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부부이체일심(夫婦二體一心)이 되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3. 5. 17. 09:29

부부이체일심(夫婦二體一心)이 되려면
 
 
한자용어 중에 기시감(旣視感)이 있다. 이전에 언젠가 봤던 유사한 장면이나 느낌을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전생의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프랑스어로 데자뷰라고 한다.
 
오늘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기시감을 느꼈다. 날씨가 화창해서 걸어서 갔는데 안양7동 메가트리아 앞 건널목에서 시서화를 본 것이다. 버스정류장 유리벽에 시와 그림이 있는데 한참 쳐다 보았다.
 

 
요즘은 전철역이나 지하철역에서만 시서화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버스정류장에도 시서화가 있다. 어느 곳에서나 시서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매일 메가트리아를 가로질러 일터에 간다. 안양7동에 있는 메가트리아는 대단지이다. 거의 5천세대 가까이 된다. 예전에는 남의 아파트 가로질러 가기 싫어서 돌아서 갔다. 그러나 가로지르면 무려 7-8분가량 단축된다.
 
삼성 래미안 메가트리아 단지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런데 정류장에서 전에 보지 못하던 시서화를 발견했다. 아니 이전에도 보았을 것이다. 아마 주의기울여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쳤을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 시서화가 분명히 눈에 들어 왔다.
 
먼저 시를 보았다. ‘기척’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그대의 기척은
나에겐 기적이라
그대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는 세상을 살아가요.
그러니, 힘들 때면 울고
기쁠 때면 웃으며
기척 내주길.”
 
 

 
참으로 아름다운 시이다. 배우자가 있기에 나도 있음을 말한다. 험한 세상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 시는 누가 지었을까?
 
보드판 아래를 보니 ‘박인화’라는 이름이 보인다. 시인이 지은 것일까? 더 자세한 설명을 보니 ‘버스정류장 문학글판 공모선정작’이라고 되어 있다. 시인이 아닐 수도 있다. 일반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시인협회에서 자격증을 주어야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춘문예에 합격해야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시를 쓰면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보다는 화(畵)가 더 마음에 들었다. 노년부부가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기 좋았다. 백발의 노부부가 서로 껴안듯 걸어 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서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에 쓴 글이 있다. 바로 여기 안양7동 삼성레미안 메가트리아 단지 안에서 어느 노부부가 손잡고 간 것에 대하여 쓴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부 일심이체(一心二體) (tistory.com)’(2022-08-2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기시감을 느낀 것은 배경이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다. 남자노인은 백발이고, 여자노인은 모자를 쓴 것이 똑같다. 둘 다 뒷모습이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손잡고 걸은 것과 어깨동무하고 걸은 것이다.
 
이런 생각도 해 본다. “내가 작년에 올린 글과 사진이 작가에게 혹시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라는 착각을 말한다. 더구나 장소도 똑같다. 사진과 그림을 비교해 보면 너무나 닮아 있다.
 
버스정류장 시서화를 접했을 때 기시감을 느꼈다. 지나칠 수 없었다.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진과 함께 “우리도 저렇게 살아 보세.”라는 글을 남겼다.
 
연인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좋아 보인다. 중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좋아 보인다. 손을 잡았다는 것은 함께 가는 것을 말한다. 그것도 평생 함께 가면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노부부가 손잡고 걸었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작년 8월 메가트리아 단지 안에서 어느 노부부가 손잡고 걸어 가는 것이 좋아 보였다. 오늘처럼 이른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본 것이다. 너무 좋아 보여서 뒤쫓아 갔다. 그리고 몰래 촬영을 했다. 그리고 글을 남겼다. 그런데 바로 그 아파트단지 정류장에서 매우 유사한 시서화를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순간 강한 데자뷰가 왔다.
 
시서화를 보고 난 후 일터로 가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했다. 부부가 평생 해로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서 하나의 시서화가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요즘 이혼율이 높다. 죽을 때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요즘처럼 이혼율이 높은 시대에 노부부가 두 손 잡고 걷는 모습은 좋아 보인다. 좋아 보이다 못해 아름다워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다 못해 성스러워 보인다. 그것은 노년의 완성, 노후의 완성으로 보인다.
 
주변을 보면 홀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홀로 사는 것보다 함께 사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부부는 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최인호 작가 영상을 보았다. 소설 ‘길없는 길’에 대한 BTN영상물이다. 오래 된 것 같다. 작가는 작고 했지만 영상물은 남아서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작가 최인호는 아내와 노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친구와 술자리를 갖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모임이나 단체에 나가서 어울리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그것은 마음이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사이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무덤덤하게 살아 간다. 어떤 경우는 마지 못해 살기도 한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부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부사이에도 팔레토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80대 20의 법칙을 말한다. 행복한 부부는 20%에 지나지 않고 80%는 덤덤하게 또는 마지못해 사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자존심 싸움을 했으나 지금은 그만 두었다. 그 대신 친구처럼 살고자 한다. 작가 최인호가 말한 것처럼 아내와 대화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본다. 팔팔년 이후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그러나 이웃집남자나 이웃집여자처럼 살던 때도 많았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수는 없었다. 더구나 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불자가 아닌가!
 
