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절제

왜 음식에 적당량을 알아야 하는가? 지역식당순례 40, 명학역 육회비빔밥

담마다사 이병욱 2023. 4. 10. 14:16

왜 음식에 적당량을 알아야 하는가? 지역식당순례 40, 명학역 육회비빔밥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 식도락가는 아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라 헤맨다면 식도락가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게 식사가 대사(大事)가 될 수 없다. 수행자는 식사가 대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수행자는 음식의 적당량을 알아야 한다. 음식절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계율로 먹고, 사마타로 먹고, 위빠사나로 먹어야 한다.

 

재가수행자로서 삶을 살고자 한다. 때로 불음주계를 어김으로 인하여 오계를 어기지만 곧 바로 복원한다. 법회에 참석해서 오계를 합송하면 되는 것이다.

 

오계에 음식계는 없다. 다만 불음주계만 있을 뿐이다. 술 마시는 것이 왜 오계에 들어갔을까? 아마도 그것은 음주가 만악의 근원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술을 마시면 살생하기 쉽다. 술을 마시면 도둑질 하기 쉽다. 술을 마시면 음행하기 쉽다. 술을 마시면 거짓말하기 쉽다. 이웃집 닭과 여주인의 비유로 알 수 있다.

 

어떤 남자가 마루에 앉아 있었다.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그 남자가 불자라면 오계 중에서 불음주계를 어겼다. 그때 못 보던 닭이 마당에 들어 왔다. 남자는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지 않는 것을 가졌기 때문에 불투도계를 어겼다.

 

남자는 횡재를 했다. 공짜로 닭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닭이 보자 고기 생각이 났다. 마당을 돌아 다니는 닭이 닭고기로 보였던 것이다. 남자는 닭을 잡아서 백숙을 끓여 먹었다. 오계 중에서 불살생계를 어겼다.

 

이웃집 여자가 찾아 왔다. 닭이 여기에 들어 왔는지 물어 보았다. 남자는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계 중에서 불망어계를 어겼다. 남자는 여자를 보자 음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여자를 겁탈했다. 남자는 오계 중에서 불사음계를 어겼다.

 

남자는 술을 마심으로 인하여 오계를 어겼다. 불음주계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붙투도계, 불살생계, 불망어계, 불사음계를 어긴 것이다. 술이 만악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재가의 삶에는 오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육계도 있다. 이는 디가니까야 전륜왕 사자후의 경에 따르면,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취기가 있는 것을 마시지 말라, 음식에 분량을 알라.”(D26.15)라는 가르침에서 알 수 있다.

 

세상에 전륜왕이 출현하면 육계가 된다. 오계에 음식절제가 플러스 된다. 음식절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도덕적인 삶과 관계가 있다. 음식절제는 욕망의 절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착하고 건전한 삶이 영위된다. 그에 따라 수명도 늘어난다.

 

오계가 무너지면 짐승의 세계가 된다. 음식절제가 되지 않으면 오계가 무너질 것이다. 왜 그런가? 음식은 욕망이기 때문에 욕망 절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점차 수명이 줄어든다. 수명이 가장 길 때에는 팔만사천살이고 수명이 가장 짧을 때는 열살이다. 인간의 수명에 백살이 되었을 때 상황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하면서 재물없는 자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지 않자, 빈곤이 늘어났다. 빈곤이 늘어나자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이 늘어났다.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이 늘어나자 무기가 늘어났다. 무기가 늘어나자 살아있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 늘어났다. 살아있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 늘어나자 거짓말 하는 것이 늘어났다. 거짓말 하는 것이 늘어나자 이간질하는 것이 늘어났다. 이간질 하는 것이 늘어나자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이 늘어났다.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이 늘어나자 두 가지 성품, 욕설을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이 늘어났다. 두 가지 성품, 욕설을 하고 꾸며대는 말을 하는 것이 늘어나자 탐욕과 분노가 일어났다. 탐욕과 분노가 일어나자 잘못된 견해가 늘어났다. 잘못된 견해가 늘어나자 세 가지 성품, 즉 불법적 탐욕을 부리고, 부정적 탐착에 빠지고, 도착된 상태를 추구하는 성품이 늘어났다. 세 가지 성품이 늘어나자 이와 같은 성품, ,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고, 수행자를 공경하지 않고, 성직자를 공경하지 않고, 가문의 연장자를 공경하지 않는 성품이 늘어났다. 이러한 성품이 늘어나자 뭇삶들의 수명도 줄어들고, 용모도 퇴락했다. 뭇삶들의 수명도 줄어들고, 용모도 퇴락하자 뭇삶들의 수명이 이백오십 년이었던 인간은 자손대에 와서 일백 년이 되었다.”(D26.28)

 

 

인간의 수명이 팔만사천살에서 백살로 된 것은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그 발단은 분배와 관련 있다. 부가 제대로 분배 되지 않았을 때 빈곤한 자들이 생긴다. 먹을 것이 없는 자들은 어쩔 수 없이 남의 집 담을 넘을 것이다. 이후 무기를 들게 되고 살생이 일어난다. 십악행의 세상이 되었을 때 도덕적 타락이 일어난다.

