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지에서 주춧돌 명상을
성주사지 주춧돌에 앉았다. 강당터 수십개 주춧돌에 천장사 방생법회 도반들이 좌선 했다. 사월의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에 스치었다.
중현스님은 보령 성주사지로 가는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통일신라 시기에 구산선문 중심지 중에 하나라고 했다. 지금은 폐사가 되어 버려 탑들과 주춧돌만 남아 있는 성주사는 어떤 절이었을까?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성주사지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이다. 역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적 제307호. 〈삼국유사〉 권1 태종춘추공조에 의하면 백제 법왕이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오합사라고 불렀으나 신라 문성왕(839~859) 때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 무염이 가람을 크게 중창하면서 절 이름도 성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성주사는 백제 때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지금까지 절터만 남아 있다.
절터만 남아 있는 것을 사지라고 한다. 어느 사지이든지 탑이 있다. 벌판에 탑만 우뚝 솟아 있는 광경을 보면 세월무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성주사지에는 금당터에 커다란 좌대 주춧돌이 있다. 불상이 있던 자리이다. 불상은 어디로 가고 좌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까?
성주사지 벌판에는 돌부처가 한기 서 있다. 너른 벌판에 서 있는 돌부처를 보면 커다란 거인이 대지 한 복판에 당당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없다. 손도 없고 옷 형태도 보이지 않는다. 설명문에서는 풍화작용에 의해서 마모된 것이라고 했다.
돌부처는 곳곳에 상처가 있다. 돌조각을 붙인 자국을 볼 수 있다. 누군가 망치로 산산조각 낸 것을 수습해서 붙인 것 같다. 그리고 일으켜 세운 것 같다.. 미륵불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연유로 이렇게 서 있는 것일까?
돌부처 설명문을 보았다. 설명문에 따르면 고려말조선초에 세워진 민불이라고 한다. 민중들이 만든 것으로 권위감이 없어서 민중친화적인 불상이다. 성주사 주변에 있던 것이 어느 시기에 이곳으로 옮겨 졌을 것이다.
민불은 소박한 느낌이다. 어쩌면 그때 당시 민중들은 부처 형상의 바위를 숭배했는지 모른다. 머리와 몸통 형상이 있는 바위를 말한다. 그래서 얼굴 없는 불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백제 시대 때 도래한 불교는 어떤 불교이었을까? 또한 민중들이 신봉한 불교는 어떤 불교이었을까? 니까야를 읽고 있는 자에게 슬슬 자만이 생긴다. "부처님이 깨달은 심오한 진리를 그때 당시 사람들도 알았을까?"라고.
머리맡에 디가니까야를 놓고 보고 있다. 이제 33번 합송의 경이다. 디가니까야 34경 중에서 가장 읽어 내기 힘든 경 같다. 왜 그런가? 부처님 가르침을 법수별로 총 망라해 놓았기 때문이다. 본문보다 각주가 압도적으로 많아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아는 것이 있으면 지식에 대한 교만이 생겨난다. 합송의 경에 따르면 세 가지 교만이 있다. 그것은 "내가 우월하다는 교만, 내가 동등하다는 교만, 내가 열등하다."(D33.10)라는 교만을 말한다. 놀랍게도 동등도 교만이고 열등도 교만임을 알 수 있다.
세 가지 교만은 다시 상중하로 나뉜다. 그래서 구만이 된다. 상중의 상의 교만, 즉 우월중의 우월은 어떤 것일까? 모든 것을 가진 왕에게는 "누가 나와 같은 자가 있으랴?"라는 교만이 생겨난다. 출가자의 경우 두타행을 한 자에게도 역시 "누가 나와 같은 자가 있으랴?"라는 교만이 생겨난다. 많이 배운 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절에 왔으면 참배를 해야 한다. 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폐사지에서는 어떻게 참배해야 할까? 천장사 주지 중현스님은 방생법회 참가자들에게 주춧돌에 앉으라고 했다.
천장사 사람들은 강당터 주춧돌에 앉았다. 너른 강당터 이곳저곳에 주춧돌이 있는데 각자 자리를 찾아 앉은 것이다. 그러자 중현스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바람의 감촉만 느끼십시오."라고 말했다.
천년고찰 폐사지에서 명상을 했다. 주춧돌은 좌선하기에 적합하다. 간신히 한사람 앉을 자리가 된다. 다리를 포개고 손을 선정인 자세로 했다. 눈은 감았다. 아무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월의 봄바람이 불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다. 드넓은 폐사지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다. 상큼한 풀 향기가 나는 것 같다. 모두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이다. 이를 아는 마음도 생멸한다.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A9.20)
손가락 튕길 때 나는 소리가 있다. 아마 0.5초도 지나지 않아 생겨났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소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손가락튕기기는 무상에 대한 지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없던 것이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것이다. 생멸하는 것에는 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냄새도 있고 감촉도 있다. 심지어 보는 것도 있다.
지금 내 앞에 사물이 있다.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 영원주의가 생겨났을 것이다. 이는 "자아와 세상은 산봉우리처럼 확립되어 있어서 변하지 않는다."라는 영원주의를 말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파괴된다. 저 바위산이 영원할 것 같지만 한량 없는 세월이 지나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움직이는 것도 있다. 생명 있는 것들은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이전과 이후가 다르기 때문에 생멸한다고 볼 수 있다.
생멸하는 것에는 마음도 있다. 이전 마음과 이후 마음이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느낌도 다르고 지각도 다르다.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스님은 아무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만 느끼라고 했다. 이는 망상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단지 있는 그대로 현상을 보라는 것이다. 얼굴에 닿는 바람의 감촉만 느끼라는 것이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부드럽다. 이럴 깨 "아, 좋다!"라고 생각한다면 갈애가 생겨난 것이다. 갈애는 집착을 부른다.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언어적 형성에 놀아난다. 단지 피부에 부딪치는 감촉만 느껴야 한다. 코 끝에 상큼한 풀 향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조건에 따라 일어 났다가 사라질 뿐이다.
천년 폐사지에서 주춧돌명상을 했다. 그때도 이곳 강당터에서 명상하는 수행승들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들은 출가목적을 달성했을까?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에 이땅에 불교가 들어 왔다. 불교가 전래된지 일세기도 되지 않아 전국 방방곡곡이 불국토가 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기세를 보는 것 같다. 과연 그때 사람들은 불교를 어떻게 이해 했을까?
매일 경전을 읽는다. 그것도 부처님 원음이라 일컬어지는 니까야를 읽는다. 경전을 읽어야만 불교를 제대로 아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요즘 니까야뿐만 아니라 논서도 읽는다. 요즘 읽는 것은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이다.
논서에서 놀라운 내용을 보았다. 그것은 "경전지식이 없는 이가 특성 등을 알 수 있는가?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현재 생겨나고 있는 물질과 정신들을 즉시 새김과 지혜로 잘 새기기 때문이다."(1권, 363쪽)라는 내용이다.
마하시 사야도는 경전지식이 없어도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성품을 파악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관한 예로서 뽀띨라 삼장법사와 칠세 아라한 이야기를 들었다.
본래 성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경전적 지식이 요청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만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A9.20)라고 했다.
무상에 대한 지각을 하면 깨달을 수 있다. 이에 부처님은 손가락튕기기를 예로 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소리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한다.
성주사지에서 주춧돌 명상을 했다. 사월의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폐사지 드넓은 초원의 상큼한 향기도 있었다. 그러나 생겨났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이를 아는 마음도 사라졌다.
2023-04-2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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