부처님 가르침을 생활속에서 실천해 보고자 했다. 가장 영향을 준 경전이 있다. 맛지마니까야를 말한다. 맛지마니까야 ‘오염에 대한 경’(M128)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가르침에서 감명 받았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마련하고 남은 음식을 넣을 통을 마련합니다. 마을에서 탁발하여 맨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한다면 먹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풀이 없는 곳에 던지거나 벌레 없는 물에 가라앉게 합니다. 그는 자리를 치우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치우고 남은 음식을 넣는 통을 치우고 식당을 청소합니다. 그리고 음료수 단지나 세정수 단지나 배설물 통이 텅 빈 것을 보는 자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치웁니다. 만약 그것이 너무 무거우면, 손짓으로 두 번 불러 손을 맞잡고 치웁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그것 때문에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며 법담을 나눕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희들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M128)
 
 
이 가르침을 접하고 집에서 실천해 보고자 했다. 그것은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치우기로 요약된다.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하고, 이왕 하는 일이라면 잘 하는 것이다.
 
여기 집안에 종이가 떨어져 있다. 누가 치워야 할까? 예전에는 치우지 않았다. 누군가 치울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르침을 접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치우는 것이다. 탁발에서 먼저 온 사람이 자리를 깔고, 나중에 온 사람이 치우는 것과 같다.
 
맞벌이를 하고 있다. 부부가 맞벌이 할 때 밥 차려 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될 것이다. 먼저 집에 온 사람이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 나중에 온 사람은 치우면 된다. 경전에서는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M128)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온 자가 “식당을 청소합니다.”(M128)라고 했다.
 
생활속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다. 몇 년 되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가르침이 있다.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야 발견된 가르침은 동일한 경에 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M128)라는 가르침을 말한다.
 
승가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다. 출신도 다양하고 인종도 다양하다. 당연히 성향도 다양하다. 이런 승가의 모임에서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합해야 할 것이다.
 
승가는 화합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하면 화합승가를 이룰 수 있다.
 
부처님은 화합승가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는 경에서 아누룻다 존자가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저희들의 몸은 여러 가지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128)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면 부부화합도 이룰 수 있다. 이는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M128)라는 가르침이 결정적이다. 누구이든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따른다면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흔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변화를 강요한다면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사람을 변하게 하려면 먼저 자신이 변해야 한다. 자신이 변하면 상대방도 변하기 마련이다. 이는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M128)라는 가르침이 결정적이다. 이렇게 하면 몸은 서로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가 된다. 그래서 부부사이는 부부이체일심(夫婦二體一心)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혼자 사는 사람도 있고 같이 사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지 마음의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함께 사는 경우가 그렇다.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개성과 개성이 부딪치면 다투는 날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집이 지옥으로 변한다. 그렇다고 혼자 살 수 없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나와 버린다면 이 세상은 홀로 사는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홀로 살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 간섭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살면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둘이서 함께 살기가 쉽지 않음을 말한다. 이럴 때는 승가의 수행승처럼 살아야 한다.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이는 “세존이시여, 저는 여기 존자들을 향해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신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언어적 행위를 일으키며, 여럿이 있을 때나 홀로 있을 때나 자비로운 정신적 행위를 일으킵니다.”(M128)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자비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자비무적이라고 한다.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내었을 때 다툴 이유가 없다. 더구나 나의 마음을 버리고 상대의 마음을 따르면 한마음이 된다. 승가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부부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
 
부부화합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뢰를 쌓아 가야 한다. 한두번으로 되지 않는다. 마치 마일리지적립하듯이, 꾸준히 신뢰의 마일리지를 쌓아야 마음이 움직인다.
 
이번에 1박2일로 법우들과 인제에서 머물렀다. 나이가 70이 된 거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살 아래인 아내에게 존대말 하는 것을 들었다. 이에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 보았다.
 
거사는 직장에서 연애결혼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 후에도 존대말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전화통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 차이가 세 살 차이 난다. 아직까지 존대말을 써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상대방은 존대말을 사용한다. 부부는 평등한 관계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도 부부관계는 동등하다. 이렇게 본다면 당연히 서로 존대말을 해야 할 것이다.
 
여자는 존중 받을 때 삶의 의미를 느낀다고 말한다.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부사이에도 존중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서로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 목표는 존대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오늘 일터로 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시서화를 보았다. 그것은 노부부에 대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 황혼에 이르렀을 때 의지할 데는 배우자 밖에 없을 것이다. 자식도 의지처가 되지 않고 형제도 의지처가 되지 않는다. 배우자가 가장 강한 의지처가 된다.
 
시사화에서는 어깨동무를 한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같다.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다. “우리도 저런 모습으로 살거에요.”라고.
 
 
2023-05-1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