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즐기는데 한계가 없는 도박

담마다사 이병욱 2023. 4. 12. 09:05

즐기는데 한계가 없는 도박


고요한 새벽이다. 대로변이라 종종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상대적으로 자동차 소리는 작다. 요즘 자동차 성능이 좋아서일까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새벽에는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다. 행선을 하든 좌선을 하든 집중이 잘 된다. 집중이 잘 되니 사띠도 잘 된다. 방금 전 일도 떠오르고 오래 전 일도 떠오른다. 대개 착하고 건전한 것이다. 당연히 담마에 대한 것도 있다.

요즘 의무적으로 경전을 읽고 있다. 머리맡에 디가니까야가 있어서 틈 날 때마다 읽고 있다. 천천히 읽는다. 한두페이지가 고작이다. 진리의 말씀을 소설 읽듯이 읽을 수 없다. 하나씩 새겨서 읽다보니 진도가 더디다.

수많은 경을 읽었다. 모두 새겨야 할 내용이다.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모두 기억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새벽이 되면 떠 오르는 것이 있다. 가장 가까운 기억이 떠오른다. 어제 저녁에 봤던 가르침이 그렇다.

니까야에는 부처님 근본 가르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가자의 삶에 대한 가르침도 있다. 디가니까야 31번경 '씽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도 그 중의 하나이다. 여러 가르침 중에 도박에 대한 것이 있다.

"1)이기면 원한을 낳고,
2)지면 잃은 것을 한탄하고,
3)현재의 돈을 낭비하고,
4)모임에서 진술의 효과가 없으며,
5)친구와 동료의 경멸을 사고,
6)'도박꾼이다. 이런 자는 아내를 부양할 자격이 없다.'라고 결혼 상대로 원하는 자가 없습니다."(D31.10)

도박의 폐해에 대하여 여섯 가지로 요약되어 있다.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함 없는 것 같다.

흔히 예로부터 도박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도 망하고 집안도 망하는 것이다. 현대에도 도박에 대한 폐해에 대한 사례는 많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여섯 가지 폐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왜 도박을 할까? 일확천금을 노리며 도박을 한다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주식이나 경마를 보면 알 수 있다. 로또도 도박에 들어간다.

주식이 왜 도박일까? 그것은 도박적 요소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식을 건전한 투자라고 하더라도 큰 것 한방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면 경마나 로또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주식을 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손절했다. 거의 5년 가량 주식에 빠졌던 것 같다. 아니 미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재산을 건 것은 아니다. 몇 천만원 깨 먹은 것 같다.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이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했다. 그러나 통제가 되지 않았다. 욕망이 통제되지 않은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것 해도 될 것 같았다. 주식을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국가가 인정한 도박장이었던 것이다.

 


주식에서 손 뗀지 18년 되었다. 가지고 있는 돈이 다 털렸을 때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도박판에서 판돈이 없으면 일어나야 하는 것과 같다.

주식은 탐욕이다. 인간의 탐욕이 투영된 것이 주식이다. 이렇게 본다면 도박은 탐욕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런데 탐욕은 갈애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재미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도박은 재미가 없으면 하지 않는다. 이는 도박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밤새도록 할 수 있는 것이 도박이다.

도박의 범주는 넓다. 화투놀이나 카드놀이도 도박에 들어간다. 모임에서 심심풀이로 화투나 카드를 해도 도박으로 보는 것이다. 내기를 하는 것도 도박이다. 빠친코를 하는 것도 도박이다. 국가에서 공인한 경마를 하는 것도 도박이고 주식을 하는 것도 도박이다. 공통적으로 즐기는 데 있다.

사람들은 즐기며 산다. 먹는 것도 즐긴다. 이 세상에 먹는 즐거움이 없으면 어떤 즐거움으로 살아갈까? 그러나 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받아 들이지 못한다. 과식하면 배탈이 난다. 즐기자고 먹던 것이 괴로움이 된다. 술도 마찬가지이고 섹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느 한도가 지나면 더 이상 즐기지 못한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계를 벗어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도박이다.

