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객과 싸우지 않는다
사업17년차이다. 개인사업도 사업이고 일인사업도 사업이다. 사업자등록증이 있고 매분기마다 부가세를 내고 매년 5월 종합소득세를 내니 나는 사업자이다.
내가 사업자인 또 하나 이유는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키워드광고를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도 영업전략이다. 이전에는 방문했었다. 또 전화했었다. 그러나 담당을 만나기도 전에 경비에게 제재 당했다. 또한 전화교환원 여직원 단계에서 차단당했다.
나는 회사명도 있고 사업자등록증도 있다. 나는 세금을 내는 사업자이다. 오늘날까지 사업을 접지 않고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개발자 출신이다. 직장 다닐 때 전자제품을 개발했었다. 주로 위성방송수신기를 개발했다. 하드웨어를 담당했는데 회로설계, 부품조립, 특성검토, 양산지원, 해외영업지원을 했다.
개발자로서 프라이드는 대단했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개발한 제품이 양산되어서 수출되었을 때 달러를 벌어 들였다. 국내시장을 무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해외시장이 무대였다. 남들은 해외에 나가 돈을 쓸 때 우리들은 외화를 벌어 들였던 것이다.
지금은 개발과정의 일부를 생계로 삼고 있다. 하나의 제품이 양산되기까지 수많은 개발단계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이다. 회로도가 완성되면 이를 기판에 구현하는 작업을 말한다. 전자제품을 뜯어 보면 볼 수 있다. 컴퓨터 보드도 이에 해당된다. PCB로 생계를 유지한지 17년 되었다.
일인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일이 있었다. 사업 초창기 때는 을의 입장을 망각한 때가 종종 있었다. 고객과 싸운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감정싸움이었다. 고객이 설계에 대해 품질 문제를 제기 했을 때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급기야 말다툼이 일어났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다시는 주문이 없었다.
고객과 싸우면 백전백패한다. 고객과 싸워 이긴 사람은 없다. 고객은 다투는 대상이 아니라 섬겨야 할 대상이다.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주문이 온다.
사업에도 왕도가 있을까? 사업을 해보니 분명히 사업에도 도가 있다. 고객과 싸우지 않는 것, 고객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고객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어떻게 해야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놀랍게도 경전에서 그 근거를 발견했다. 앙굿따라니까야 ‘사업의 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싸리뿟따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을 찾아 가서 ‘존자여, 필요한 것을 말씀하십시오.’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그가 약속한 것을 의도한 것 이상으로 보시한다. 만약 그가 거기서 죽어서 이 세상에 왔다고 한다면, 그가 어떠한 사업을 하든 열심히 노력을 하면 의도한 것 이상으로 성공한다.”(A4.79)
고객감동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주는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이 한두개 더 집어 주는 것과 같다. 사업도 그렇다.
고객을 만족하게 해야 한다. 만족을 넘어 흡족하게 해야 하고, 흡족을 넘어 감동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가 약속한 것을 의도한 것 이상으로 보시한다.”(A4.79)라는 가르침을 늘 새기고 있어야 한다.
고객은 의도한 것 이상이 되었을 때 감동한다. 견적서를 작성할 때 지나치게 이익만 바란다면 눈치챈다. 약간 손해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견적을 내야 한다. 고객이 이익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
비즈니스는 주고받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한편이 일방적으로 이익보고 한편은 손해보는 그런 비즈니스는 없다. 쌍방간에 윈윈(Win-Win)이 되어야 한다.
고객감동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적 감동도 주어야 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담당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때로 사장이 될 수도 있다.
품질과 납기는 기본이다. 품질문제가 발생하면 두말없이 다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억수로 비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밤중에 목숨걸고 달려야 했다. 또한 퀵서비스 기사도 피하는 폭설을 뚫고 배달해 주어야 했다.
사업초창기 때는 고객과 싸웠다. 을의 위치를 망각한 것이다. 직장 다닐 때는 업체와의 관계에서 갑이었지만 일인사업을 하고서부터는 입장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고객과 다툰 것은 자신이 여전히 갑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지금쯤 수많은 직원과 함께 크게 성장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근근히 연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근근히 버텨 온 것은 을의 입장을 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적개심을 제거하는 다섯가지 방법이니, 비구에게 적개심이 일어나면 이것으로서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무엇이 다섯인가.
당신에게 화를 낸 사람에게 ‘자애(Loving-kindness)’를 내부의 마음속에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제거 하는지에 대한 방법입니다.
당신에게 화를 낸 사람에게 ‘연민(Compassion)’을 내부의 마음속에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제거 하는지에 대한 방법입니다.
