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스리랑카 성지순례기 34, 두려움과 공포의 강제 코끼리 사파리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2. 14:50

스리랑카 성지순례기 34, 두려움과 공포의 강제 코끼리 사파리
 
 
성지순례라고 하여 반드시 성지만 가는 것은 아니다. 남는 시간에 관광도 하고 관람도 한다. 작년 12월 스리랑카 순례도 그랬다.
 
스리랑카에서 현지시각은 2022년 12월 16일 금요일 아침이다. 순례팀은 누와라 엘리야 시에 있는 삼파트(Sampath) 호텔을 나섰다.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쌀쌀했다. 긴 팔 옷에 겉옷을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그러나 날씨는 맑았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나는 알 수 없다. 여행을 기획한 김형근 선생과 혜월스님은 알고 있다. 운전기사겸 가이드 가미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그뿐이다.
 

 
차에는 네 명이 탔다. 일제 혼다 차이다. 차종을 보니 ‘FIT SHUTTLE’ 이다. 짐칸도 넓직 하다. 일본차가 그렇듯이 운전석이 우리와 다르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것이다. 아마 스리랑카가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문화 유산을 물려 받은 것 같다.
 
혼다승용차 앞좌석에는 혜월스님이 탔다. 뒷좌석에는 김형근 선생과 내가 탔다. 운전석 뒤가 김형근 선생 자리이고, 혜월스님 뒤가 내 자리이다. 앞에 두 사람은 스리랑카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운전 중에 자주 대화한다. 그들은 스리랑카 말로 하다가 영어로 말하기도 한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스리랑카 말과 영어를 섞어 쓰는 것 같다.
 

 
운행 중에 끊임없이 말이 오간다. 한국인이 두 명이기 때문에 한국말로 떠들 때도 있다. 혜월스님은 한국말도 잘하기 때문에 세 명이서 한국말을 할 때도 많다. 이럴 때는 운전기사 가미니는 침묵한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지금 이 순례기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목적지는 키히리 베하라(Kihiri Vehara)였던 것이다. 스리랑카 동남부 해안 가까이에 있는 사원이다. 혜월스님이 출가했던 절이라고 한다.
 

 
누와라 엘리야에서 키히리 베하라까지는 꽤 먼거리이다. 도중에 험준한 산악지대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코끼리가 출몰하는 국립공원도 거쳐야 한다. 구글지도로 확인해 보니 140키로에 3시간 32분 걸린다.
 
스리링카 순례 5일째 되는 날이다.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금요일에 이르렀다. 이제까지 볼 데는 다 본 것 같다. 문화삼각벨트라 불리우는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캔디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순례에서 거의 90프로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는 시간은 느긋하게 관람하거나 관광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다소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스리랑카는 나라가 남한의 삼분의 이 정도 되는 면적이다. 그러나 매우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아누라다푸라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평선이 펼쳐져 있다. 중부 고원지대에 오자 험준한 산악지형이 펼쳐 졌다. 높이가 2천미터가 넘는 산이 있다. 누와라 엘리야 시의 고도는 무려 1868미터에 이른다. 그래서일까 스리랑카에서 가장 서늘한 곳이다.
 

 
엘라로 가는 길에 장쾌한 협곡을 보았다. 지대가 높아서일까 산정에는 나무가 없다. 나무 키가 작은 관목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첩천산중이다. 산이 여러 개 겹쳐 있어서 아스라히 보인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이다.
 

 
왕복 2차선 도로는 이제 내리막길이다. 내리막만 있는 길에 폭포가 보였다. 승용차는 여기에서 쉬었다. 바로 이런 것이 승용차로 여행하는 묘미일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차를 멈추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폭포는 여러 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급격하게 흐르다 보니 폭포처럼 보이는 것이다. 주차장도 갖추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많다. 이곳이 관광명소인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촬영한 사진과 구글지도를 이용해서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해 보았다.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어느 곳인지 알아 내었다. 그곳은 라바나 폭포(Ravana Falls)였던 것이다.
 

 
 
라바나 폭포는 엘라에 있다. 엘라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고원에 있어서일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길 다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곳곳에 폭포가 있다. 순례팀이 잠시 쉬어간 라바나 폭포도 관광명소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라바나 폭포는 고원지대 끝을 알리는 것 같다. 계속 내리막길로 내려 가자 평원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스리랑카 농촌 모습이다. 공장이 없어서 하나도 오염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개발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풍경이다.
 
어느 여인은 맨발로 다녔다. 국도 아스팔트 포장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었다. 시골이기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옛날에는 맨발로 다녔을까? 아낙네가 맨발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놀라워 보였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 사람처럼 보인다. 외국인의 눈에는 모두 다 똑같이 보이는 것이다. 대체로 피부가 가무잡잡한 것이 특징이다. 승용차 앞 좌석에 탄 두 명의 스리랑카 사람들도 그렇다. 그런데 혜월스님에 따르면 스리랑카에도 피부가 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에도 백인이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혜월스님에 따르면 스리랑카 동남부에 사는 사람 중에는 피부가 흰 사람이 있다고 했다. 지금 가고 있는 지역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정말로 피부가 흰 사람을 보았다. 엘라를 빠져 나와 키히리 베하라로 가는 길에 본 어느 중년의 여인의 피부는 분명 희게 보였다. 가무잡잡한 스리랑카 사람들 피부와는 달랐다. 스리랑카 동남부에는 백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순례팀은 키히리 베하라를 향해 갔다. 그런데 키히리 베하라는 얄라(Yala) 국립공원 지역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얄라 국립공원은 크기가 얼마나 될까?
 

