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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권 진흙속의연꽃 2017 II, 생명의 경이(驚異)에서 생명의 경외(敬畏)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4. 28. 11:11

93권 진흙속의연꽃 2017 II, 생명의 경이(驚異)에서 생명의 경외(敬畏)로

 

 

지난 시절 되돌아 보면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글이 남아 있는 것이다.

 

돈을 벌면 남아 있지 않다. 돈 벌기 위해서 돈 벌기 선수가 되는 듯이 벌어보지만 남은 것이 없다. 마치 주식할 때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주식을 단타매매 하면 잔고를 확인하게 된다. 오늘 찍은 종목이 상한가를 쳤을 때 통장잔고는 올라간다. 그러다가 하락이 계속되면 잔고는 줄어 든다. 과연 주식 거래 통장에 있는 돈이 내 것일까?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허무하다. 돈이 남아 있지 않았을 때 텅 빈 것이 된다. 허와 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번 써 놓은 글은 지우지 않는 한 남아 있다. 블로그에 쓴 글이 그렇다.

 

재산은 반드시 물질적 재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재산도 있다. 어떤 재산을 말하는 것일까? 부처님은 칠성재라 하여 고귀한 일곱 가지 재물이 있다고 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이와 같은 일곱 가지 재물이 있다일곱 가지란 무엇인가수행승들이여믿음의 재물계행의 재물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배움의 재물보시의 재물지혜의 재물이 있다.”(A7.6)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물질적 재물은 오래 가지 못한다. 돈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재물은 오래 간다. 영원히 오래 갈 수 있다. 저 세상에 갈 때도 가져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계행, 부끄러움, 창피함, 배움, 보시, 지혜의 재물은 누구도 가져 갈 수 없다. 왕이 몰수할 수도 없고, 도둑맞을 수도 없고, 강도가 빼앗아 갈 수도 없고, 악의적인 상속자가 가로채 갈 수도 없고,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휩쓸려 가지도 않고, 바람에 날려 가지도 않는다. 이런 정신적 재물 중에는 글쓰기도 해당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큰 부자인지 모른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그다지 가진 것이 없지만 그 동안 남긴 글은 나의 소중한 불멸의 재산이다. 이제 책으로 엮고자 한다.

 

이번에 책을 만들었다. 책 제목을 ‘93권 진흙속의연꽃 2017 II’로 정했다. 생애 통산 93번째 책으로 2017년 일상에 대한 두 번째 글 모음에 해당된다.

 

책에는 총 54개의 목차가 있다. 이는 201765일부터 1221일까지 6개월 동안 일상에서 하루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일 중에 하나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시콜콜한 내용도 없지 않아 있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화목원 가는 길에 먹은 국수

2. 진짜꽃 보다 더 화려한 가짜꽃, 강원도립화목원에서

3. 잃은 것은 세월이고 얻은 것은 나이뿐이라는데

4. 프랑스식당 어번팜테이블(Urban Farm Table)에서

5. 제사의 당위성에 대하여, 고향가는 길에

6. 유튜버의 대선 출마를 보며

7. 한국신랑과 미국신부, 도반 아들의 혼례식

8. 단호박인가 밤호박인가? 귀촌 5년차 해남황토농장 부부

9. 오늘 해야 할 일에 열중해야지

10. 미디어붓다 ‘진흙속의연꽃의 불교이야기’

11. 농산물은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 주는 것

12. 사람은 겪어 보아야

13. 지금 생각날 때 하는 겁니다

14. 경청하는 리더십

15. 한국테라와다불교도 토착화 하는가

16. 수행자의 자만에 대하여

17.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18. 싫어하여 사라지기 위해 애써야

19.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20. 사랑스런 말(愛語)과 동등한 배려(同事)

21. 자타(自他) 모두 이익 되는 삶을 위하여, 블로그 생일 12주년

22.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고

23. 경이로운 삶을 위한 통찰

24. 리더에게 요구되는 겸청(兼聽)

25. 백년을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26.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27. 글에도 품격이

28.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사람

29. 해남 꿀고구마 이름은 첫사랑

30. 안양농수산물시장에서 본 탁발승

31. 재개발로 사라지게 될 37년된 세탁소

32. 지금 내마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33. 베트남 쌀국수집 ‘미스 사이공’동안구청점

