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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담이 아니라 왜 본생담인가? 자타카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의 날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31. 19:30

전생담이 아니라 왜 본생담인가? 자타카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의 날에


1월도 끝자락이다. 새해인가 싶었는데 한달이 다 지나갔다. 마치 세월 경주 레이스를 펼치는 것 같다. 내일부터는 2월 레이스가 시작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속된다고 하는데 세월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 같다.

1월 끝자락에 인사동에 갔다. 오늘은 자타카 출간기념 기자간담회가 있는 날이다. 장소는 ‘처마끝하늘풍경’이다. 참으로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인사동에는 이런 이름이 많다. ‘싸립문을 밀고 들어서니’도 길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처마끝하늘풍경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이곳 음식점에서 세 번 출간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을 때 참석했다. 식당은 낯설지는 않다. 쌈지길을 따라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위치해 있다. 도중에 귀천도 지난다. 천상병 시인과 관련 있는 찻집이다. 한옥으로 되어 있는 처마끝풍경은 이름 그대로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기자간담회는 12시에 열렸다. 기자들은 불교계 신문과 방송기자들이다. 모두 다섯 명 참석했다. 이재형 법보신문 기자, 이도열 불교신문 기자, 최준호 BTN 기자, 서일영 BBS 기자, 신성민 현대불교신문 기자가 참석했다.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은 안면이 있다. 2016년 테라가타 출간기념 기자간담회 할 때 명함교환하며 인사 나누었다. 7년만에 다시 만났다. 한번 만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대번에 얼굴을 알아 보았다. 신성민 현대불교신문 부장은 주소록에 등재 되어 있다. 언젠가 만난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머지 기자들은 새내기 기자들 같다.

기자간담회는 전재성 선생이 준비해 온 프린트물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자들이 기사를 쓰기 좋게 요약한 것이다. 자타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열 가지 항목으로 두 페이지에 걸쳐서 요약해 놓았다.


언제든지 노트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기자간담회장에서는 작은 노트가 준비된다. 마치 기자수첩 같은 것이다. 설명하는 것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러나 정작 기자들은 받아 적지 않았다. 프린물을 보거나 프린트물에 노트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두 방송사 기자들은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했다.


전재성 선생은 자타카를 만 3년 반역 했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보도지침에 나오지 않는다. 코로나 시국 속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자타카는 이미 번역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남전대장경을 중역한 자타카를 말한다.

그 동안 니까야는 많이 봤다. 10년 전부터 본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타카가 없었기 때문이다. 청정도론을 보면 자타카 게송이 도처에서 인용되고 있다. 니까야에서도 자타카를 볼 수 있다. 디가니까야 19번경 마하고빈다경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자타카를 부분적으로 접할 수 있었지만 빠알리 원문과 주석이 번역된 자타카는 없었다.

자타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미얀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전은 자타카라고 했다.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와 같은 근본교리를 바탕으로 되어 있는 사부니까야와는 달리 재가불자에게 친숙한 경전이 자타카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타카가 있기는 있었다. 일본 것을 중역한 것이다. 1973년부터 1979년에 동국역경원에서 남전대장경 자타카 1권부터 5권까지 번역한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역자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1995년에 다시 한번 자타카가 출간되었는데 김달진 역으로 동국대역경원에서 출간되었다고 한다,

중역된 자타카도 귀중한 불교경전이다. 그러나 중역과정에서 오역과 왜곡도 있다고 한다. 이는 빠알리 자타카를 번역하면서 비교과정에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남전대장경이 일본 고어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자타카는 1885년에 영역되었다. 독일어로 번역된 것은 1921년이다. 일본에서는 1935년에 번역되었다. 한국에서는 2023년 출간되었으므로 독일보다 100년이 늦고, 일본보다는 88년이 늦다.

이번에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에서 번역된 자타카는 두 개 부분으로 되어 있다. 게송과 의석으로 분리되어 번역된 것이다. 이런 형태는 KPTS의 모든 번역본에서 볼 수 있다. 법구경, 수타니파타, 테라가타, 테리가타, 우다나, 이띠붓따까도 게송과 의석으로 분리되어 있다.

외국에서 번역된 자타카를 보면 의석만 있다고 한다. 그런데 KPTS에서는 세계에서 최초로 게송을 복원한 다음에 의석을 별도로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자타카는 게송부분과 의석부분으로 나누어져 실려 있다.

자타카는 원고지로 28,176매 분량이라고 한다. 신국판 사이즈에 2단 칼럼 구성으로 해서 2,816쪽이다. 그리고 16,763개의 주석이 있다. 이와 같이 주석이 풍부한 것이 이번 KPTS 자타카의 특징이다. 주석을 보면, 게송의 경우 모두 빠알리 원문이 실려 있고 교리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참고가 되는 경의 문구를 소개해 놓았다.

자타카는 마치 공들여 만든 작품같다. 박피 양장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자크가 달려 있어서 오래 보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리고 책의 두께 부분에는 금칠이 되어 있다. 두고두고 오래오래 읽고 사유해야 할 보물 같은 것이다.


