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스리랑카 성지순례기7, 아누라다푸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7. 11:15

스리랑카 성지순례기7, 아누라다푸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누라다푸라에 도착했다. 정오가 좀 안되어서 도착했다. 스리랑카는 어디를 보아도 풍요롭다. 어디를 보아도 야자수가 있고 어디를 보아도 초록의 바다이다. 더구나 기후도 좋다. 온도가 30도가 안되어서 쾌적하다. 하늘은 청명하고 햇볕은 찬란하다. 이곳이야말로 천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니 불교인들이 바라는 불국토같다.

오늘 12월 12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된다. 먼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는 호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이다. 운전기사 가미니가 잡은 것이다. 숙소 명칭은 ‘LEVI'S Tourist Accommodation’이다.


숙소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구글 검색해 보니 사이트가 뜬다. 부킹닷컴에 ‘Levi's Tourist – Anuradhapura’(https://www.booking.com/hotel/lk/lievis-tourist-anuradhapura.en-gb.html)라는 명칭으로 소개 되어 있다. 숙소는 아누라다푸라 시내에 있다.


지도를 보니 아누라다푸라 고대도시 바로 옆에 있다. 유적지가 있는 고대도시를 신성도시(Sacred city)라고 하는데 숙소가 있는 곳은 신시가지에 해당된다. 보리수가 있는 스리마하보디와는 4.2키로 가량 떨어져 있다.


아누라다푸라를 왜 신성도시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198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아누라다푸라를 비롯하여 여섯 곳이 등재되어 있다. 아누라다푸라 신성도시, 폴로나루와 신성도시, 시기리야 고대도시, 담블라 황금사원, 캔디 신성도시, 갈레 구도시 및 요새를 말한다.

스리랑카에서 신성도시는 세 곳이다.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캔디를 신성도시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두 곳의 고대도시가 있다. 시기리야와 담블라를 말한다. 이뿐만 아니다. 갈레와 같은 식민지 문화 잔재도 있다.

작은 섬나라에서 이렇게 신성도시와 고대도시가 많은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것은 불교와 관련이 있다. 기원전에 불교가 전래되어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 피웠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중국 구법승들이 사자국, 스리랑카를 찾았을 것이다.

본래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문화가 높으면 주변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구법승들이 찾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가르침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과 같다.

유학을 가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국내에서 이룰 것이 없을 때 스승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멀리 바다 건너 해외로 떠난다. 옛날에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구법승들이 목숨을 걸고 인도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에는 없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간 것이다. 이는 불교의 전래와 관련이 있다. 여러 불교전통이 들어 왔을 때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떠났을 것이다. 스리랑카도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스리랑카 불교는 대체로 원형대로 잘 보전 되어 있다. 제3차 결집과 관련된 불교의 원형이 보전 되어 있는 것이다. 인도대륙에서 사조가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전통을 보전해 온 것이다. 아마 이런 것은 섬이라는 특수성에 기인 하는 것인지 모른다.

종교나 사상은 변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중앙에서 변화는 무상하지만 변방에서는 항상하는 경향이 있다. 불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처님 입멸 후 백년 되었을 때 계율 문제로 2차 결집이 일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중앙에 해당되는 중부 인도에서는 계율을 완화하자는 기운이 있었고 변방에 해당되는 서부인도에서는 지키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기원전 3세기의 일이다. 아소까 대왕이 전세계에 담마사절단을 파견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소까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 아소까는 무력에 의한 정복전쟁을 포기하고 그 대신 부처님의 담마로 전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천명했다. 아소까 바위칙령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자비로운 왕은 담마에 의한 정복을 가장 훌륭한 정복이라고 생각한다. 자비로운 왕은 그의 영토에서뿐만 아니라 600요자나의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국경지방의 사람들에게도 이런 담마에 의한 승리를 성취해 왔다.”(아소까 바위칙령13)


아소까는 스스로 자비로운 왕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자비로운 왕이 아니었다. 무력으로 정복전쟁을 한 잔인한 왕이었다. 그러나 무력으로 전쟁을 해서 정복했을 때 전쟁의 참상을 보았다.

