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스리랑카 성지순례기8, 바위사원 이수루무니야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8. 11:47

스리랑카 성지순례기8, 바위사원 이수루무니야에서


신성도시 아누라다푸라를 순례하기 위해서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2022년 12월 12일 오후 1시경이다. 운전기사 가미니가 운전하는 승용차에는 김형근 선생과 나와 현지인 가이드가 탔다. 혜월스님은 아누라다푸라가 고향이기 때문에 일보러 갔다.


현지에서는 현지인 가이드가 안내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문화재해설사와 같다. 관광객이나 순례객이 오면 연락이 되어서 안내를 하는 것이다. 현지인 가이드는 운전기사와 친밀한 사이인 것 같았다.

운전기사와 해설사는 모두 영어로 말한다. 영어가 짧아서 잘 알아 듣기 힘들다. 그러나 김형근 선생은 미국 뉴욕에서 오래 살아서 말이 통한다. 그러나 간단한 영어를 말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면 어느 정도 알아 들을 수 있다.

운전기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누라다푸라 고대도시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료를 보면 아누라다푸라를 신성도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신성도시는 영어로 세이크리드 시티(Sacred city)이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이다. 왜 신성도시라고 하는 것일까? 구글 검색해 보니 유네스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Sacred City of Anuradhapura

This sacred city was established around a cutting from the 'tree of enlightenment', the Buddha's fig tree, brought there in the 3rd century B.C. by Sanghamitta, the founder of an order of Buddhist nuns. Anuradhapura, a Ceylonese political and religious capital that flourished for 1,300 years, was abandoned after an invasion in 993. Hidden away in dense jungle for many years, the splendid site, with its palaces, monasteries and monuments, is now accessible once again. (https://whc.unesco.org/en/list/200/)


유네스코 사이트에 의하면 세이크리드 시티(신성도시)라고 하는 것은 보리수로부터 시작된다. 이른바 부처님의 깨달음의 나무라 불리우는 보리수를 기원전 3세기에 보드가야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는 스리랑카 불자들의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보리수에서 분양된 수많은 보리수가 스리랑카 전역의 사원에 퍼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스리랑카에서는 여러 부처님의 상징물에 대한 신앙이 있지만 가장 강력한 신앙대상은 보리수이다. 특히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스리마하보디보리수가 그렇다.

현재 스리랑카에서 신성도시는 아누라다푸라를 비롯하여 폴론나루와와 캔디가 지정되어 있다. 모두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아누라다푸라 신성도시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걸어서는 보기 힘들다. 차로 이동해야 한다. 구글지도로 확인해 보았다.

아누라다푸라는 스리랑카 중북부에 중앙에 위치해 있다. 주변은 거의 대부분 평원이다. 도시 주변을 보면 수많은 호수가 있는데 이는 쌀농사를 짓기 위한 것이다. 기원전부터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관개용수를 개발함으로 인하여 풍요로운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누라다푸라 지도를 보면 크게 신성도시구역과 시내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20세기 중반에 신성도시구역에 있는 사람들을 새로 만든 도시로 이전시킨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신성도시는 한동안 잊혀져 있었다. 폐허가 되어 밀림속에 방치 되어 있었던 것이다. 1800년대 초에 영국관리가 고대도시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누라다푸라는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10세기까지 1500년동안 스리랑카의 수도이었던 것이다.

신성도시는 광대하다. 동서로 6키로, 남북으로 10키로가량 된다. 중간중간에 커다란 호수도 있다. 가장 중심지는 루완웰리세이야(Ruwanweliseya) 대탑이다. 청정도론에서 볼 수 있는 대사파, 마하비하라가 있던 곳이다. 이밖에도 북쪽구역에는 무외산사파, 아비야기리가 있다. 남쪽에는 스리랑카 최초 사원 이수루무니야(Isurumuniya) 사원이 있다.


