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1, 부처님 오른쪽 쇄골뼈가 있는 투파라마야 불탑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14. 15:52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1, 부처님 오른쪽 쇄골뼈가 있는 투파라마야 불탑


무엇이든지 처음은 강렬하다. 처음 경험된 것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스리랑카에서 첫번째 불탑도 기념할만한 것이다. 투파라마야(Thuparamaya) 불탑이 그것이다. 투파라마야 불탑은 스리랑카 최초의 불탑이라고 한다.

현지 시점은 2022년 12월 12일 오후이다. 순례자들은 루완웰리세이야 대탑을 보고 난 후에 투파라마야 불탑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거리는 불과 700여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아누라다푸라에는 여러 불탑이 있다. 50미터가 넘는 반원형의 거대한 불탑이 여러 개 있다. 먼 곳에서 보면 흰 불탑은 사방에서 보인다. 그래서 이곳 신성한 구역에서 대탑은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찾아가고자 하는 불탑은 크지 않다. 높이는 고작 19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투파라마야 불탑은 스리랑카불교에서 최초 불탑이다. 최초 사원은 이수루무루니야이다. 이처럼 최초자가 붙은 곳은 순례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최초는 기억하지만 그 이후는 잘 기억하지 않는 것 같다.

12월 12일은 월요일이다. 평일이고 행사가 없어서인지 투파라마야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순례자 두 명과 가이드만 있을 뿐이었다. 현지 가이드는 이곳이 스리랑카 최초의 불탑임을 말해 주었다.


투파라마야 불탑은 언제 조성되었을까? 검색한 자료에 따르면 마힌다 장로와 관련이 있다. 마힌다장로가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해 주었는데 이는 신심 있는 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왕의 이름은 데바남피아띳싸(Devanampiya Tissa, 247-207 BC)이다. 기원전 3세기 때의 일이다.

왕은 장로를 위해서 사원을 지어 승가에 기증했고 또한 불탑을 지어서 승가에 기증했다. 왕이 불탑을 세운은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것은 사리와 관련이 있다. 스리랑카 최초의 불탑 투파라마야에는 부처님의 오른쪽 쇄골뼈(the right collar-bone)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힌다 장로가 스리랑카에 왔었을 때는 무불상시대였다. 사람들은 감히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법륜이나 보리수, 족적, 불탑 같은 것이다. 특히 불탑에는 부처님의 신체의 일부인 사리가 모셔져 있었다.

어느 불교국가이든지 탑이 있다. 탑이 없는 불교국가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탑이 있다. 삼층석탑이 주류를 이룬다. 오층석탑도 구층석탑도 있다. 그러나 규모는 크지 않다. 또한 지극한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부처님 사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탑에 부처님 사리가 있다면 예경의 대상이 된다. 이는 부처님도 장려한 것이다.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D16)을 보면 불탑을 만들어서 예경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능하면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하는 나라에서는 탑을 크게 세운다. 미얀마의 파고다도 대탑이고 스리랑카의 다고바도 대탑이다.

대탑에는 사리가 모셔져 있다. 사리가 모셔져 있지 않은 탑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깨달은 자, 부처의 탑이 모셔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깨달은 자, 부처는 반드시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탑묘를 조성하여 예경하라고 했을 때 부처님뿐만 아니라 연각불, 그리고 부처님 제자, 전륜왕도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에 대한 여러 호칭이 있다. 이는 여래십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호칭 중에 아라한이라는 말은 부처님뿐만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부처님이 “이로써 세상에 여섯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Vin.I.14)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여섯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고 했다. 여기서 거룩한 님은 아라한을 번역한 말이다. 이는 부처님 자신을 포함하여 다섯 비구가 모두 아라한인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부처님이 깨달은 것과 똑 같은 깨달음을 얻었을 말한다.


나는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았고,
닦아야 할 곳을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을 이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깨달은 님입니다.”(Stn.558)


부처님은 바라문 셀라에게 깨달은 님이라고 했다. 이는 붓다를 말한다. 그런데 누구든지 붓다, 깨달은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라한이 되면 깨달은 자, 부처가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디가니까야에서 불탑을 만들만한 가치가 있는 네 종류의 사람을 말했다. 이는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부처님)”이나, “연기법을 홀로 깨달은 님(연각승)”, “여래의 제자(불제자)”, 그리고 “전륜왕”의 탑묘는 조성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여래의 제자는 아라한이기 때문에 불탑을 조성할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누구나 깨달은 자라면 부처가 된다. 깨달은 자의 사리를 모셔 놓은 탑은 예경의 대상이 된다. 왜 그런가? 불탑이기 된다. 이렇게 본다면 세계 각국에 불사리탑이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굳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예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스리랑카에서 불탑은 오래 된 것이다. 기원전에 건립된 것이 많다. 아소까 대왕의 후원 하에 이루어진 제3차 결집과도 관련이 있다. 아소까 대왕은 인도 여덟 곳에 있는 부처님의 사리를 인도 전역에 배분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스리랑카 역사서 디빠왐사에 따르면 아소까 대왕은 인도전역 8만4천 곳에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아소까 대왕 시절이다. 아소까 대왕은 자신의 아들 마힌다 장로를 스리랑카에 담마사절단으로 해서 보냈다. 그런데 아소까 대왕은 인도 전역에 사리탑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스리랑카에도 불사리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의 오른쪽 쇄골뼈 사리가 스리랑카에 전해졌을 것이다.