34. 니중연화(泥中蓮花)처럼

35. 도반 자녀의 국제결혼을 보고

36. 누구를 위한 황금연휴인가

37. 시주(施主)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38. 늙음의 저편으로,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39. 성시화(聖市化) 흔적인가, 십자가형상 안양시로고

40. 탐욕으로 먹고 분노로 먹고

41. 아침은 간단하게 점심은 거하게 저녁은 조촐하게 

42. 글쓰기도 수행

43. 에픽 뮤직 지옥으로부터 두 발자국(Two Steps From Hell)’

44. 한국불교가 중구난방이 된 것은 

45. 불교는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종교(宗敎)

46. 나무에게도 옷을? 헐벗은 자에게 자비를

47. 도를 말하면 크게 웃어 버리는 자

48. 이제 마음 놓고 해외여행을, 생애 최초로 구입한 노트북

49. 묻지 않았는데도 험담하는 자

50. 글쓰기로 스트레스 해소를

51.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떳떳한 삶을

50. 글 쓰는데 눈이 팔려 실수를 했네

53. 홍련(紅蓮)보다 백련(白蓮)

54. 내 세울 것이 얼굴 밖에 없는 자는

 

93권 진흙속의연꽃 2017 II_230425.pdf
5.96MB

 

 

 

목차를 보면 그날그날 인상깊었던 것을 쓴 것이다. 개인사적인 것이 주류이지만 때로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도 있다. 시대상황이나 시류에 편승한 글이 대표적이다.

 

목차에서 23번째 글을 보면 경이로운 삶을 위한 통찰’(2017-08-27)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글은 사무실에 있는 홍콩대엽야자에서 새 잎이 나는 것을 보고서 생명의 경이에 대하여 쓴 글이다.

 

생명을 보면 경이롭다. 꽃이 피고 새 잎이 나는 것을 보면 생명의 경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하여 글의 말미에 매일매일 삶이 지겹다면 경이로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무상을 관찰 했을 때 경이로운 것이어서 삶이 지겨울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매일 새로운 날, 날마다 좋은 날입니다.”라고 마무리했다.

 

사람은 나이가 먹어 감에 따라 지혜도 생겨난다. 소년의 지혜가 다르고, 청년, 중년, 노년의 지혜가 다르다. 그러나 깨달은 자들의 지혜는 나이와는 무관하다. 청년시절에 깨달은 것이 노년에도 그대로 유효하기 때문이다.

 

글에서 꽃이 피고 새 잎이 나는 것에 대하여 경이를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경이가 경외로 바뀐다. 이는 범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왜 경이라고 하기 보다는 경외로 보아야 할까?

 

요즘 디가니까야 합송의 경’(D33)을 읽고 있다. 두 번째 법수에 대한 것을 보면 경외에 대한 것이 있다. 그것은 경외가 생긴 경우의 경외와 경외자의 이치에 맞는 노력입니다.”(D33.9)라는 가르침이다.

 

경외는 빠알리어 상베가(savega)를 번역한 말이다. 상베가는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agitation, fear, anxiety; thrill, religious emotion’의 뜻이다. 두려움이라는 뜻이 강하다. 어떤 두려움인가? 경이로움과 함께 하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경외(敬畏)로 번역했을 것이다.

 

생명을 보면 경이롭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고 나고부터는 경외를 갖는다. 경이로움에 기반한 두려움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왜 두려움의 대상일까? 이는 경의 문구에 대한 주석을 보면 알 수 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가 생겼을 때 네 가지로 나타난다. 이는 태어남에 대한 두려움, 늙음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어느 누구도 이 네 가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물은 물론 식물도 그렇다. 더 확장해서 광물도 그렇다.

 

조건발생하여 형성된 것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을 때 반드시 축하할 일만은 아닌 것이다. 생명에서 두려움을 보아야 한다.

