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천장사 도반 모임은

담마다사 이병욱 2023. 2. 5. 08:32

천장사 도반 모임은


귀가길 마음이 충만했다. 고속도로는 예상과 달리 막히지 않았다. 서산에서 안양까지 2시간 이내에 왔다. 오랜만에 천장사식구들을 만났다.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4년만에 본 도반들도 있었다.

천장사 카톡방에 공지가 떴다. 입춘법회에 대한 것이다. 합동천도재도 함께 한다고 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월 보름 하루 전날이다. 동안거가 끝나는 날이기도 하다.

카톡방에 참석 메세지를 남겼다. 아마 메세지를 보고 오는 도반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메세지를 남기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서산에 사는 도반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나 다름없다.

아침 6 25분에 출발했다. 105키로 1시간 35분이 찍혔다. 그러나 토요일의 경우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밀린다. 밀리면 거의 3시간 걸린다.

이른 아침시간이라 차는 밀리지 않았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 컴컴하다. 행담도 휴게소에 이르니 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손이 시려울 정도로 날씨가 춥다. 4,500원짜리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웠다.

 


천장사에 갈 때는 쌀을 사간다. 작년 7월 하안거 반철법회에 갈 때도 그랬다. 고북면 수퍼에서 쌀 10키로를 39,000원에 샀다. 봉투를 준비할 수도 있으나 쌀로 보시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우리 조상들이 했던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2주차장에서 천장사까지는 가파른 계단길이다. 10키로를 어깨에 매고 올라갔다. 아마 그 옛날 경허스님이 있었던 때도 그랬을 것이다. 신심 있는 불자들은 저 아래 마을에서부터 지게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왔을 것이다.

 


천장사는 경허스님의 고향이다. 요즘은 소설 '길없는 길'의 고향이 되었다. 도처에 작가 최인호의 '길없는 길'과 관련된 비문이 여기 저기 있다.

천장사에 일찍 도착했다. 법회가 열리려면 한시간이 남았다. 이 시간 동안에 무엇을 해야 할까? 경허체험을 해 보기로 했다. 경허스님의 한평 짜리 작은 방에 들어 갔다.

 


작가 최인호는 '길없는 길'을 쓸 때 자신을 경허스님과 동일시 했다고 한다. 최근 유튜브에서 본 것이다. 작가는 작고했지만 인터뷰가 BTN에 있는 것이다. 오래 된 것 같다. 거의 20년전 것으로 보인다.

작가 최인호도 경허방에 있었을 것이다. 누구든지 천장사에 오면 경허방을 찾는다. 어떤 이는 일부러 경허방에서 하루밤 잔다고 한다. 도인의 숨결을 느껴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경허방에서 잠시 좌선을 했다. 그리고 경허방에서 누워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143년전인 1880년에 경허스님도 이 방에서 참선을 하고 누워 있었을 것이다. 나그네가 경허체험하고자 시도해 본 것이다.

 


만공방에도 들어가 보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좌선을 해 보았다. 그리고 누워 보았다. 이 좁은 방에서 어떻게 세 명이 잘 수 있었을까? 안내문을 보니 수월스님 28, 혜월스님 23, 만공스님 14세때 였다고 한다.

천장사에서 볼 만한 곳은 네 곳이다. 경허방, 만공방, 수월부엌, 그리고 혜월동굴이다. 이 네 곳은 한국 선불교에 있어서 성지와도 같다. 그러나 혜월동굴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혜월동굴에 가 보았다. 가람 바깥 산비탈에 숨어 있다. 한사람 들어갈 공간 밖에 되지 않는다. 앉으면 머리가 천정에 닿는다.

 

동굴에서 좌선을 했다. 바깥 날씨는 손이 시려울 정도로 차가운데 동굴안은 추운 줄 모르겠다. 더구나 남향이라 따스한 햇살도 비친다.

 


동굴은 안온했다. 바위에서 기가 나오는 것 같다. 마치 전자파를 차단하는 것처럼 두터운 벽이 있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수행자들이 왜 동굴을 선호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처님도 동굴에서 살았다. 니까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스리랑카에 불교를 알려준 마힌다 장로도 처음에는 동굴에서 살았다. 부처님 제자들도 동굴에서 살았다. 거처가 없는 수행승들에게는 동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을 것이다.

동굴은 종종 열반으로 묘사된다. 안온하기가 동굴과 같다는 것이다. 마치 벽이 무한대로 두터운 흙집 같은 것이다. 동굴 속 같은 적멸을 맛보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래서 천불동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입춘법회가 시작되었다. 천도재를 겸한 것이다. 중현스님이 집전했다. 노보살들이 7-8명 된다. 아래 마을 사람들이다. 서산, 당진, 서울 등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왔다. 반가운 얼굴들도 많다.

