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3. 5. 21. 05:04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광주 오월은 우울합니다. 그러나 시월은 축제의 달입니다.” 이 말은 5.18 사적지 탐방 담당에게 들은 말이다. 5.18묘역으로 향하는 전세버스에서 들었다. 광주에서 축제는 10월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5 20일 김동수 열사 추모제에 다녀 왔다. 그리고 5.18 사적지 탐방을 했다. 지금 시각은 오후 6 16분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귀가중에 있다.

오늘 아침 광명역에서 KTX를 탔다. 두 시간도 안되어서 광주송정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조선대로 갔다. 모두 14개 역을 거쳤다. 남광주역에서 내려 15분가량 걸어 갔다.

 


조선대 캠퍼스는 장미축제 중이었다. 어제 5 19일부터 시작 되었다. 23일까지 진행된다.

 


장미꽃은 다양하다. 하이브리드 장미가 눈에 띈다. 컬러풀한 것이 특징이다. 일부로 변종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런데 붉은 장미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오월의 광주에서 붉은 장미는 환영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김동수 열사 추모제는 서석홀에서 열렸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김동수 열사와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의례의 시작은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으로 시작되었다.

 

 

 


김동수 열사는 운동권 출신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운동권에 몸 담은 증거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열사의 다이어리를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열사가 잠시 운동권에 몸담은 것은 80 4월의 일이다. 학원자율화추진위워회(학자추)에서 위원으로 활동했었을 때이다. 진모영 감독이 만든 영상물에 따르면 양희승 부상자회장의 증언이 결정적이다. 양회장은 구속되었을 때 한장의 사진을 봤다고 한다. 학자추 위원 30명이 찍은 사진을 말한다.

 


추모제는 1991년 추모비가 설립된 이래 매년 열리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는 열사의 생애발굴단이 발족되어 각종 증언을 채록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큐 영화로 나올 것 같다.

조선대 출신 윤영덕 민주당 의원이 말했다. “열사에게 오늘은 그렇게 살고 싶었던 내일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문법적으로 맞지 않지만 심정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본다. 이어서 도청에 들어간 것은 온전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요?”라고 말했다.

열사의 동생 김동채가 말했다. “5.18이 있어서 오늘날 민주주의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릴 것이다.

 


열사의 어머니가 영상물에서 말했다. 아직 돌아 오지도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한번 간 사람이 무슨 소용 있겄소?”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계속 기다렸던 것 같다. 죽은지 오래 되었어도 곧 문 열고 들어 올 것 같은 세월을 산 것이다.

영상물에서는 열사의 시신도 공개 되었다. 2021년 노먼소프 기자 기증 사진에 따른 것이다. 이제야 공개된 희귀사진이라 볼 수 있다.

시신은 아스팔트에 널부러진 채로 있다. 그런데 얼굴은 평온하다. 마치 낮잠을 자는 것 같다. 신체가 훼손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보살은 어디로 갔을까?

세월이 한참 흘렀다. 4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영상 속의 보살은 스물세 살 청년 모습 그대로이다. 보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장년이 지나 이제 노년기에 접어 들었다.

 

 


진모영 감독이 만든 영상물에서 마지막 장면에 여운이 있다. “사랑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제발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여성 스피커의 다급한 목소리이다. 도청에서 결사항전을 하고 있지만 곧 진압될 것이 뻔한 상황이기에 말한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 있다. 그것은 잊지 말아 달라라는 말과 기억해 달라라는 말이다. 역사적 사실이 잊혀질 때,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모를 것이다.

추모제를 다 보지 못했다. 추모제가 끝나기 10분 전에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전남도청에서 5.18 사적지 탐방 버스가 오후 1시에 출발하기 때문이다.

 


사적지 탐방은 동구청에서 진행했다. 5.18 주간에 신청자를 받아 매일 진행된다. 오늘 토요일은 C코스이다. 도청-전일빌딩245-계림동 최초 발포지-5.18묘역-전남대 정문-도청순이다.

 

 

 


전일빌딩은 도청 맞은 편에 있다. 10층으로 80년 당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커다란 빌딩자체가 온통 박물관 또는 자료실처럼 꾸며져 있다. 한마디로 5.18에 대한 모든 것을 보려면 전일빌딩245로 가야한다.

 


전일빌딩을 왜 전일빌딩245’라고 했을까? 처음에는 도로명 주소인줄 알았다. 그러나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245의 의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245는 총탄자국 숫자였던 것이다. 그것도 헬리콥터에서 쏜 것이다. M60으로 쏜 것이라고 한다.

 


전일빌딩 옥상에 갔다. 광주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청명한 날씨에 무등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푸른 산을 배경으로 백색의 조선대 캠퍼스도 손에 잡힐 듯 했다.

