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스리랑카 성지순례기9, 미리사베띠야 불탑에서 탑돌이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10. 11:59

스리랑카 성지순례기9, 미리사베띠야 불탑에서 탑돌이를

 

 

순례시점은 20221212일 오후이다. 순례자들은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 이수무루니야를 떠나서 보리수가 있는 스리마하보디 사원으로 향했다. 공원처럼 잘 정비되어 있다. 아누라다푸라 신성도시는 그 크기가 수키로에 달한다. 옛날에는 하나의 도시로서 번성했을 것이다.

 

스리마하보디 사원에 가면 보리수가 있다. 기원전 3세기 상가밋따 장로니가 보드가야 보리수 가지를 꺽어서 가져왔다는 그 보리수를 말한다. 무려 2300년 된 것이다. 사실상 스리랑카 불교역사와 같다. 그래서일까 스리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는 스리랑카 불자들의 절대적인 신앙성지와도 같다.

 

 

스리마하보디사원에서는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다. 오후 휴식시간인 것 같다. 보리수가 있는 사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겉에서만 보아야 했다. 그렇다고 휴식시간이 끝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저녁에 다시 오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스리랑카는 처음이고 더구나 스리랑카 역사와 문화 등 모든 것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전문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불탑이 있는 곳에 갔다. 밥그릇을 거꾸로 해 놓은 듯한 거대한 대탑이다. 가이드가 어떤 탑인지 알려 주었으나 기억을 할 수 없다. 귀국해서 검색을 해 보니 미리사베티야 수투파(Mirisavetiya,Stupa)이다.

 

 

미리사베티야, 위키백과에서는 미리사웨티야 비하라(Mirisawetiya Vihara)로 소개 되어 있다. 미리사베티야를 키워드로 하여 구글과 다음에서 검색을 해 보았으나 글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자주 가지 않는 곳 같다. 패키지 여행에서도 제외하는 곳 같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가이드가 미리사베티야를 데려 간 것은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보여 주고자 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왜 그런가? 스리마하보디 보리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남는 시간에 바로 옆에 있는 미리사베티야 보여주고자 한 것인 것 모른다.

 

 

미리사베티야는 어디에 있을까? 구글지도를 찾아 보았다. 보리수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불과 700-800미터 거리밖에 안된다. 이는 아누라다푸라 신성도시 구역이 거의 10키로에 달하는데 이에 비하면 이웃 마을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리사베티야 다고바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월요일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덜 알려진 순례지인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늘높이 솟아 있는 백색의 다고바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불탑의 높이는 얼마나 될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59미터에 달한다. 불탑의 직경은 43미터이다. 그런데 이 불탑은 최근에 복원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위키백과에서 복원과정에 대한 사진을 볼 수 있는데 1993년에 복원되었다. 설명문을 보니 “The present monument completed by the Archaeological Department in the 1993 that encloses the remnants of the original dāgäba has lost all ancient characteristics of the original edifice. (Photo: Ulrich von Schroeder, 1993).”라고 쓰여 있다.

 

 

불탑에서는 공양을 하고 탑돌이를 해야 한다. 왜 탑돌이 하는가? 탑속에서는 부처님 사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불자들은 탑돌이하면서 부처님 그분을 기렸다.

 

스리랑카에서는 크게 두 가지 신앙이 있다. 하나는 보리수신앙이고 또 하나는 불탑신앙이다. 보리수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깨달음의 나무라고 해서 부처님 보듯이 대한다. 불탑은 사리가 있어서 역시 부처님 보듯이 대한다.

 

스리랑카에서는 왜 보리수신앙과 불탑신앙이 발전했을까? 이는 아마도 무불상시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불상은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은 보리수와 불탑이었던 것이다.

 

불상이 생겨난 것은 부처님 입멸 후 5백년이 지난 시점이다. 불상은 기원을 전후하여 간다라에서 최초로 생겨났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들어오고 난 후의 일이다. 더구나 스리랑카는 섬나라이다. 대체로 변방이나 섬나라에서는 전통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보리수 신앙과 불탑 신앙이 대표적이다.

 

스리랑카불교는 3차결집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소까 대왕의 명에 의해서 불교정화가 있었는데 그때 빠알리삼장이 완성되었다. 이와 같은 빠알리삼장은 3차 결집으로 공인되었다.

 

아소까 대왕은 공인된 불교를 전세계에 전파하고자 했다. 그래서 전세계 아홉 나라에 담마사절단을 파견했다. 그 중에 하나가 스리랑카이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과 딸을 보냈다. 이것이 스리랑카 불교의 시작이다.

 

스리랑카에 공인된 불교가 전래 되었을 때 빠알리 삼장만 왔을까? 신앙의 대상도 왔을 것이다. 그것이 보리수와 불사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상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무불상시대였기 때문이다.

 

흔히 기복불교를 말한다. 빌고 기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종교이든지 초창기 때는 기복적인 요소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신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리수나 불탑은 좋은 신앙의 대상이 된다.