 

생명에서 두려움을 보는 것이 경외이다. 자연이나 생명이 경이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두려운 것이 된다. 특히 사람에게서 경외를 가져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는 축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태어남 그 자체는 축복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 그런가? 태어남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정도론에 빅쿠에 대한 정의가 있다. 빅쿠를 뜻하는 수행승에 대하여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까닭에 수행승(sasàre bhàya ikkhati bhikkhu)”(Vism.1.7)이라고 했다.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는 누구나 빅쿠라고 할 수 있다. 설령 출가하지 않았어도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는 수행승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두려움(bhàyaṃ)은 상베가(敬畏)와 때로 동의어가 될 수 있다.

 

삶의 과정에서 생노병사를 겪는다. 생과 사는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이지만 노와 병은 경험된다. 이런 때 어느 누구도 늙음에 대한 두려움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태어남의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간적접으로 느끼게 된다.

 

생명의 두려움은 윤회의 두려움이다. 윤회의 두려움은 누가 가장 크게 느낄까? 그것은 천상락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천상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늙음과 질병과 죽음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명의 두려움과 윤회의 두려움을 아는 것은 지혜에 속한다. 어떤 지혜를 말하는가? 이는 천상의 존재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서 벗이여우리들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여겼다벗이여우리들은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다고 여겼다벗이여우리들은 상주하지 않는 것을 상주한다고 여겼다벗이여우리들은 실로 영원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고 상주하지 않지만 개체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혀 있다.”(S22.78)라고 경외하는 것을 말한다.

 

천상의 존재는 복과 수명이 보장되어 있다. 이는 복과 수명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인간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천상의 존재는 오래 살다 보니 전생을 잊어 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런 때 부처님이 무상, , 무아의 가르침을 펼친다면 어떻게 될까? 요즘 속된 말로 멘붕에 빠질 것이다.

 

천상의 존재들은 자신들이 영원하지 살지 않을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멘붕이 일어났다. 그러나 부처님의 무상, , 무아의 설법을 듣자 극적인 변화를 보이게 된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두려움(bhaya)과 전율(santāsa)과 감동(savega)에 빠진다.”(S22.78)라고 했다.

 

천상의 존재는 부처님이 무상의 가르침을 펼쳤을 때 처음에는 두려웠을 것이다. 어떤 두려움인가? 윤회하는 존재임을 알았을 때 두려움(bhaya)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원초적인 것이다. 태어남의 두려움, 늙음의 두려움, 질병의 두려움을 말한다.

 

천상의 존재는 부처님 설법을 듣자 안심 되었다. 윤회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럴 때 전율(santāsa)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감동(savega)이다. 이런 감동을 상베가라고 했다. 우리말로 경외가 일어난 것이다.

 

경외를 뜻하는 상베가는 두려움, 전율, 감동의 뜻이 있다. 이는 범접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숭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밤하늘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보는 것과 같고, 저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수학적으로 무한대를 접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과 맞딱뜨리는 것과 같다. 태풍이나 지진, 해일 같은 것이다.

 

상베가는 무한대인 수학적 숭고와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역학적 숭고와도 같다. 이는 경이감을 넘어서 두려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연에서 보는 경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생노병사에 대한 것이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는 늙음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태어남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노병사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는 것에 대하여 상베가, 경외라고 한다.

 

삶에 대한 경외감은 지혜와 관련이 있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혜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가르침에 따라 생겨나기도 한다. 이는 다름아닌 지혜에 의한 두려움(ñāabhaya)’이다.

 

삶에 대한 두려움, 윤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은 지혜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혜에 의해서 두려움이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지혜에 의한 두려움이 생겨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수행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경외자의 이치에 맞는 노력입니다.”(D33.9)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네 가지 정근을 말한다.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을 하는 것이다.

 

나이가 먹어 감에 따라 지혜도 생겨난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지혜이기 쉽다. 노인에게서 볼 수 있는 생활의 지혜나 삶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노인의 지혜가 두려움의 지혜로까지 발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 지혜로워진다. 그런 가르침 중의 하나가 두려움의 지혜이다. 이는 생노병사에 대한 두려움과 같다. 생노병사에 대하여 두려움이 일어날 때 생노병사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에 쓴 글에서 경이에 대한 것을 보았다. 꽃이 피고 새싹이 나는 것에 대하여 단지 경이로움만 느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다 보니 경이에서 경외로 바뀌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해서 경외감을 갖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혜도 생겨나는가 보다.

 

 

2023-04-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