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왜 법보시가 재보시보다 더 중요할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3. 5. 1. 08:42

왜 법보시가 재보시보다 더 중요할까?

 

 

흔히 보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믿음으로써 보시하고 지계하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말한다. 그런데 불자들은 물질적 보시보다 가르침 보시가 훨씬 수승하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법보시가 재보시보다 더 중요할까?

 

자발적으로 보시하는 사람은 드물다. 평생 가도록 보시 한번 하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극 받으면 보시할 수 있다. 보시하면 커다란 과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접했을 때 보시할 수 있을 것이다.

 

법보시가 재보시보다 수승하다. 금강경에서는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장엄하는 보시를 한다고 해도 부처님 사구게 하나 알려 주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물질적 보시와 정신적 보시가 있다고 하면서 이 가운데 정신적 보시가 더 수승하다.”(A2.144)라고 했다.

 

법보시가 재보시보다 더 수승하다고 했다. 그래서 사구게 하나 더 알려 주는 것이 물질적 보시를 하는 것 보다 더 낫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법구경 주석에서는  “아나타삔디까가 기증한 승원이나 마하비하라(Mahavihara)와 같은 백천 사원과 황동으로 만든 궁전과 같은 처소의 보시보다도가르침을 담은 사행시 하나라도 대중 앞에 외우는 것이 더욱 고귀하다.” (DhpA.IV.74)라고 했다.

 

법보시가 재보시보다 더 수승한 명백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가르침의 전파와도 관련이 있다. 사구게 하나라도 알려 주었을 때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큼을 말한다. 그래서 주석에서는 법보시가 재보시보다 더 우월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착하고 건전한 행위를 하는 자들은 가르침을 듣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 달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가르침을 듣지 않은 자들은 한숟갈의 죽이나 한 주걱의 밥을 보시할 줄 모른다더구나 싸리뿟따와 몇몇 수행승들은 부처님이나 연각불이나 거룩한 님의 도움없이 혼자서 일겁동안 비가 내리면 그 빗방울 숫자도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통찰을 지녔어도 진리의 흐름에 듦의 경지를 성취할 수 없었다그들은 장로 앗싸지와 같은 거룩한 님[阿羅漢]이 선언한 가르침을 듣고 흐름에 듦의 경지를 성취할 수 있었다그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수행자의 경지를 얻을 수 있었다그래서 가르침의 보시가 가장 고귀한 보시이고 가르침의 보시가 다른 모든 보시를 이긴다.”(법구경 1753번각주)

 

 

법구경에서는 가르침의 보시는 일체의 보시를 이긴다.”(Dhp.354)라고 했다. 또한 가르침의 맛은 일체의 맛을 이긴다.” (Dhp.354)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법보시의 파급력이다.

 

많이 가진 자가 인색한 것은 보시에 대한 과보를 모르기 때문이다. 보시하면 반드시 선업과보를 받는 것을 알게 된다면 보시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보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 알아서 자발적으로 보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종종 TV에서 기부천사 이야기를 접하지만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럴 때 보시하면 공덕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맛지마니까야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M142)이 있다. 경에서는 축생에게 먹을 것을 주면 백배의 갚음이 기대된다고 했다. 심지어 도덕적이지 않은 일반사람에게 보시해도 천배의 갚음이 기대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덕적인 삶을 사는 일반사람들에게 보시하면 그 과보는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천억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M142)라고 했다.

 

도덕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오계를 어기는 삶을 사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람에게 만원을 주었을 때 천배의 과보가 기대된다고 했다. 만원을 주면 천만원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경에서는 일반사람들에게 보시하면 천억배의 과보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불우이웃에게 만원을 주었을 때 그 기대되는 과보는 얼마나 될까? 만원 곱하기 천억이 된다. 숫자로 표현하기 힘든 금액이다.

 

청정한 삶을 사는 수행자에게 보시한다면 그 과보는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는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갚음이 기대된다.”(M142)라고 했다.

 

보시를 하면 보시에 대한 과보가 있다. 이는 원인과 결과에 따른 것이다. 설령 이번 생에 과보를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보시 과보는 소멸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백번의 생을 거치면서 그것은 수명, 아름다움, 행복, 힘과 지혜를 부여하고 혼란을 제거한다.”(Pps.V.71)라고 했다.

 

보시에 대한 과보를 반드시 받는다면 누구나 보시할 것이다. 왜 그런가? 보시는 결국 자신에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장로는 보시하는 자에게 아유 반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 bala)”하며 축원한다. 이는 법구경에도 있는 구절로서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Dhp.109)이라는 말이다.

 

보시를 하면 반드시 물질적 과보만 기대되는 것은 아니다. 보시를 하면 장수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갖게 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더구나 건강하고 힘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이것 보다 더 좋은 과보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 가족등을 달 때나 법당에서 참배할 때 가족들을 위해서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Dhp.109)라며 발원한다.

 

불자들은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가족등과 같은 연등을 단다. 연등을 달면 절의 살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승가에 물질적 보시를 하는 것과 같다. 또한 보시에 대한 과보도 기대될 것이다.

 

청정한 삶을 사는 자에게 보시하면 그 보시에 대한 과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고 했다. 그 과보는 돈을 많이 번다든가 부자가 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 재벌과 같은 부자라도 천상의 삶만 못하다. 인간세상 사람들은 수명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 수명이 보장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은 업생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은 업이 언제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

 

천상에 사는 존재는 복과 수명이 보장되어 있다. 이는 인간에서 복과 수명이 보장되어 있지 않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그래서 보장된 수명대로 살다가 윤회한다.

 

천상에 사는 존재는 복과 수명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또한 천상의 존재는 용모가 아름답다. 그리고 힘이 있고 지혜도 있다. 이렇게 천상의 존재는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힘이 있고, 지혜가 있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은 보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는 재보시보다 법보시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니까야에서도 물질적 보시보다는 정신적 보시를 더 수승하게 여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법보시 없이 재보시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법보시를 해야 재보시할 수 있다. 사구게 하나라도 들어서 알았을 때 재보시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보시에 대한 과보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재보시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법구경에서는 가르침의 보시는 일체의 보시를 이긴다.”(Dhp.354)라고 했을 것이다.

 

 

2023-05-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