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지게꾼의 행복

담마다사 이병욱 2023. 5. 16. 08:03

지게꾼의 행복


잠은 와야 자는 것이다. 잠이 오지도 않는데 억지로 잘 수 없다. 마찬가지로 깨달음도 와야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이 오지도 않는데 억지로 깨달을 수 없다.

왕자가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잘 주무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왕자여, 나는 잠을 잘 자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A3.35)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장로에게 물었다. “존자는 깨달았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장로는 저는 잠을 잘 자는 사람입니다.”라며 동문서답하듯이 말했다.

잠을 잘 자는 것과 깨달음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부처님도 잠을 잘 자는 사람이라고 했고 장로도 잠을 잘 자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왕자는 잠을 잘 이룰 수 없었다. 일반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왕자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왕자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진 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것이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아내도 여러 명이 있다.

왕자는 잠을 잘 못 이룬다. 아내가 많아 어느 아내와 자야 할지, 어디에 가서 자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질지 모른다. 또한 왕자는 늘 불안하기도 하다. 형제 중에 왕이 나오면 죽은 목숨이 되기 쉽다.

왕자가 왕이 되려면 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왕자는 정치를 잘 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사람들은 왕족과도 같은 삶을 산다. 특히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왕자처럼 잠을 잘 못 이룬다. 번뇌가 너무 많은 것이다.


왕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탐욕으로 인한 고뇌가 생겨나면, 그 탐욕으로 인한 고뇌로 불타면서 괴롭게 잠을 자지 않겠습니까?”(A3.35)

 

왕자가 잠을 잘 못 이룬 것은 번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탐욕으로 불탈 때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자명하다. 아내가 여러 명 일 때 오늘은 어느 아내와 자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번뇌가 될 것이다. 정적이 있어도 잠을 잘 못 이룰 것이다. 정적이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다. 또한 배신감 때문에 잠을 못 이룰지도 모른다. 분노의 불길에 휩싸였을 때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왕자와 같다.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불탈 때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번뇌가 많으면 잠을 잘 잘 수 없다.

 

왕자여,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탐욕으로 인한 고뇌로 불태우면서 괴롭게 잠을 자게 만드는, 그 탐욕이 여래에게는 버려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왕자여, 나는 잘 잤습니다.”(A3.35)

 


부처님은 나는 잠을 잘 자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라고 했다. 장로 역시 똑같은 말을 했다. 깨달은 사람은 한결같이 잠을 잘 자는 사람이다.

번뇌가 없기 때문에 잠에 잘 잔다. 탐욕의 불이 꺼졌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 것이고, 성냄의 불이 꺼졌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 것이고, 어리석음의 불이 꺼졌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 것이다.

법우 중에 잠을 잘 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침대에 눕자마자 5분도 안되어서 코를 골며 잔다. 그 사람은 깨달은 사람일까?

생각이 많아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들떠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너무 슬퍼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너무 기뻐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마음에 번뇌가 있으면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법우가 잠을 잘 자는 것은 번뇌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리석음의 불이 남아 있는 한 잠을 잘 자는 사람 중의 하나일 뿐이다.

잠을 잘 자려면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잠을 방해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소음이 있는 곳이라면 잠을 잘 이룰 수 없다. 잠을 자려 할 때 소리가 있으면 잠을 잘 잘 수 없다.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있다면 역시 잠을 잘 이룰 수 없다.

잠을 잘 자려면 시각, 청각 등 오감에서 멀어져야 한다.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는 것에서 멀리 있어야 잠을 잘 이룰 수 있다. 마치 선정에 드는 조건과 같은 것이다.

초선정에 드는 조건이 있다. 이는 감각적인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에서 떠난 뒤”(S45.8)라는 정형구가 말해준다.

선정에 들려면 가장먼저 감각적 욕망을 여의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오욕락을 말한다. 매혹적인 대상에 탐착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십악행을 말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마음이 하나로 집중될 수 있다.

번뇌가 많으면 집중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 한 대상에 집중하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깨달은 자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알아차림이 강하기 때문에 금방 제압된다.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서 일시적으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깨달은 자의 잠과 일반사람의 잠은 다르다. 각자의 수면은 번뇌가 없는 잠이고, 범부의 수면은 번뇌와 함께 하는 잠이다. 아무리 잠을 잘 자는 사람이라도 번뇌가 일어나면 잠을 잘 잘 수 없을 것이다. 눕자마자 5분 이내에 코를 고는 자도 탐욕의 불로 불 탈 때, 분노의 불로 불 탈 때 잠 못 이룰 것이다.

잠은 잠이 와야 자는 것이다. 잠이 오지도 않는데 잠을 잘 수 없다. 잠에서 깨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정스님에 따르면, 잠에서 깼을 때 더 이상 잠 자려 하지 말라고 했다. 잠을 청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설령 잠을 청해서 잠을 잔다고 할지라도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아 꿈속에서 헤매일 것이다.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잠을 잘 자기 위한 조건이 좋지 않다. 잠에서 깨면 더 이상 자려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차라리 글을 쓰는 것이 낫다. 엄지치기 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간다.

낮에 졸리면 낮잠을 잔다. 낮잠은 달콤하다. 아니 달콤하다 못해 황홀하다. 막 잠 들려고 할 때의 느낌을 말한다. 그런 상태에서 깜박 잠이 들면 개운하다. 어떤 경우는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몇 시인지 모를 때가 있다.

운전 중에 잠이 쏟아질 때가 있다. 그런 경우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면 개운하다. 운전을 하기 위한 새로운 힘이 솟는다. 세상 모르게 자고 났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잠을 잘 자고 나면 리셋 되는 것 같다. 전자제품이 초기화 되는 것과 같다. 마치 모든 번뇌가 다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일까 깊은 잠을 자고 났을 때 이곳이 어디인지 시간이 몇 시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단지 이를 아는 자각만 있을 뿐이다.

언젠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 몹시 당황했다. 잠들기 이전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기억이 사라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순간 겁이 났다. 그러다가 차츰 기억이 돌아 왔다. 열반도 이런 것 아닐까?

낮에 잠 들려 할 때 달콤하다 못해 황홀하다. 지게꾼이 낮에 한짐을 하고 난 다음 그늘에서 한 잠 청했을 때 왕권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탐욕과 분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왕자와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다. 선정의 행복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은 선정의 행복에 대해서 말했다. 선정의 즐거움은 감각적 즐거움과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 있는 음식을 즐겨도 선정의 잔잔한 즐거움과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왕자에게는 왕자의 행복이 있고 지게꾼에게는 지게꾼의 행복이 있다. 번뇌에 가득찬 왕자의 잠자리와 번뇌가 없는 지게꾼의 잠자리는 다른 것이다. 한짐 하고 난 다음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한 잠 잤을 때 그 행복은 달콤하다 못해 황홀할 것이다. 오늘 낮 나른한 오후에 지게꾼의 행복을 꿈꾼다.


2023-05-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