순례차는 먼저 이수루무니야로 갔다.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고 또한 신성도시 투어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원가는 길에 햇볕은 찬란하고 야자수 녹음은 우거졌다. 마치 거대한 공원에 가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지 첫 경험은 강렬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신성도시 아누라다푸라 초입에 있는 이수루무니야 사원도 그랬다. 현지인 가이드는 이를 록템플(Rock Temple)이라고 했다. 바위사원이라는 것이다.


왜 바위사원이라고 했을까? 이는 커다란 바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평원으로 이루어진 아누라다푸라에서 이런 바위산을 보기 힘든데 아마 이런 조건 때문에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이 되었을 것이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이수루무니야 사원에 대하여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이라고 했다. 커다란 바위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이라는 것이다. 스리랑카에 불교를 최초로 전해준 마힌다 장로가 머물던 곳이라고 했다.


마힌다 장로는 마우리아 왕조 3대 황제인 아소까 대왕의 아들이다. 마힌다 장로가 스리랑카에 온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아소까의 담마비자야(Dhammavijaya)와 관계가 있다. 담마비자야는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을 뜻한다.

아소까는 깔링가 전투에서 참상을 보았다. 아소까는 무력에 의한 정복을 포기 했다. 그 대신 담마로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다. 담마에 의한 정복만이 진정한 정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이는 아소까의 바위칙령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소까는 바위칙령과 비문을 인도전역에 세웠다. 아소까는 바위칙령13에서 “담마에 의한 정복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에 행복을 가져온다.”라고 했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일아스님이 지은 책 ‘아소까’에 따르면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적이고 배타성이 없고 관용적이고 평등성에 바탕을 둔, 바른 윤리를 가르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여 서로 평화롭고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열망에서였다. 둘째는 하나의 종교로 이웃나라들을 통일하면 같은 신앙의 동질감에 의한 융화와 이해와 전쟁 없는 친밀한 유대관계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아소까, 275쪽)


아소까 대왕이 담마비자야를 천명한 이유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전세계 아홉 나라에 담마사절단을 파견했다. 이 중에서 스리랑카는 공인불교가 뿌린 내린 곳 중에 하나이다.


아소까 대왕이 담마비자야를 천명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는 자신의 아들들, 손자들, 증손자들이 새로운 정복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설령 군대로 백성을 정복했다고 하더라도 가벼운 처벌과 관용의 정책을 채택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담마에 의한 정복만이 진정한 세계정복이라고 믿은 것이다.

아소까 대왕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아소까의 꿈은 이루어졌다고 본다. 왜 그런가? 아소까는 자신의 아들 마힌다 장로를 스리랑카로 보내서 불교의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리랑카에서 뿌리 내린 불교는 이후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로 전파되었다.


오늘날 빠알리삼장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빠알리 삼장은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3차결집된 불교가 전세계로 퍼져 나간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원음을 접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한글로 번역된 빠알리 삼장을 볼 수 있다. 이는 스리랑카 승가에서 목숨을 걸고 공인불교를 지켜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소까의 꿈은 이루어졌다. 담마비자야,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을 실현한 것이다.

어느 나라이든지 최초의 사원은 기억된다. 중국에 가면 낙양 근교에 백마사가 있다. 중국에서는 백마사가 중국 불교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사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어디일까?

한국최초의 사찰은 영광 불갑사로 알고 있다. 백제 침류왕 때인 384년에 인도인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도래하여 불교를 전래해 주었다고 한다. 영광 법성포에 가면 마라난타의 도래를 기리기 위해서 마라난타사가 설립되어 있다.

스리랑카에서 최초 사찰은 록템플, 바위사원이라 부르는 이수루무니야이다. 동굴법당에 들어가면 마힌다 장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마치 석굴암을 보는 것 같다. 동굴이 석굴암 구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동굴법당 들어 가기 전에 두 기의 조각상이 있다. 마치 사천왕상처럼 사원을 수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조각이 석굴암 사천왕상을 보는 듯하다.


