를 옮길 때도 버리지 않았다. 양이 많아 졌을 때 집에다 보관 했다.

직장생활은 20년 했다. 이후 일인사업자로 살고 있다. 사업자로 살면서도 업무노트를 썼다. 그리고 버리지 않았다.

 


3
년전에 업무노트를 정리했다. 시기별로 분류해서 라벨을 만들었다. 30년 이상 모은 노트는 100권 가량 된다. 이를 사무실 책장에 진열해 놓았다.

업무노트만 모아 놓은 것은 아니다. 개발한 제품도 모아 놓았다. 애써 개발한 셋톱박스를 기념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직장생활 20년 동안 수많은 모델을 개발했다. 회로 엔지니어,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살면서 개발한 것이다. 어찌 보면 나의 작품같은 것이다. 역시 책장에 진열해 놓았다. 그러나 개발한 것에 비하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금계산서도 모아 두었다. 사업자등록증을 낸 것은 2006년부터이지만 성과가 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이다. 2008년이후 2022년까지 15년동안 매출세금계산서와 매입세금계산서를 철해서 모두 모아 두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업자로 살면서 글을 썼다. 직장 다닐 때는 꿈도 꾸지 못하던 것이다. 200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쓰다시피 했다. 한번 쓴 글은 버리지 않았다. 블로그에 카테고리 별로 분류하여 모두 저장해 두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블로그에 저장해 둔 글을 책으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2018년에 처음으로 책을 만들었다. 이후 시기별로 카테고리별로 구분하여 꾸준히 만들었다.

 


현재 책은 79권 만들었다. 모두 pdf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인쇄-제본하여 종이책으로도 만들었다. 보관용이다. 역시 책장에 진열해 두었다.

현재 사무실 책장에는 업무노트 100, 개발제품 20, 블로그 책 70권이 진열되어 있다. 또 다른 책장에는 계산서 철이 15년 분량 것이 진열 되어 있다.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모아 온 것이다. 이런 것도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작년부터 국민연금 수급자가 되었다. 이제 은퇴할 시기가 된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정년이 되어 오래 전에 은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인사업자에게 정년은 없다. 일감이 있는 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가는 것이다.

일인사업자로서 삶을 살고 있다.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한다. 일도 하고 글도 쓴다. 요즘은 행선과 좌선 등 수행도 겸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왜 그런가? 일감이 있는 한 나는 현역이기 때문이다.

은퇴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재산이 있거나 연금이 풍족하다면 천상과 같은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일 없이 사는 것은 인생이 지루하고 권태로울 것이다. 시간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부자가 되었을 때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서 시간만 보낸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정년도 지나고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 더구나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이어서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하고 있는 한 나는 여전히 현역이다. 아니 나는 여전히 현역이고 싶다.


2023-01-03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해 주는 스승이 없어서  (0) 2023.01.06
기술이 있으면 굶지 않는다  (0) 2023.01.05
올해 나의 십대뉴스는  (0) 2022.12.31
올해 끝자락에서  (0) 2022.12.31
커피를 선물받았는데  (0) 2022.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