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인도해 주는 스승이 없어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6. 07:09

인도해 주는 스승이 없어서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 지금도 없고 옛날에도 없었다. 예전에는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요즘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후회의 느낌도 든다. 그때 학생시절에 "나를 인도해 주는 스승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인생을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것 같다. 별다른 꿈도 없었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태어났으니 그냥 사는 것처럼 생각했다. 특별한 존재도 아니었고 특출난 재능을 가진 존재도 아니었다. 늘 한발 비켜 뒤에 있는 사람이었다. 앞에 나선 적이 없었다.

사미로 출가하면 은사스님이 정해진다고 한다. 스승이 정해지는 것이다. 스승은 길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제자를 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케이스는 특별한 사람에게나 해당된다. 보통사람에게는 기회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필요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특별한 꿈이 없었기 때문에 시류에 편승해서 흘러갔다.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사십대 중반까지 그렇게 살았다.

어느 때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교에 귀의하면 될 것 같았다. 불교를 종교로 가지면 돌파구가 있을 것 같았다. 3년 동안 간만 보다가 마침내 2004년 불교교양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불교는 신세계나 다름없다. 새로운 하늘과 땅이다. 초기불교를 접하고서 그랬다. 세상에 이런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2009
년 마하시사야도의 십이연기 법문집을 접하자 내가 이제까지 의문하던 것이 다 있었다. 이후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보니 마치 보물창고의 문을 여는 것 같았다. 요즘 니까야와 각주에 있는 주석을 보면 읽는 맛이 났다. 마치 오래 전에 잊고 있었던 것을 접하는 것 같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조금만 일찍 불교를 만났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라며 아쉬워하는 것이다. 40대가 아닌 30대 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인생의 시행착오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불교를 20대 때 만났다면 어땠을까?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을 것이다.

사실 불교는 10대 때 만났다. 중학교 때 불교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동대부중을 말한다. 그때 처음 불교를 접했다. 중학교를 배정 받아 입학 했는데 불교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 교법사가 있어서 부처님 일생부터 가르쳤다.

순수의 시절이 있다. 유년기를 말한다. 자아개념이 강화되기 이전의 시기를 말한다. 무엇이든지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기이다.

또 하나의 순수의 시기가 있다. 청소년 시기이다. 이 때도 순수의 시기나 다름 없다. 아직 사상에 오염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접한 신앙을 온전히 받아 들인다. 중학교 때 불교가 그랬다.

불교와의 공백이 있다. 10대 때 접한 불교를 40대 때 다시 만났다. 마치 돌아온 탕자와 같았다.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인생에 대한 의문을 잔뜩 안고 만났다.

늦게 불교를 접했다. 늦게 접한 불교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하루일과 중에 대부분을 불교경전을 근거로한 글쓰기, 경전읽기, 암송하기, 행선, 좌선 등으로 보낸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으로서의 스승은 없다.

스승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승을 찾아 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스승인지 알 수 없다. 유명하다고 해서 다 스승이라 할 수 없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부처님 말씀과 달리 말한다.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스승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르침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논파할 수 없는 가르침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다. 빠알리니까야만한 스승이 없다.


윤회속에서 유전하는 어리석은 자는
인도해줄 자가 없는 것처럼
어떤 때는 공덕을 짓고
어떤 때는 악덕을 짓는다.”(Vism.17.119)


청정도론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지난시절 나의 삶을 되돌아 보건데 나는 장님 같았다. 선천적으로 눈이 먼 장님을 말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공덕을 짓고 어떤 때는 악덕을 지은 것이다. 마치 장님이 울퉁불퉁한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불교를 좀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승이 없다면 일찍 알았더라도 별로 소용 없었을 것 같다. 스승이 있어서 길을 알려 주었다면 울퉁불퉁한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방황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3-01-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