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의 연속 향일암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움직이는 사무실이 된다.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노트북으로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숙박지 대부분은 와이파이가 된다. 와이파이가 된다는 것은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돌산도에 있는 S펜션에서는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은 되는데 왜 노트북은 안될까? 큰 일 났다. 이동중에 휴게소 시설을 이용해야 하나? 혹시 모뎀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은 어떨까? 시도해 보았다. 놀랍게도 되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업무처리했다. 이동중에 노트북 위력을 실감한다. 네트워크만 연결 되어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일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임을 실감했다.
요즘 디지털유목민이 되었다. 노트북 한대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전국토가 대상이 된다. 점점 디지털유목민 조건을 갖추어 가는 것 같다.
멀리 갔다. 땅끝으로 갔다. 해남 땅끝마을만 땅끝이 아니다. 더이상 갈 수 없는 곳도 땅끝이다. 해안가가 대표적이다.
땅끝이라 하여 반드시 해안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절벽, 산정, 동굴도 땅끝이다. 그곳에 유명 가도처가 있다. 또한 땅끝에는 유명 수행처도 있다.
향일암에 갔다. 언젠가 가보고자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이번에 가게 되었다.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펜션을 출발했다.
경차는 잘도 달린다. 언덕배기에서 힘이 부치는 것 말고 딱히 지적할만한 것이 없다. 승차감도 좋다. 다만 하차감은 그다지 좋지 않다. 속된말로 “뽀다구”가 나지 않는 것이다.
경차를 타는 것은 여러 이점이 있다. 가장 큰 혜택이라면 고속도로 통행료가 반값이다. 또한 주차비가 반값이다. 물론 연비도 좋다. 금액은 별 것 아니지만 누적되면 위력을 발휘한다.
새벽에 향일암으로 향했다. 향일암 가는 길에 차가 없다. 펜션에서 30분 달렸을 때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해는 뜬 상태였다. 수평선 일출은 5시 30분인데 20분 늦었다. 그럼에도 일출은 일출이다. 그것도 찬란한 일출이다.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남국 특유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중부에서 볼 수 없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지천이다.
향일암은 처음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새롭다. 향일암 올라가는 길에 갓김치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가파른 비탈길에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6시 이전에 좌판을 펼치는 것이었다. 돌산도 특산품 갓김치를 팔기 위한 것이다.
향일암은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한 것이 특징이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도량이다. 도량이 바위 틈새에 있어서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다. 마치 도량이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다.
향일암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가장 먼저 석문(石門)으로 나타난다. 가는 곳마다 비좁은 통로가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간신히 사람 하나 통과할 석문이 곳곳에 있는 것이다. 터널 같은 석문이다.
요즘 새로 건설된 도로에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터널과 교량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거침이 없다. 왠만한 산은 뚫어버린다. 계곡은 고가의 다리를 놓는다. 이러다 보니 전국토가 사통팔달의 거미줄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발달로 인터넷 강국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통팔달 도로로 인하여 경제대국이 되었다. 도로건설이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물류가 원활해서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이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사용한 결과에 따른다. 적당한 규모의 땅덩어리에 적당한 규모의 인구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사통팔달 도로는 삶의 질도 크게 높여 놓았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깔린 고속도로와 국도가 있어서 어디든지 반나절이면 갈 수 있다. 비록 경차를 가졌지만 이런 인프라의 혜택을 누리고자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많은 터널을 만난다. 그런데 터널을 벗어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긴 터널일수록 그렇다. 마치 시간이동과 공간이동 하는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에 가는 것과 같다. 향일암에서 비좁은 석문을 통과 했을 때도 그랬다.
터널은 어두운 이미지이다. 누구에겐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터널일 수 있다. 그러나 터널을 벗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절망의 끝은 어디일까?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에서 한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바닥을 확인했을 때 나타난다. 더이상 추락할 데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 다음은 상승하는 것밖에 없다. 마치 터널을 벗어나는 것과 같다.
향일암은 유명기도처이다. 현수막을 보니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줍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사람,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는 희망의 메세지, 구원의 메세지라 아니할 수 없다. 마치 터널 같은 석문이 이를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터널은 이쪽세계와 저쪽세계를 연결해 준다. 향일암에도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주는 터널이 있다. 간신히 사람 몸 하나 빠져 나올 수 있는 석문을 벗어나면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곳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놀라운 세계이다. 어두운 석문을 벗어나니 부처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절벽에 세워진 도량에 부처님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동쪽에는 해가 솟아 올랐다. 어두움의 터널, 절망의 터널을 벗어난 자에게 볼 수 있는 구원의 빛과 같은 것이다.
향일암에 석문은 하나만 있지 않다. 하나의 석문을 통과하면 또하나가 나타난다. 또 하나를 통과하면 또 하나가 나타난다. 세 개의 석문이 있다. 바위와 바위가 포개진 틈 사이에 길이 있었던 것이다!
올라가는 데까지 올라갔다. 석문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마침내 해수관음상 앞에까지 이르렀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끝, 더 이상 갈 수 없는 절벽,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여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낭떨어지 같은 죽음이다.
“죽느냐 사느냐”여기 삶의 기로에 처한 자가 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자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그 사람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그곳에 관세음보살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백의의 관세음보살 앞에 무릎 꿇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번만 살려달라고 빌었을지 모른다. 아주 간절하게 아주 절박하게 빌었을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해수관음 앞에서 절하는 사람들은 매우 진지해 보인다.
기도는 간절히 하라고 했다. 그래야 성취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수행도 간절히 해야 할 것이다. 목숨걸고 기도할 때, 목숨걸고 수행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저 수평선 위에 떠오른 찬란한 아침햇살을 보는 것처럼.
땅끝은 땅의 끝일뿐만 아니라 땅의 시작이기도 하다. 삶의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절망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희망이기도 하다. 마치 심연에서 바닥을 확인한 것 같기도 하고 터널을 벗어난 것 같기도 하다. 땅끝 절벽에 세워진 향일암은 그런 곳이다.
향일암을 내려 왔다. 아침 해는 중천에 뜬 것 같다. 부지런한 상인들은 돌산도 특산품 갓김치를 내놓았다. 이른 새벽에 부지런하기도 하다.
지역에 가면 지역 특산품을 사야 한다. 이주전 강경에 갔었을 때는 젖갈을 샀다. 돌산도에 왔으니 돌산도 특산품 갓김치를 사야 한다. 아니 팔아 주는 것이다. 갓김치 1키로에 만원했다.
2023-05-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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