아소까는 칼을 버리고 부처님의 담마로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오늘날 안띠오쿠스라고 불리우는 앙띠요까를 비롯하여 오늘날 스리랑카라고 불리우는 땅바빵니에 이르기 까지 아홉 나라에 전도사를 파견했던 것이다. 이를 아소까는 담마비자야(Dhammavijaya), 즉 담마에 의한 승리라고 했다. 아소까는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을 천명한 것이다.

스리랑카는 제3차 결집된 불교를 오늘날까지 훼손하지 않고 보전해왔다. 이는 어쩌면 스리랑카가 변방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에 따른 특수성인 것인지 모른다. 그 결과 부처님의 원음이 오늘날까지 전세계에 전달될 수 있었다.

매일 빠알리니까야를 보고 있다. 또한 교리에 대하여 더 알고 싶으면 청정도론을 본다. 스리랑카는 빠알리니까야의 고향이고 또한 청정도론의 고향이다. 스리랑카 불교가 없었다면 이와 같은 경전과 논서를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나라에 와 있다.

혜월스님은 아누라다푸라 외곽에 있는 토굴에 머물고 있다. 일년에 두 차례 머문다고 한다. 엘에이(LA)에서 아누라다푸라에 오면 삼주가량 머물다 떠난다고 한다.

오늘 오후 순례는 운전기사 가미니와 현지 가이드와 함께 했다. 혜월스님은 토굴에 머물며 지인 등을 만나며 일을 보았다. 미국에서 오면 풀어 놓을 보따리가 많은 것 같다. 스님의 내일 일정은 순례자들과 함께한다.

오늘 점심은 먹지 않았다. 이는 아점, 아침 겸 점심을 실하게 먹었을 뿐만 아니라 도중에 코코넛, 빵 등 이것저것 먹어서 배가 고픈 줄 몰랐다.


오늘 일정이 끝난 후에는 혜월스님 토굴에서 저녁을 먹었다. 스리랑카 전통음식으로 준비한 것이다. 그렇다고 근사하게 한상 차린 것은 아니다. 아마 도움을 주는 사람이 준비 했을 것이다. 나이가 노년에 이른 남자가 도와주는 것 같다. 친척인지 모른다.

메뉴는 간단하다. 밀가루로 만든 얇은 란에 코코넛 젤리가 발라져 있다. 여기에 매콤한 소스를 넣고 말아 먹으면 씹는 맛이 난다. 이곳 아누라다푸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 같다.


과일은 무화과바나나, 스타프루트, 망고가 나왔다. 망고를 제외하고 생소하다. 모두 아누라다푸라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라고 한다.

무화과바나나는 어떤 맛일까? 한번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궁금했다. 걸쭉한 것이 특징이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다. 천연 우유아이스크림 같은 맛이다.


스타푸르트는 어떤 맛일까? 잘라 놓으면 별 모양 같다. 그러나 불가사리처럼 보인다. 키위를 먹는 듯한 식감이 있다. 망고는 어떤 맛일까? 복숭아를 먹는 맛이 난다. 먹고 나면 구두 주걱같은 딱딱한 물체가 나온다.


옥수수도 먹었다. 우리나라 옥수수와 달리 알이 작다. 씹을수록 맛이 난다. 그러고 보니 저녁식사에 육식은 하나도 없다. 아무래도 스님의 밥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저녁 식사 하지 않았다. 식사 후에 실론티를 마시니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이제 편안히 글을 쓴다. 지금 시각은 오후 8시 22분이다. 아누라다푸라 게스트 하우스 'LEVI'S Tourist Accommodation'에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호텔이 아니다. 여행자 숙소와 같은 저렴한 숙박장소이다. 그러나 내부를 보면 호텔 못지 않다. TV는 없다. TV는 필요치 않는다. 따뜻한 물만 나오면 된다.


스리랑카 성지순례 첫 번째 일정을 마무리 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가뿐하다. 느긋한 저녁시간이다. 무려 6시간 강행군하며 마하비하라, 아뱌야기리, 제따와나 등을 순례했다. 수많은 사진을 남겼다. 이를 이제 스토리로 만들어야 한다.



2022-12-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