굴법당에 들어가면 마한다 장로가 저 안쪽 깊은 곳에 있다. 그러나 접근할 수 없다. 유리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석굴암을 유리로 막아 놓은 것과 같다. 아마도 매우 귀중하고 성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법당 앞에는 꽃공양이 올려져 있다. 스리랑카에서만 볼 수 있는 공양물이다.


스리랑카는 아름다운 나라이다. 자연환경도 아름답고 기후도 좋고 사람들 인심도 좋아서 천상에 온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공을 드릴 때 공양물에서 찾을 수 있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대부분 꽃공양을 하기 때문이다. 불단에 꽃이 다발을 이루어 올려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을까? 꽃공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양물같다. 스리랑카불자들이 꽃공양 올린 것을 보면 그 마음이 느껴진다. 순수하고 성스러운 마음이다. 불단에 꽃공양한 것을 보면 내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 같다.


가이드는 오른쪽을 보라고 했다. 호수에 코끼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 마리가 있다고 했다. 바위에 음각된 것을 보니 코끼리가 부조였다. 그것도 호수에서 물놀이하는 코끼리의 모습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코끼리 부조상보다는 보리수가 돋보였다.


호수 바위 옆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 마치 왕자처럼 커다란 위용을 자랑한다. 어떤 나무일까? 자세히 보니 보리수였다. 잎이 하트모양이고 꼬리가 긴 것이 특징이다. 스리랑카 사원에 보리수가 없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록템플 위에는 전망대가 있다. 불탑이 있는 전망대를 말한다. 전망대로 이동하기 전에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왕궁정원에서 발견되었다는 왕과 왕의 가족에 대한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가이드는 연인상을 보라고 했다. 아마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스토리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두투가무누 왕이 그들 사이를 인정하지 않자 시라야 왕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왕위도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말한다. 어느 시대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은 화제거리가 되는 것 같다.


흔히 말하기를 절이 있으면 절로 간다고 한다. 산에 갔을 때 절이 있으면 불자들은 자연스럽게 절로 간다. 그런데 산이 있으면 산에 오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록템플에서도 그랬다.

록템플, 이수루무니야 사원은 바위산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고 북한산 인수봉처럼 거대한 바위산은 아니다. 불과 50미터도 안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평지에 돌출 되어 있다 보니 돋보인다. 높은 데가 있으면 오르고 싶어진다. 그래서일까 순례객들은 한사람도 예외없이 바위산을 오른다.


바위산 정상에 섰다. 바위산은 전망이 좋다. 평지에 돌출되어 있어서 정상에 서니 사방이 툭 터져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은 밀림의 지평선이다. 저 멀리에 흰 대탑이 보인다.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아스라이 보인다. 모두 가 보아야 할 곳이다.


바위산 꼭대기에는 작은 불탑이 있다. 멀리서 보면 희게 보인다. 그런데 스리랑카에서는 이런 불탑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다. 높이가 50미터가 넘는 것도 있고, 아주 작은 것도 있다. 사리탑은 보리수와 함께 숭배의 대상이다.


바위산에는 순례객들이 끊임없이 올라 온다. 그리고 내려간다. 거의 대부분 현지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맨발이다. 이것이 성지순례 할 때 기본적 예의에 해당된다.


이번 성지순례를 앞두고 흰옷을 장만했다. 흰색 법복을 준비한 것이다. 하의는 회색이다. 성지에 가면 흰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흰옷 상의를 입었다. 하의는 갈아 입지 못하고 검은색 바지를 입었다. 현지인들도 비슷하게 입었다.

우리나라 불자들은 복장에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인도나 스리랑카 성지순례한 사진을 보면 복장이 컬러풀하다. 그리고 상당수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이는 현지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가기 전에 흰옷을 준비해 가면 여법한 순례가 될 것이다.


바위산 꼭대기에서 사방을 둘러 보았다. 보이는 것은 온통 야자수가 있는 밀림뿐이다. 저 멀리 흰색의 대탑이 이곳 저곳에 솟아 있다. 야자수 우거진 밀림에 솟아 있는 대탑은 신비롭기도 하고 성스럽기도 하다. 이곳이 신성도시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2023-01-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