 

불자들은 부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부처님은 입멸해서 다시는 볼 수 없지만 그분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신앙의 대상이 된다. 보리수, 족적, 법륜 등을 말한다. 무불상 시대 때 신앙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대상에 있어서 부처님의 유골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불탑은 사리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탑을 가까이 하면 부처님을 면전에서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탑은 신앙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는 고대 인도에서 오랜 탑묘의 전통에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와 같은 네 종류의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 있다. 네 종류란 무엇인가?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 연기법을 홀로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 여래의 제자는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 전륜왕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다.”(D16.113)

 

 

부처님은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D16)에서 네 가지 탑묘에 대해서 말했다. 그것은 부처님, 벽지불, 부처님 제자, 그리고 전륜왕의 탑묘를 말한다. 여기서 부처님과 벽지불과 제자는 깨달은 자에 해당된다. 부처님이 깨달았던 것과 동일한 깨달음을 이룬 성자들이다. 모두 깨달은 자, 붓다이다. 그래서 불탑에 사리를 모실 수 있는 것이다.

 

아소까 대왕은 인도전역에 84천개의 불탑을 세웠다. 스리랑카 역사서 마하왐사에 따르면 아소까 대왕은 부처님께서 온전한 84,000가지의 가장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매 가르침을 존경하여 한 가지의 가르침에 하나의 승원을 세워 84,000개의 승원을 전국에 세우겠다.”라고 발원했기 때문이다.

 

아소까 대왕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를 보면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다.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가는 곳마다 불탑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크기도 매우 크다. 어느 것은 200여척에 이른다고 했다. 오늘날 60미터 가량 된다. 아누라다푸라 불탑과 비슷한 사이즈이다.

 

현장스님이 본 불탑은 오늘날 아누라다푸라 불탑과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산치대탑과 유사한 복발형 불탑을 말한다. 그런데 현장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이와 같은 불탑에 대해서 가끔 불가사의한 빛을 내는 일이 있다.”라고 했다.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불탑에서는 밤에 빛이 난다. 밤이 되면 불을 켜 두는데 불탑의 흰색 돔에 빛이 나는 것이. 마치 도시의 랜드마크 빌딩처럼 사방 어느 곳에서든지 보이는 것이다. 마치 그 옛날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비롭고 성스러워 보인다.

 

불자들은 사원에 가면 꽃공양을 하고 불탑을 한바퀴 돈다. 세 번 돌기도 한다. 여러 번 돌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전적 근거가 있다. 부처님은 불탑에 참배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것은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의 탑묘이다.’라고 많은 사람이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청정한 믿음을 일으켜서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러한 연유로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이다.”(D16.113)

 

 

부처님은 탑묘를 참배하라고 했다. 도시의 네 거리,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 탑묘를 만들어 부처님을 기리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입멸했어도 사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부처님을 뵙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어느 나라이든지 불탑을 숭배하는 신앙이 있다. 특히 스리링카 불자들이 신앙하는 것 같다. 복발형의 거대한 불탑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불상시대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내려 오는 것이다.

 

 

미리사베티야 다고바를 한바퀴 돌았다. 1990년대 복원한 것이긴 하지만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다. 현지에 있는 설명문을 보면 기원전 2세기 두투게무누(Dutugemunu, 161-137 B.C) 왕에 의해 건립 되었다. 두투게무누 왕은 외적 엘라라 왕을 격퇴한 후에 미리사베티야 불탑을 세워 승가에 기증한 것이다.

 

미리사베티야 다고바는 불탑이다. 사리가 있을 것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Lord ‘Buddha relics’, 불사리가 있다고 했다. 위키백과에서는 불사리와 불탑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 하고 있다.

 

 

King Dutugamunu (161 BC to 137 BC) built the Mirisaveti Stupa after defeating King Elara. After placing the Lord Buddha's relics in the sceptre, he had gone to Tissa Wewa for a bath leaving the sceptre. After the bath he returned to the place where the sceptre was placed, and it is said that it could not be moved. The stupa was built in the place where the sceptre stood. It is also said that he remembered that he partook a chilly curry without offering it to the Sangha. In order to punish himself he built the Mirisavetiya Dagaba.”(위키백과, Mirisawetiya Vihara)

 

 

미리사베티야 불탑은 부처님 사리가 들어 있는 불탑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도 2천년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돔 부위는 최근 복원되었다고 하지만 기단은 옛날 그대로인 것 같다.

 

기단의 석축은 옛날 그대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깨지고 금이 간 것이 많다. 그러나 바위에 새겨진 것은 오래 간다. 바위로 만들어진 것은 천년만년 가는 것 같다. 기단도 그렇고 네 방향에 있는 공양단도 그렇다.

 

미리사베티야 불탑을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았다. 높이가 59미터이고 직경이 43미터이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불탑이다. 이런 불탑이 기원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 당시에도 스님들과 불자들도 탑돌이 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스리랑카에 왔다. 그 옛날 스님들과 불자들이 탑돌이 했던 것처럼 탑을 한바퀴 돌았다. 오래된 기단과 바닥의 바위에서 옛날을 본다. 불탑 주변에는 깨진 불상과 갖가지 부서진 석재가 있다. 아마도 이곳을 복원할 때 발견된 것 같다.

 

 

미리사베티야 불탑을 돌 때 원숭이 한마리를 발견했다. 원숭이는 불자들이 공양한 꽃을 먹고 있었다. 그 먼 옛날에도 이곳 불탑 주변에는 원숭이들이 살았을 것이다. 원숭이를 보자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 먼 타국에서 공간이동하듯이 온 순례자가 거대한 대탑을 마주하고 있다. 시간이동을 해서 그 옛날 번영했었던 시기에 가본다. 그 때 당시 사람들도 이곳에서 불탑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2023-01-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