도박은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다. 도박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한번 중독되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 판돈이 다 떨어지기 전에는, 손목을 자르기 전에는 계속하는 것이 도박이다.

도박은 마약이다. 마약을 왜 하는 것일까? 도박의 원리와 같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 음주, 섹스 등 감각을 즐기는 것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지만 마약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이다.

"형상, 소리, 냄새,

감촉, 사실의 모든 것들
원하는 것, 사랑스런 것, 마음에 드는 것,
존재라고 하는 모든 것.

그것들은 하늘사람과 인간의 세상에서
즐거운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들이 소멸될 때가 되면
그들은 그것들을 괴로운 것이라 여기네."(S35.136)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식도락을 즐겨도 배 부르면 그만 두어야 한다. 과식하면 배탈난다. 과음하면 그 다음날이 괴롭다. 모든 도락이 그렇다.

음식, 음주, 섹스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는 마약과 도박이 있다. 마약과 도박은 즐기는데 있어서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밤새도록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래서 마약과 도박이 무서운 것이라고 한다.

마약과 도박은 중독성이 있다. 한번 빠지면, 한번 미치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그것은 즐기는데 있어서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밥은 한끼 먹고 나면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섹스는 한번 하고 나면 더 이상 하기 힘들다. 그러나 마약과 도박은 열번, 백번, 천번 하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 있다.

도박은 혼자 하지 않는다. 반드시 동료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악한 친구'라고 했다. 악우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여섯 가지 악한 친구를 사귀는 것의 위험이 있습니다. 1)어떤 도박꾼이든지, 2)어떤 도락가이든지, 3)어떤 음주가이든지, 4)어떤 사기꾼이든지, 5)어떤 협잡꾼이든지, 6)어떤 폭력배이든지, 그들이 그의 친구가 되고 그의 동료가 됩니다."(D31.11)

그 사람을 알려거든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어울리는 대상이 도박꾼, 도락가, 음주가, 사기꾼, 협잡꾼, 폭력배라면 이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악한 친구 중에는 도락가가 있다. 어떤 도락가를 말하는 것일까? 주석에 따르면 "여자도락, 식도락, 과자도락, 금전도락"(Smv.947)이 있다고 했다.

도락가라 하여 반드시 식도락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도락도 있고 과자도락도 있고 금전도락도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붙인다면 여행도락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에 대해서 악한 친구라고 했다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감각을 즐기는 자들에 해당된다. 그것도 한두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습적이다.

식도락을 즐기는 자는 악한 친구이다. 여자를 밝히는 자도 악한 친구이다. 이런 친구와 어울렸을 때 비난 받는다. 공통적으로 게으른 자들이다.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이다.

게으른 자들은 일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하지 않는 데는 핑계가 많다는 것이다.

"너무 춥다고 일을 하지 않고, 너무 춥다고 일을 하지 않고, 너무 덥다고 일을 하지 않고, 너무 이르다고 일을 하지 않고, 너무 늦다고 일을 하지 않고, 너무 배고프다고 일을 하지 않고, 너무 배부르다고 일을 하지 않습니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여섯 가지 게으름에 빠지는 것의 위험이 있습니다."(D31.12)

감각을 즐기는데 미쳐 있는 자들은 일하지 않을 것이다. 일하는 즐거움 보다 감각을 즐기는데 더 열중했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래서 도박을 즐기는 자에게는 "아내를 부양할 자격이 없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즐길거리를 찾는다. 마음은 늘 대상에 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형상을 즐기고 소리를 즐긴다. 무엇보다 감각을 즐긴다. 맛보다 강렬한 것은 없다. 식도락가가 되는 이유이다. 신체적 감촉을 즐긴다면 여자도락이 될 것이다. 여행을 즐긴다면 여행도락이 될 것이다.

감각을 즐기는데 남녀노소가 없다. 빈부귀천도 없다. 부자에게는 부자의 즐거움이 있고 빈자에게는 빈자의 즐거움이 있다. 부자가 한우와 와인을 즐길 때 빈자는 삼겹살에 소주를 즐긴다.

