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둑이 되었는데
학의천에 개나리가 만발했다. 동시에 벚꽃도 피었다. 때 이른 벚꽃이다. 지구온난화이어서일까 예년보다 1-2주 일찍 피었다.
꽃을 보자 욕심이 생겼다. 가지를 꺽어 화병에 넣고자 한 것이다. 이런 행위가 악작(惡作)인줄 안다. 합리화 할 수 있다. 식물은 잘라도 자라기 때문에 살생이 아니라고.
꽃가지를 꺽었다. 이제 잔뜩 물이 오른 개복숭아나무 가지이다. 꽃이 피면 빨간 꽃이 매혹적이다. 벚꽃이 지고 나면 릴레이 하듯 피는 꽃이다. 나는 꽃도둑일까?
주지 않는 것을 가져 가는 것은 도둑질이다. 한송이 꽃을 꺽어도 도둑질이다. 나는 졸지에 꽃도둑이 되었다. 아니 꽃도둑이 되기로 했다.
여기 향기도둑이 있다. 천신은 꽃향기를 맡는 수행승에게 "그대는 향기도둑이네."라고 말했다. 수행승은 억울했다. 꽃가지를 꺽은 것도 아닌데 도둑이라니! 단지 꽃향기를 맡았을 뿐인데.
천신은 수행승에게 말했다.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질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S9.14)라고. 주지 않는 것을 취했으니 향기도둑이라고 했다.
수행승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수행승은 항의하듯이 “연 줄기를 잡아 뽑고, 연꽃을 꺽고, 그와 같이 거친 행위를 하는 자에게는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S9.14)라고 말했다.
수행승은 일반사람들과 다르다. 수행승은 구족계를 받는 순간 청정을 추구하는 수행자이다. 연꽃에 코를 대는 행위는 청정한 삶에 반하는 것이다. 꽃과 향기에 대한 갈애는 해탈을 방해한다. 천신은 가여운 마음에서 충고해준 것이다.
수행승이 술을 마시면 허물이 되지만 일반사람이 술을 마시면 허물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수행승이 꽃가지를 꺽으면 허물이 되지만 일반사람이 꺽으면 허물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S9.14)라고 했다.
오늘 꽃가지를 꺽었다. 구족계를 받지 않은 일반사람이기 때문에 허물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지 않는 것을 취했으므로 도둑질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와 과에 영향주지 않는다.
출가자의 계와 재가자의 계는 다르다. 출가자의 2백가지가 넘는 구족계와 재가자의 5계는 다른 것이다. 이는 출가자의 계행에서 "그러나 그는 종자와 식물을 해치는 것을 여읩니다. 이것도 또한 그 수행승의 계행입니다."(D2.36)라는 가르침에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계가 청정하지 못한 것은 출가자들에게만 장애가 되지 재가자들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권, 130쪽)라고 했다.
재가자들의 오계는 부처님 가르침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존재한다. 그 오계를 어기면 어쨌든 허물이다. 꽃가지를 꺽는 것도 허물이 된다.
오계는 한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오계는 정언명령이 아니다. 오계는 학계(sikkhapada)이다. 어기면 참회하고 다시 받아 지니면 된다. 오계는 평생에 걸쳐서 완성된다. 계가 파한 상태로 있으면 안된다. 다음 법회 때 오계를 받아 지녀야 한다.
오늘 꽃가지를 꺽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다. 아무리 합리화하려 해도 주지 않은 것을 취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꽃도둑이 된 것이다.
2023-03-2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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