당신에게 화를 낸 사람에게 ‘방관하는 듯한 마음의 평정(Onlooking equanimity)’ 을 내부의 마음속에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제거 하는지에 대한 방법입니다.
당신에게 화를 낸 사람에게 ‘잊어 버리는 것(forgetting)’과 ‘무시하는 것(ignoring)’에 대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제거 하는지에 대한 방법입니다.
당신에게 화를 낸 행위의 소유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상합니다.
‘이 착한 사람은 업(deeds)의 소유자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그의 업은 타고난 것이고, 그의 업은 친족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또 그의 업은 자신의 피난처(refuge)이고, 좋은 행위이든 나쁜행위이든 그는 자신의 업의 상속자이다.’
이 것이 또한 그에게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제거 하는지에 대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비구의 내부에서 분노가 일어 났을 때 분노를 완전히 제거 할 수 있는 다섯가지 방법입니다.
(진흙속의연꽃 번역, 2010-11-25)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작성한 글이다. 니까야를 읽기 전에 영문으로된 화를 다스리는 경(折伏瞋怒經, Aghatavinaya Sutta, A5.161))을 번역해 보았다. 내용이 좋아서 새기고자 했다. 제목으로 ‘화를 다스리는 법’이라고 붙여 보았다.
절복진노경에서 키워드는 사무량심이다. 다만 무디따(기쁨) 하나만 제외 되어 있다. 화가 날 때 기쁨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절복진노경은 적개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1)자애(Loving-kindness), 2)연민(Compassion), 3)방관하는 듯한 마음의 평정(Onlooking equanimity), 4)잊어 버리는 것(forgetting)과 무시하는 것(ignoring), 그리고 5)업의 소유자(owner of his deeds)임을 아는 것 이렇게 다섯 가지를 강조했다.
다섯 가지 중에서 방관하는 듯한 마음의 평정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논서에는 “마치 마음에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은 사람을 보면서 평온을 유지 하듯이 그와 같이 모든 중생에 대해 평온으로 가득 채운다.”(Vbh.275)라고 했다. 이런 마음이 생기게 하려면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알아야 한다.
화를 낸다는 것은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분노’와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함께 한다. 또 성을 내고 나면 상대방을 자극하고 그로 인하여 쌍방이 불선업과 불선과보를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런데 성을 낸 다는 것은‘그 순간에 일어난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 격정의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후회, 회환, 뉘우침이다. 그래서 종종 그 화 내었던 순간이 떠 오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자신의 악행을 떠 올릴 때 마다 ‘악마’와 같이 보였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후회 하게 되고 또 자신의 악행을 되새길 때마다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
화를 냄으로써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고, 혹은 주지 않을 수 있다. 상대가 반응하여 같이 화를 낸다면 화를 내는 행위는 정신적 고통을 야기 하므로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화를 받지 않는 다면 그 화는 고스란히 화를 낸 사람이 되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화를 냄으로 인하여 그 화가 초래한 고통으로 지금 당장 자신을 태우는 것이다.
화를 낸다는 것은 매우 천박한 행위이다. 대체로 천박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화를 잘 낸다. 그 이면에는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그 자존심은 ‘열등감’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존심을 잘 버리지 못 하는 이유는 “나는 이런 사람인데”하며 무엇인가 붙잡고 있을 때 이다. 그 붙잡고 있는 대상 중에 가장 큰 요인이 ‘내가 있다’라는 견해이다. 이런 견해를 초기불교에서는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이라 하고, 깨달음에 가는 데 있어서 버려 할 삿된 견해로 본다. 그래서 유신견은 성자의 흐름에 들어 가는 10가지 족쇄 중에 가장 먼저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더 이상 고객과 싸우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고객을 왕으로 모신다. 나의 밥줄을 쥐고 있는 고객에게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흡족으로, 고객흡족을 넘어 고객감동으로 가고자 한다.
일인사업자는 직원이 없다. 원맨컴퍼니이기 때문에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야 한다. 그러나 직원이 있다면 고객감동 전에 직원감동이 있어야 한다. 직원을 존중해 주었을 때 자연스럽게 고객감동도 있게 된다.
직원감동과 고객감동에 있어서 키워드는 존중이다. 가족간에도 존중이 있으면 화목하다. 하물며 모임이나 단체는 어떠할까?
나는 고객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과도 싸우지 않는다. 진리를 설하는 자는 세상과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세상이 싸움을 걸어 오는 것이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싸우지 않는다.
2023-05-0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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