부자는 예산에 있어서 한계가 없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빈자와 달리 예산을 초과해서 즐긴다. 마약 같은 것이다. 마약은 밥을 백끼, 천끼 먹는 것과 같다. 재벌 2세나 3세가 마약에 빠지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부자나 빈자나 공통적으로 도박을 즐긴다는 것이다.

도박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벗어난 것이다. 도박은 무한대로 즐길 수 있다. 아무리 즐겨도 한계가 없다. 식도락이나 여자도락 보다도 더 강렬한 것이다. 이렇게 도박은 즐기는데 한계가 없기 때문에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을 막론하고 즐긴다

도박의 끝은 무엇일까? 패가망신이다. 자신도 망하게 하고 집안도 망하게 한다. 그럼에도 끊지 못하는 것은 마약처럼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주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은퇴해서 소일거리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다. 그들은 주식에서 승리했을까?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데 패배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그런가? 주식은 도박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국가에서 공인한 국민도박이다. 부처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면 "주식을 하지 말라. 주식하면 악작죄가 된다."라고 했을 것이다.

건전한 투자는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홈트레이딩 시스템을 깔아 놓고 단타매매에 열중한다면 도박하는 것과 같다. 도박하는 사람에게는 딸을 주지 말라고 했다. 결혼 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결혼 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자가 어디 주식도락하는 사람뿐일까? 식도락, 여자도락(또는 남자도락), 과자도락, 여행도락도 해당될 것이다. 공통적으로 게으른 자들이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자들이다. 그들은 "어디에 춤판이 있을까?" "어디에 음악이 있을까?"라며 밤거리를 배회한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욕계에 태어났으니 감각을 즐기는 삶을 살아 간다. 감각을 즐기는데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이 따로 없다. 틈만 나면 즐긴다. 이런 인간에 대해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를 테면, 파리들이 막대나 바구니로 옮겨질 때에우리의 삶은 항상하거나 견고하거나 영원하다.’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 파리들은 어디에 머물든지 그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M127)

부처님은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파리떼와 같다고 했다. 항상 여섯 가지 감각대상에 마음이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다름 아닌 갈애에 따른다.

지금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갈애로 인한 것이다. 어떤 갈애인가?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를 말한다.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같은 갈애를 말한다. 그래서 집성제를 보면난디라사하가따 따뜨라 따뜨라비난디니(nandirāgasahagatā tatra tatrābhinandinī)(S56.11)라고 했다. 이 말은쾌락과 탐욕을 갖추고 여기저기에 환희하는 존재"를 뜻한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파리떼같은 것인지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다. 단지 감각을 즐기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부자나 빈자나쾌락과 탐욕을 갖추고 여기저기에 환희”(S56.11)한다고 했는데, 이런 삶에 대하여 "파리들은 어디에 머물든지 그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M127)라고 한 것이다.

감각을 즐기는 삶은 파리떼와 같은 삶을 사는 것과 같다. 아무생각없이 감각만을 즐기는 삶을 살았을 때 그 끝은 어디일까?  이에 대하여 집성제에서는 "야양 딴하 뽀노바위까(yāya tahā ponobhavikā)"(S56.11)라고 했다. 이 말은 "미래의 존재를 일으키는 갈애이다."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분명하다. 감각을 즐기면 윤회함을 말한다. 집성제에서 뽀노바위까(ponobhavikā) pono(다시) bhavikā(존재하게 하는 것)의 합성어이다. 이는 '다시 존재하게 하는 것', 또는재생을 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taha)가 있는 한 다시 태어남(jāti)을 유발하여 윤회하게 하는 것이다.

인생을 즐기는데 남녀노소, 빈부귀천, 승속이 따로없다.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즐기고,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즐긴다.

아이들이 모래 장난하는 것도 나름대로 즐기는 것이다. 노인들이 소일거리로 화투치는 것도 나름대로 즐기는 것이다. 모두 미래 재생이 되는 삶이다.

아무 생각없이 즐기는 삶을 살았을 때 파리떼와 같다. 그래서 "파리들은 어디에 머물든지 그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M127)라고 했을 것이다.


2023-04-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