 

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집트보물전이 열렸다. 그때 벽화에서 인상적인 문구를 보았다. 그것은 나는 굶주린 자에게 빵을 주었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었다.”라는 문구이다.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전륜왕은 오계에다 음식절제를 추가하여 육계로서 다스렸다. 음식의 절제는 욕망의 절제와도 같기 때문에 십선행의 삶을 살 수 있다. 이렇게 전륜왕이 육계로서 세상을 다스렸을 때 인간의 수명은 점차 늘어 났다. 마침내 팔만사천살까지 되었을 때 미륵이라는 이름의 세존, 거룩한 님,…세상에 존귀한 님께서 세상에 출현할 것이다.”(D26.32)라고 했다.

 

음식을 욕망으로 먹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식도락가 되어서는 안된다. 단골을 만들어서도 안된다.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먹는다면 탐욕으로 먹는 것이다. 음식절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점심 때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랐다. 맛집을 찾아 갈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욕망으로 먹게 된다. 식사가 대사가 될 수 있다.

 

식당순례를 하려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야 한다. 메뉴불문, 가격불문, 청결불문 해야 한다. 코로나 시기에 했었던 것처럼 식당순례를 재개 하기로 했다.

 

코로나 기간에 식당업 하는 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에 식당업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하여 사무실 반경 삼사백미터 거리에 있는 식당에 한번쯤 가보고자 한 것이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식당순례는 계속된다. 새로운 식당, 아직 가보지 않은 식당이 대상이 된다. 메뉴와 가격, 청결은 불문이다. 이와 같은 삼대원칙을 가지고 명학역 먹거리 거리를 걸었다. 새로운 식당이 눈에 포착되었다. 그곳은 육회를 파는 곳이다.

 

 

육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생선회는 먹지만 육회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육회 간판을 보자 팔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의무적 식당순례는 가기 싫어도 가야 하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식당순례가 된다.

 

식당은 크지 않다. 테이블이 다섯 개 가량으로 오평도 되지 않는다. 명학역 상권에서 황금상권에 자리 잡았는데 매출을 상당히 올려야 임대료 부담이 없을 것이다. 썰렁한 것 같았다.

 

 

오전 11시 반경에 육회집에 들어 갔다. 식당이 작아서 그런지 여주인 혼자 있었다. 주인은 전라도 억양이 약각 섞여 있다. 인정이 넘치는 말씨를 가졌다.

 

육회비빔밥을 주문했다. 가격은 칠천원이다. 주인 말에 따르면 저녁장사를 하는곳이라고 한다. 낮에 문을 연 것은 장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육회집은 개업한지 일년 되었다. 마장동에서 가장 질 좋은 재료를 가져 온다고 한다. 이전에는 홍대에서 구년 장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육회를 그다지 즐겨 먹지 않는 것 같다.

 

 

육회가 나왔다. 마치 회덥밥이 연상된다. 생선회 대신에 육회가 얹혀져 있다. 초고추장과 함께 비벼 먹었다. 육회 식감이 독특하다. 생선회와 비교하면 육질의 밀도가 높다.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것 같다.

 

명학역 상권에서 육회를 파는 곳은 오로지 한 곳뿐이다. 저녁장사를 하기 때문에 낮에 문을 닫아 놓는다. 그럼에도 점심 장사를 하는 것은 장사가 여의치 않음을 말하는 것 같다.

 

 

육회비빔밥을 남김 없이 깨끗이 비웠다. 그런데 정오가 다 되었지만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점심장사는 오후 두 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쉬었다가 저녁에 저녁장사를 하기 위해서 다시 여는 것이다.

 

점심 때 고독한 미식가가 되는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본 고독한 미식가 고로상은 맛집을 찾아 간다. 작고 허름한 식당이 특징이다.

 

고독한 미식가 고로상은 음식을 맛 있게 먹는다. 먹는 것만 보아도 흐믓하다. 어느 식당에 가든지 맛있게 먹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올 때는 큰 소리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주인이 힘을 받는다.

 

 

음식은 절제 되어야 한다. 하루 일과 중에서 점심식사가 대사라면 삶이 허망한 것이다. 점심식사를 위해서 맛집을 찾아 다닌다면 식사대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음식점을 도와 주기 위해서 메뉴불문, 가격불문, 청결불문하고 들어 간다면 봉사가 된다. 점심식사가 대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밥값을 하고 있는가?

 

 

2023-04-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