 


특별법문이 있었다. 동안거 스님 한분을 법사로 모신 것이다. 현우스님이다. 동안거 기간 동안 홀로 도량석을 했다고 한다. 이번 염궁선원에서 동안거를 난 스님들은 8명이었다.

현우스님은 눈높이 설법을 했다. 마을 노보살이 많아서일까 눈높이에 맞추고자 한 것으로 본다. 사람에 대한 감정의 응어리가 있으면 털고 가자고 했다. 어떻게 터는가?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털고자 하는 것이다.

 

 


고함소리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교학에 대한 이야기나 수행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얘기를 한 것이다.

 

 


오늘 30명이상 온 것 같다. 법당이 작아서 다 수용할 수 없다. 반은 툇마루에 앉았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 서 있었다.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비빔밥을 먹었다. 후식으로 과일을 먹었다. 차도 마셨다.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차담을 한 것이다. 이는 천장사의 전통아닌 전통이 되었다.

 


천장사 신도회는 탄탄하다. 결속력이 강한 것도 특징이다. 일이년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이런 모임을 갖기 까지 십년 걸렸다.

어떤 이는 큰 절만 다닌다. 봉은사와 조계사만 다니는 것이다. 큰 절에 다녀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불자가 천장사와 같이 작은 절, 가난한 절에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왜 먼 천장사까지 찾아 가는가? 도반들이 없다면 굳이 힘들게 장거리를 뛰지 않을 것이다. 반겨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달려간다. 마치 고향에 가면 부모, 형제, 친지가 환영해 주듯이, 법회멤버들이 반겨준다.

천장사 도반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몇 년 만에 찾아 가도 그때 그 사람들이 있다. 형제보다 더 반가운 것 같다. 함께 법회를 보고 식사를 하고 차담을 한다.

주지스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달빛다회 같은 행사를 하자고 했다. 이벤트가 있으면 자주 모이게 된다. 방생법회도 좋고 순례법회도 좋다.

불자라면 누구나 원찰이 있다. 자주 가는 절을 말한다. 보통 세 곳은 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세 군데라고 말할 수 있다. 능인선원, 성원정사, 천장사라고 말할 수 있다.

능인선원은 2004년 처음으로 불교와 인연 맺은 절이다. 지금도 불교교양대학 멤버들이 있다. 그러나 활동은 거의 없다. 코로나 이후 한번도 모인 적이 없다. 신림동에 있는 성원정사는 천도재와 관련해서 인연 맺었다. 신도들이 있기는 있지만 서먹서먹하다. 천장사는 먼 곳에 있다. 그러나 반겨주는 도반들이 있기에 달려 간다. 그것은 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정(友情)을 말한다.


아무리 큰 절이라고 해도 반겨 줄 도반이 없다면 군중 속의 고독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절이지만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면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절에 얻어 먹으로 가서서는 안된다. 절은 재가의 보시로 유지된다. 그래서 절에 갈 때는 빈 손으로 가서는 안된다. 그런데 천장사에서 떡을 한보따리 받았다. 아마 재를 지내고 남은 것 같다.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다. 총무도반은 오늘 입춘법회에 참석한 도반들에게 한보따리씩 나누어 주었다. 아내가 좋아할 것 같다.

서산시내에서 커피를 마셨다. 법회가 끝난 후에 서산에 사는 도반들과 함께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불교갤러리 카페에서 모였다. 서령초등학교 옆에 있다.

 


왜 불교갤러리 카페라고 했을까? 불화 등 불교예술작품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인들만 오는 것 같다. 카페 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모두 자신의 작품이라고 한다. 전문가 수준이다. 불교박람회에 나가도 될 것 같다.

 


천장사 도반 모임에는 부부팀이 많다. 네 팀은 고정이다. 이 밖에도 서산, 당진, 홍성 등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에서도 오고 인천에서도 온다. 오늘날 천장사 신도회가 이렇게 탄탄한 결속력을 가지게 된 것은 신도회장 역할이 지대하다고 본다. 여기에 중현스님 역할도 크다. 스님은 신도대하기를 스님 대하듯 한다. 그래서일까 서로 존경하고 서로 허물이 없다.

 


천장사에 11년 다녔다. 그 동안
수없이 주지스님이 바뀌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마을에 사는 노보살들과 법회 멤버들이다. 어쩌면 이들이 진정한 천장사 주인인지 모른다.


2023-02-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