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절구커피가 최상이라 하지만

담마다사 이병욱 2023. 4. 23. 10:50

절구커피가 최상이라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다방이라고 했다. 지금은 카페라고 한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한때 커피숍이 있었다. 지금은 쑤욱 들어간 말이다. 다방과 차별화를 시도한 말이라고 본다. 지금은 카페라고 한다. 그때 커피와 지금 커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커피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예전에는 다방커피를 마셨으나 지금은 원두커피를 마신다. 다방커피 마실 때 원두커피를 몰랐다. 당연히 아메리카노도 몰랐다.

 


오늘 커피박물관에 갔다. 강릉에 있는 커피박물관을 말한다. 깊은 산속에 숨어 있다시피한 박물관에 가보니 로스팅에서부터 핸드드립에 이르기까지 커피에 대한 모든 것이 다 있다. 이 중에서 가장 관심있게 본 것은 그라인딩에 대한 것이다.

 

 


그라인딩, 분쇄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일까? 커피 맛을 좌우하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그것은 원두, 로스팅, 그라인딩이다. 이를 비율로 따지면 원두 60%, 로스팅 30%, 그라인딩이 20%이다. 원두가 절대적인 변수에 해당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라인딩에 달려 있다. 로스팅된 원두를 구매해서 분쇄하기 때문이다.

 


절구커피가 있다. 절구질에서 만든 커피를 말한다. 몇 해전서부터 절구를 이용해서 절구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마 이런 케이스는 매우 희소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절구질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맛 있기 때문이다. 절구커피야말로 최상의 맛이다.

 


커피박물관에 놀랍게도 절구가 있었다. 옛날 사람들도 절구질해서 커피를 만들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절구질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라인더가 개발되기 전에는 절구질해서 마셨을 것이다. 지금도 남미의 원주민들은 절구질 해서 커피를 마신다.

 


매일 절구질하고 있다. 절구질 해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있다. 입자는 고르지 않다. 알갱이 큰 것도 있고 미세한 것도 있다. 알갱이가 제각각인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커피 맛을 낸다. 오묘한 맛이다. 대체로 단 맛이다.

 


커피는 대체로 쓴 맛이다. 그러나 입자가 가늘면 신맛이 나는 것 같다.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갈았을 때 미세한 입자가 신맛을 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절구커피는 입자가 다양하기 때문에 신맛, 단맛, 쓴맛이 모두 나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단맛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커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피가 돌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커피중독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기호식품이든지 중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갈애가 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차를 좋아한다.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서 마신다고 한다. 그러나 차담을 하기 위해서 마시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 갈애와 교제는 해탈과 열반의 실현에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차와 커피는 기호식품이다. 한번 맛을 보면 잊지 못해서 자주 찾는다. 이는 다름아닌 맛에 대한 갈애이다. 지금 부처님이 계신다면 무어라 말씀하셨을까? 아마도 "차를 마시지 말라. 차를 마시면 악작죄가 된다."라고 말씀했을 것이다. 커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커피의 역사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커피연표에 따르면 5세기 이디오피아 카파(kaffa)에서 커피가 발견된 것으로 시작되었다. 카파는 오늘날 커피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온 것은 개화기 때이다. 특히 고종은 커피매니아였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커피 중독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거리 어디에서만 커피점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다방이라 불리었던 카페는 이제 구멍가게보다 더 많아졌다.

 


커피를 마시면 심신이 안정된다. 그래서 자주 찾는지 모른다. 그러나 맛에 대한 갈애가 있다면 중독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절구질할 것이다. 맛에 대한 갈애가 있는 한 해탈과 열반은 요원하다. 어디 커피뿐일까?


가르침의 보시는 일체의 보시를 이기고
가르침의 맛은 일체를 이긴다.
가르침의 즐거움은 일체의 즐거움을 이기고
갈애의 부숨은 일체의 괴로움을 이긴다.”(Dhp.354)


이 세상에서 법의 맛만한 것이 없다. 커피가 제아무리 맛이 있기로 법의 맛만 못하다. 나에게는 커피에 대한 갈애도 있지만 법에 대한 갈애도 있다.

법의 맛은 일체를 이긴다고 했다. 당연히 법의 맛은 커피맛을 이긴다. 해탈과 열반의 맛을 이길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커피도 알아차림하며 마시면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된다. 커피를 오감으로 마시되 알아차림하며 마시는 것이다.

커피를 마실 때 향기를 알아차림한다. 커피를 입에 물 때 맛을 알아차림한다.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길 때 감촉을 알아차림한다. 커피를 오감으로 알아차림했을 때 더 이상 중독이 아니다. 커피는 알아차림 명상을 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커피맛이 법미가 된다.

 

 

 


매일 절구커피를 마신다. 갈애로 마시면 중독이다. 알아차림하며 마시면 해탈과 열반의 길로 간다. 절구커피의 오묘한 맛에 길들여 있는한 해탈과 열반은 요원하다.

한번 법의 맛을 알면 커피맛과 비할바가 아니다. 절구커피가 최상이라 하지만 법미(法味)만 못하다. 나는 언제나 커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23-04-21
담마다사 이병욱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구화를 아시나요  (0) 2023.04.30
소유에서 공유로  (0) 2023.04.28
나는 휴양림 노마드  (0) 2023.04.21
나도 디지털 유목민?  (0) 2023.04.21
꽃에 향기가 없으면, 군포 철쭉동산에서  (0) 202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