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호식하는 것 같아 죄스러워
그 사람을 봤다. 안양 중앙시장에서 천막텐트를 지고 다니는 사람을 봤다. 그는 일회용 용기에 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걸었다. 서서 먹는 것은 보았지만 걸어다니면서 먹는 것은 처음 본다.
더벅머리 사나이를 보자 사진을 찍고 싶었다. 글 쓰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손에 대는데 그 사람을 보자 뒷모습이라도 찍고 싶었던 것이다.
더벅머리 사나이에 대한 글을 여러차례 올렸다. 처음 보았을 때 모습이 특이 해서 기억이 남았다. 덥수룩한 더벅머리에 천막텐트를 지고 다니는 모습이 한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을 한번 보는 것으로 그쳤다면 금방 잊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러처례 봤다. 안양 문예회관 앞에서도 봤었고, 안양 예술공원에서도 봤었고, 학의천 공원에서도 봤었다.
그를 본지 거의 십년 된 것 같다. 겨울철에는 몹시 추워 보였다. 얇은 옷과 양말도 신지 않은 모습에서 오래 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발견되었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썼다. 뒷모습 사진을 곁들여 쓴 것이다. 이런 글이 에스비에스(SBS) 작가에게 포착되었나보다. 작가는댓글에다 그 사람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을 종종 길거리에서 본다. 그 사람을 볼 때 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호의호식하는 것 같아 죄스런 마음도 들었다.
그 사람은 노숙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은 걸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사람을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겨울 모진 추위를 견디어 냈을까? 무얼 먹고 지냈을까? 거리에서 그 사람을 발견 했을 때 “살아 있다!”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오늘 그 사람 사진을 찍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뒤쫓아 가서 찍어야 하나 그만 두었다. 그 사람 사진은 여러 차례 찍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더구나 그 사람에게 말까지 걸지 않았던가!
더벅머리 그 사람을 거리에서 자주 만난다. 어느날 그 사람을 만나면 도움을 주고자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그 사람이 만안구청 부근을 걸어 가는 것을 발견 했다.
그 사람 뒤를 쫓아 갔다.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마음 먹었으므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도 약속이다. 안양로 신한헤센 주상복합에 이르렀을 때 용기를 냈다. 가까이 다가가서 “저, 여기요.”라며 노크 하듯이 말을 건넸다.
그 사람은 깜짝 놀란듯이 뒤돌아 봤다. 이에 “그동안 안양에서 많이 봤습니다. 이거 받으십시오.”라며 오만원짜리 두 장을 건넸다. 작년 2월의 일이다. 이에 대하여 '그 사람에게 10만원 주었다'(2022-02-11,https://bolee591.tistory.com/m/16161261)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오늘 더벅머리 그 사람을 안양 중앙시장에서 봤다. 서로 마주쳤지만 그 사람은 나를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인데 걸어가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아는 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과 어쩌면 구면인지 모른다.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접촉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사실 그런 접촉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다시 그 사람을 본다면 내가 먼저 말을 걸 수 있을까?
그 사람을 보면 나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너무 호의호식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거리에서 그 사람을 본지 십년 가까이 된다. 그 동안 보고만 있다가 작년에는 용기를 내었다. 돈 십만원 건넨 것으로 최초로 접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돈만 건네고 내빼듯이 도망쳤다.
그 사람을 다음에 만나면 말을 걸어야겠다. 그러나 몇 년 걸릴지 모른다. 돈을 건넸을 때처럼 용기를 내야 한다.
더벅머리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호의호식에 대한 것이다. 그 사람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나는 호의호식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사람을 볼 때마다 호의호식하는 것 같아 죄스럽다.
2023-05-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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