투파라마야 불탑에는 부처님의 오른쪽 쇄골뼈 사리가 모셔져 있다. 스리랑카 최초의 불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투파라마야 불탑은 스리랑카에서 성지중에서도 성지에 속한다.

투파라마야 불탑은 스리랑카 불자들이 찾는 주요한 성지이다. 투파라마야 불탑은 보리수가 있는 스리마하보디 사원과 부처님의 유물이 2쿼트 또는 1도나의 분량이 안치되어 있다는 루완웰리세이야 대탑과 함께 성지 중의 성지에 해당된다.

운전기사 가미니와 현지 가이드와 함께 투파라마야를 보았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가이드는 꼭 보어야 할 것을 알려 주었다. 그것은 불탑 입구에 있는 하나의 석상이다.


석상은 부조로 되어 있다. 하나의 커다란 바위에 마치 튀어 나올 것처럼 조각해 놓은 것이다. 두 기가 있다. 이와 같은 석상에 대하여 불탑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금강역사나 사천왕상과 같은 것이다.

순례기를 쓰면 수많은 검색이 이루어진다. 투파라마야에 대하여 검색하다가 위키백과에서 바타다게(vaadāge)를 알게 되었다. 투파라마야 입구에 있는 석상과 계단에 대한 것이다.

바타다게는 다게(dage), 투파가라(thupagara), 그리고 쩨띠야 가라(cetiyagara)라고도 불리운다. 이는 인도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고대스리랑카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라고 한다.

바타다게는 대체로 작은 불탑에 만들어진다. 왜 그럴까? 바타다게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사리가 있기 때문이다. 불사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금강역사와 같은 석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타다게는 오로지 스리랑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이라는 것이다. 현재 스리랑카에 열 군데가 있다고 한다.

바타다게는 불탑을 수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 절에 가면 금강역사문이나 사천왕상문을 볼 수 있는데 바타다게는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문을 지키는 수호신의 이름은 무엇일까?

바타다게에 있는 수호신은 잘 조각되어 있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듯 대단히 정교하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수호신 이름은 무라갈라(Muragala) 또는 무루갈(muru gal)이라고 한다.

무라갈라는 가드스톤(Guard Stone)이다. 이는 고대 스리랑카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무라갈라는 보통 세트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불탑 입구에 두 기가 조각되어 있다.

무라갈라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 금강역사상이나 사천왕상처럼 무시무시한 모습은 아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나가라자(naga-raja)이다. 이는 우리말로 용왕을 말한다. 불법을 수호하는 용왕이다.

무라갈라는 두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있다. 한손에는 프르나가타(pūraghaa)를 들고 있고, 또 한손에는 열매와 꽃, 잎이 있는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 여기서 프르나가타는 연꽃이 들어 있는 화병을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무라갈라 머리에는 일곱 개의 코브라 후드가 있다. 이는 무라갈라가 용왕이기 때문에 뱀의 형상을 머리 위에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금강역사나 사천왕상과는 다른 것이 된다. 여러 가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중에서 용왕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라갈라 발 아래에는 작은 존재가 있다. 마치 난쟁이처럼 생겼다. 아마 악귀를 뜻하는 존재를 형상화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천왕상 발 밑에 있는 야차 등 악귀 등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밝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본래 작은 불탑에는 네 기의 무라갈라가 있다고 한다. 이는 사방을 수호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투파라마야 불탑에는 오로지 한 개의 문만 있다. 그리고 지붕을 지탱했었던 석주가 남아 있다. 위키백과를 보면 투파라마야를 복원했을 때 예상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스리랑카 최초의 불탑 투파라마야를 본 것은 30분도 되지 않았다. 탑도 높이가 19미터로 작기 때문에 탑을 한바퀴 도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주마간산격으로 보았을 때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행은 현지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다녀 와서 후기를 작성하면 진정한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위키백과 등을 검색하면서 후기를 작성한다. 또한 관련된 용어를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다.

투파라마야에 대한 후기를 쓰면서 이것 저것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바타다게와 무라갈라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오로지 스리랑카 고대건축물에서만 발견되고 그것도 열 군데 밖에 없다고 한다. 목적은 부처님 가르침에 예경하고 동시에 부처님 가르침을 수호하는 것이다.


어느 종교시설물이든지 성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서 성소에 갈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스리랑카의 경우 복장은 흰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신발은 벗어야 한다. 그리고 불탑이나 보리수, 불상 앞에서 예경을 올려야 한다.

스리랑카는 부처님 가르침이 훼손 없이 원형그대로 전승된 나리이다. 그것도 기원전에 전승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초기에 해당된다. 그 오랜 옛날, 이천년도 전에 이런 시설물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저 멀리 동방에서 온 순례자에게 있어서 스리랑카는 경이의 나라이다.


2023-01-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