 

 


해설사는 그날 상황을 설명했다. “저기 보이는 것이 도청입니다.” “저 아래에 있는 것이 상무관입니다.” “저 분수대에서 사람들이 자유발언 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해설사는 겁나게라는 표현을 자주 했다. 이 말은 다른 해설자도 사용했다. 그래서 겁나게 먼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경상도라면 억수로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전일빌딩 옥상에서 무등산과 도청과 분수대를 한참 바라 보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바로 저 분수대에서 꽃잎처럼 떨어졌을 것이다. 장갑차를 몰고 가다가 저격 되어 고개를 떨구고, 그 다음 사람이 또 몰고 가다가 고개를 떨구고. 그렇게 꽃잎처럼 떨어졌을 것이다.

사적지 탐방 버스는 두 대 출발했다. 대부분 가족단위이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아이들도 많다. 진행자에 따르면 멀리 베트남에서 온 사람도 있고 중국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다음 코스는 계림동이다. 5.18 최초 발포지로 알려져 있다. 5 19일 계엄군 장갑차가 시위대에 포위되자 발포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시위대는 극도로 흥분하게 되었고 이후 전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코스는 5.18묘역이다. 광주 외곽에 있어서 20여분 걸린다. 도착하니 주먹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불교환경연대에서 준비한 것이다.

 


불교환경연대에서 주먹밥 행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후 2시까지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2시 넘어서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해모 운영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주먹밥은 꿀맛이었다. 참기름과 깨와 단무지가 버무려진 것으로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났다. 허기져 먹어서일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이들이 주먹밥 먹는 모습이 귀여웠던 것 같다. 불교환경연대 회원들은 사진에 담아 두고자 했다. 그때 5.18 때 먹던 주먹밥도 이런 맛이었을까?

 


단체로 분향했다. 70명이나 되는 대인원이다. 그래서일까 특별히 임을 위한 행진곡 방송을 틀어 주었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것 같다. 대표로 분향했다.

 

 


네 팀으로 나누었다. 내가 속한 팀은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해설사는 눈높이로 설명했다. 아이들과 문답식으로 대화한 것이다.

 


유영봉안소에 들어 가 보았다. 죽은 자의 사진과 위패가 있는 곳이다. 같은 날자에 죽은 자들이 많다. 특히 5 21일 죽은 사람들이 많다. 김동수 열사의 영정도 발견했다. 중앙 앞줄에 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다.

 


해설사는 아이들 위주로 설명했다. 이에 빠져 나와 묘역에 갔다. 가장 먼저 김동수 열사 묘역을 참배 했다.

 


김동수 묘의 비석 뒤를 보았다. 비석에는 이 땅의 밑거름이 되고자 스스로를 불사른 꽃다운 혼 여기 고이 잠들다.”라는 문구가 있다. 마지막 날 스스로 죽으러 들어간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이는 다름아닌 보살 정신이다.

 

 


비석 뒷면에 사연이 있었다.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보았다. 전재수의 묘가 있다. 나이가 대여섯 되는 아이 사진이다. 비석 뒷면을 보니 고이 잠들어라. 아버지가라는 문구가 보인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듯 하다.

박병규의 묘를 보았다. 정찬주 작가의 소설 광주 아리랑에도 등장하는 동국대 1학년 학생이었다. 마지막 날 도청에서 결사항전하다 죽었다. 비문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죽음을 앞두고 전화로 안심시키던 네가 주검으로 돌아 온 아침, 에미 가슴도 이나라 정의도 무너지더니 17년 세월 끝에 이제 너를 내가슴에서 보낼 수 있게 됐구나. 에미가

 

 



 

 

보는 김에 계속 보았다. 안병섭의 묘에는 너의 희생이 조국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였노라.”라고 쓰여 있다. 이금재의 묘에는 아들아! 서러워마라. 새날이 올 때까지 싸우리라. 엄마가라고 적혀 있다. 엄마가 대신 싸워주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 같다.

비문 뒷면에 글이 다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내용이 없는 백비도 많다. 더구나 찾는 이 없는 무덤도 많다. 방문한 흔적이 있는 꽃다발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윤상원-박기순 묘와 박관현 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묘 같다. 해설사도 여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묘에도 부익부빈익빈이 있는 것일까?

 

 


5.18
묘역을 끝으로 탐방을 마쳤다. 전남대를 탐방해야 하나 예약한 고속버스를 탑승하기 위해 포기했다. 이제 후기를 마친다. 가장 남는 말이 있다. 그것은 전일빌딩245에서 들은 영상물이다. 마지막 멘트에서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라는 말이다. 지금 시각은 9 26분이다.


2023-05-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