자타카에는 547개의 이야기가 있다. 이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중에서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것이다. 부처님이 보살로 살 때 4아승지10만겁을 살았는데 547자타카는 극히 일부만 나타낸 것이다.

자타카를 우리말로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어떤 이는 부처님 전생담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타카를 읽어 보면 전생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생이야기가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다. 현생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전생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타카에 대하여 전생담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KPTS에서 완역된 빠알리 자타카 한글이름은 ‘부처님본생이야기’로 되어 있다. 부처님 전생이야기가 아니라 본생이야기인 것이다. 이는 각 자타카가 끝날때 마다 부처님이 전생의 존재에 대하여 “바로 나였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현생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본생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KPTS 자타카는 특징이 있다. 게송부분을 복원했는가 하면 의석에서 서문도 빼지 않고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영역 자타카에서는 서문이 빠져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작년 12월에 스리랑카 성지순례 갔었다. 그때 캔디 불치사 사원 바로 옆에 있는서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영역 자타카를 구입했다. 수메다존자의 서원이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확인해 보았다. 영역본에는 정말 수메다존자의 인연이야기가 빠져 있다. 곧바로 1번 자타카부터 시작되어 있다.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받았다.

자타카를 읽어 보았다. 자타카 교정작업에 참여 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그리고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이 있다. 그것은 수메다존자 서원에 대한 것이다. 이를 ‘인연이야기(idānakathā)’라고 한다. 무려 103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다. 그것도 2단 칼럼으로 실려 있다.

자타카 의석에서 수메다존자의 인연이야기를 실어 놓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신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자타카를 처음 접한 사람이 인연이야기를 보면 아마도 신심이 고조될 것이다. 수메다 존자가 물웅덩이에 배를 까는 장면에 대한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진흙을 밟지 마시고
저를 밟고 가소서,
저의 안녕이 될 것입니다.”(Jnk.63)


수메다 존자는 머리를 풀고 옷을 진흙 위에 펼쳐 놓고 그 위에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 “디빵까라 부처님처럼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어, 가르침의 배를 띄워 많은 사람들을 윤회에서 벗어나게 한 뒤, 나중에 완전한 열반에 들어야 겠다.”(인연이야기 14절)라고 서원한 것이다.

수메다 존자의 서원은 어쩌면 대승불교의 시초가 되는 것인지 모른다. 모든 중생을 윤회에서 벗어나게 한 뒤 완전한 열반에 들겠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면 입보리행론에서 산티 데바의 서원 “이 세상이 남아있고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 저도 계속남아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몰아내게 하옵소서!”라는 게송이 연상된다. 그리고 지장보살의 서원이 연상되기도 한다.

자타카는 윤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타카의 윤회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떤 이들은 부처님이 윤회를 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교인들이 말하는 윤회는 힌두교식 윤회라고 말한다.

윤회 없는 불교는 상상할 수 없다. 회의론자들은 윤회를 부정하며 오로지 현세의 삶에 대해서만 말을 한다. 윤회가 있다면 현실에서 고락 윤회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윤회가 있다면 생물학적 윤회(DNA)와 문화적 윤회(MEME)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과학적 유물론자들은 윤회를 부정한다. 과학의 잣대로 불교를 재단하고자 한다. 그러나 과학은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 없다. 왜 그런가? 과학은 도구를 사용하여 관찰하기 때문이다. 도구를 사용하면 주관이 개입할 요소가 있는 것이다.

기자간담회장에서 어느 기자가 윤회에 대하여 질문했다. 어떻게 무아인데 윤회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질문했다. 이에 대하여 연기법적으로 보면 무아윤회가 성립된다고 말해 주었다. 존재론적으로 본다면 유아윤회가 맞을지 모르지만 조건발생하는 연기법적으로 보면 무아윤회일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었다.

윤회와 관련해서 하나 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윤회가 참이라고 하더라도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 본 것이다. 이에 네 번째 선정을 체험하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니까야를 보면 네 번째 선정에서 숙명통으로 전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자체로 완성되고 완전한 것이다. 윤회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니까야를 읽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 교리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이다. 불자들이 니까야를 읽어 보아야 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자타카설명과 질의응답이 끝났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었다. 코스요리가 준비되었다. 이날 모두 식사한 사람은 모두 7명이다. 식사비용은 전재성 선생이 결재 했다. 그러나 하루 전에 후원금을 기자간담회 명목으로 입금했다. 식대비용을 계좌이체 했다. 매월 후원금에서 더 보탠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자간담회장에는 기자만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장에 가게 된 것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또한 편집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진행을 도와주기 위해 갔다.

처음 본 기자들과는 명함 교환을 했다. 참석 기자들에게는 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알려주었다. 그래서 질의응답시간에 교정작업에 참여했음을 알렸다. 식사를 마치고 해산할 때에 기자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이미우이 음악씨디를 한장씩 나누어 주었다. 마음을 사는데 있어서 선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2023-01-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