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디가니까야 대장정 7개월 보름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1. 14:43

디가니까야 대장정 7개월 보름

 


디가니까야를 다 읽었다. 작년 2022년 10월 16일부터 읽기 시작했다. 오늘 2023년 6월 1일 마침내 7개월 보름만에 대장정을 마쳤다.

 


니까야 읽기를 장정으로 비유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연안대장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고난의 행군이 연상된다.

대장정(大長程)의 본래 의미는 "멀고먼 길을 감"의 뜻이다. 예를 들어 "그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6개월간의 북극 탐험 대장정에 들어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또한 "방학을 맞아 그녀는 해남의 땅끝 마을에서 임진각에 이르는 국토 순례의 대장정에 참여하기로 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오토바이로 대륙을 횡단한다. 이것도 대장정일 것이다. 멀고도 힘든 여정이다. 그런데 대장정이 반드시 육체적 노고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장정의 의미에 대하여 "어떤 일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라고 말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가니까야읽기 대장정을 떠날 때 목적이 있었다. 그때 출발소감에 대해서 "하나는 완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정을 보기 위한 것이다."(디가니까야 대륙 대장정을 떠나며, 2022-10-16)라고 써 놓았다. 완독과 교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맛지마니까야와 디가니까야를 읽었다. 머리맡에 놓고 읽었다. 틈만 나면 열어 보았다. 진도는 많이 나가지 않았다.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새기면서 나가고자 했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읽을 때는 두 개의 형광메모리 펜을 준비했다. 새겨야 할 구절은 노랑형광메모리 펜 칠을 했다. 교정이 필요한 부분은 빨강메모리 펜 칠을 했다.

두 니까야는 온통 메모리 펜 칠로 울긋불긋 하다. 두 니까야를 다 보았으니 이제 전재성 선생에게 가져다 주어야 한다. 맛지마-디가 통합본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교정 본 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경전을 아무 목적없이 보는 것과 목적을 가지고 보는 것은 다르다. 교정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보았을 때 자세가 달랐다.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히 다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교학적 또는 교리적 지식이 축적된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디가니까야는 합본으로 1,557쪽에 달한다. 모두 34경으로 되어 있는데 긴 길이가 특징이다. 길이가 길다 보니 소설적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신심을 내게 하기에 충분한 웅대한 소설적 구성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맛을 알 수 있다.

디가니까야 읽기를 하면서 수많은 글을 썼다. 새겨 두고 싶은 구절이 발견 되었을 때 이를 글로 남기고 싶은 욕구가 발동된 것이다. 그러나 글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새겨 두고 싶은 것은 표시해 두었다. 글을 쓰다가 관련 구절이 떠 올랐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또 하나는 나중에 한번 더 보고자 할 때 복습하기 위한 것이다.

매일 경전을 읽고 있다. 하루도 빠진 날이 없이 읽고자 한다. 어쩌다 읽지 못한 날이 있으면 혓바늘이 돋는 것 같다. 경전을 펼치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경전은 든든한 의지처이다. 경전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속이 상할 때 경전을 펼치면 위안이 된다. 기쁠 때 경전을 열면 안정이 된다. 어느 경우에서나 경전은 삶의 위안을 주는 의지처이다.

경전을 읽다 보면 다른 책을 읽을 수 없다. 시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이라도 경전 앞에서는 사견에 불과하다. 어떤 훌륭한 서양철학도 경전 앞에서는 세속철학에 지나지 않는다.

 


사과는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알 수 있다. 경전도 읽어 본 사람이 읽는 맛을 알 수 있다. 대개 니까야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 니까야를 비난한다. 초월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비판적인 학자들 글만 보고서 재단하려 한다. 그러나 읽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읽어도 필요한 부분만 읽는 다면 선천적으로 눈 먼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

경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 읽듯이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루밤 사이에 또는 며칠만에 다 읽어서는 안된다. 진리의 말씀은 새기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다 보니 보통 반년 이상 걸리는 것 같다. 디가니까야는 7개월 보름 걸렸다.

디가니까야라는 대장정을 마쳤다. 마치 걸어서 대륙을 횡단한 것 같다. 다음은 어떤 경전을 읽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상윳따니까야를 읽기로 했다.

다음 대장정은 상윳따니까야 대륙 대장정에 나선다. 그런데 상윳따니까야는 맛지마나 디가보다 몇 배 방대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1년 이상 걸릴지 모르겠다.

 


평생동안 읽을 경전이 있어서 다행이다. 상윳따니까야를 읽고 나면 쿳다까니까야를 읽을 것이다. 쿳다까니까야는 법구경, 숫타니파타 등 15개 경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상윳따니까야 보다 훨씬 더 방대하다.

평생 읽을 거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남들은 노년을 지루하게 보낸다는데 경전읽기 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 늙어 죽을 때까지, 임종의 그 순간까지 읽어야 할 경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도움을 주는 친구.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같은 친구,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친구,
연민할 줄 아는 친구.

이러한 네 친구가 있다고
현자라면 그 가치를 알고서
어머니가 친자식을 대하듯,
성실하게 섬겨야 하리.
계행을 갖춘 현자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빛납니다.

벌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부지런히 재물을 모으면,
개미집이 쌓아올려지듯
재물이 모여 쌓아집니다.

이처럼 재물을 모아서
재가자는 가문에 유익하게 사용합니다.
재물은 네 등분으로 나누는 것이 좋다.
그는 실로 이렇게 친구들을 결속합니다.

한 몫으로는 생계를 누리고
두 몫으로는 사업에 쓰고
남은 네 번째 몫으로는 저축을 합니다.
재난의 시기에 대처해야 합니다."(D31.17, 좋은 친구)

2023-06-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