 
얄라국립공원은 스리랑카 동남부 해안에 있다. 그 크기는 979제곱킬로미터이다. 이 면적은 얼마나 큰 것일까? 이는 서울의 면적이 605제곱킬로미터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도시 몇 개를 합한 것만큼 큰 넓이를 가진 국립공원임을 알 수 있다.
 
키히리 베하라를 가려면 얄라 국립공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얄라에 들어 가기 전에 코끼리를 만났다.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얄라 국립공원에서는 사파리투어가 있다. 공원 내에서는 돈을 지불하고 코끼리 등을 볼 수 있다. 이는 안전하게 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공원 밖에서 코끼리가 출몰했을 때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엘라에서 키히리 베하로 가기 위해서는 B35번 도로를 타야 한다. 그런데 혜월스님에 따르면 이 도로에는 코끼리가 자주 출몰한다고 했다. 아마 스님이 키히리 베하라에서 출가 했기 때문에 이 도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전기사 가미니는 이 길이 처음이라고 했다.
 

 
도로에서 코끼리를 만나자 무척 당황했다. 운전기사도 당황한 것 같다. 다만 혜월스님만 평온했다. 스님은 집채만한 코끼리가 덮칠 듯한 기세임에도 “큰스님 가는데 길을 비켜라.”고 말했다.
 

 
도로에서 코끼리를 만나자 온갖 상상력이 발동되었다. 만에 하나 코끼리가 차를 들이 받는다든가, 차를 뒤집어 엎었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공포가 일어났다. 그러나 혜월스님은 태연했다. 혜월스님은 “코끼리가 입장료를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첫번째 코끼리를 만났을 때 코끼리가 자리를 비켜 주기를 기다렸다. 다른 차들도 기다렸다. 그러나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다.
 
운전기사 가미니는 돌파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접근하다가 가까이 이르렀을 때 속도를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코끼리와 조우한지 12분만에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도로에서 계속 코끼리를 만났다. 이에 대하여 그날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겼다.
 
 
두 번째 코끼리를 12시 39분에 만났다. 이번에는 신속히 통과 했다. 코끼리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흥분하지 않은 상태라면 천천히 접근하다가 가까이 가서는 신속히 빠져 나와야 한다.
 
이제 코끼리 지대를 다 빠져 나간 것일까? 또 코끼리가 도로에 있다. 세 번째 코끼리를 12시 40분에 통과 했다. 네 번째 코끼리는 12시 46분에 만났다.
다섯 번째 코끼리를 12시 52분에 만났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걸어 오는 것이었다. 차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코끼리가 옆으로 물러서자 그 틈새를 이용해서 재빠르게 빠져 나왔다.”(2022-12-16)
 

 

 
코끼리를 모두 다섯 번 만났다. 코끼리를 만날 때 마다 긴장 되었다. 코끼리가 차를 뒤집어 엎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얄라 국립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코끼리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다. 더 이상 야생 코끼리가 출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끼리 사파리 투어를 백프로 한 것 같다. 아니 그 이상이다. 왜 그런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사파리가 어디 있을까? 돈 주고도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사파리 아니었을까?
 
키히리 베하라 가는 길에, 얄라 국립공원 가는 길에 코끼리를 만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야생 코끼리 출몰지역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키히리 베하라 사원에 가려면 이 길로 가야 할 수밖에 없다. 길이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원 가는 길에 코끼리는 피할 수 없었다. 집채만한 코끼리가 길을 가로 막고 있을 때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무려 다섯 번씩이나 두려움과 공포가 반복되었다. 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 경우가 있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지 괴로움을 수반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의 만남에 따른 괴로움이다. 이럴 때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갈 때는 간다고 알아야 한다. 행복할 때는 행복하다고 알아야 한다. 괴로울 때는 괴롭다고 알아야 한다. 단지 정신과 물질의 작용뿐이라고 알아야 한다. 호랑이에게 잡아 먹힐 때도 정신과 물질의 현상을 관찰한다면 잡아 먹히는 순간에 아라한이 될 것이다.
 
 
그는 몸에 대해 몸을 안으로 관찰하거나, 몸에 대해 몸을 밖으로 관찰하거나, 몸에 대해 몸을 안팍으로 관찰한다. 또는 몸에 대해 생성의 현상을 관찰하거나, 몸에 대해 소멸의 현상을 관찰하거나, 몸에 대해 생성과 소멸의 현상을 관찰한다. 단지 그에게 순수한 앎과 순수한 새김이 있는 정도만 ‘몸이 있다’라는 새김이 이루어진다. 그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와 같이 몸에 대해 몸을 관찰한다.”(D22.6)
 
 
몸만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똑 같은 방식으로 느낌, 마음, 사실에 대해서도 관찰한다. 관찰하여 생성과 소멸을 본다.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났다면 원인이 있어서 일어났을 것이다. 일어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코끼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났을 때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도 함께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망상이다. 망상을 망상으로 알았을 때 더 이상 두려움과 공포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단지 현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두려움과 공포는 집착에 따른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는 미래에 대하여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을 때 혜월스님은 태연했다. 아니 농담까지 했다. “코끼리야 비켜라, 큰 스님 왔다.”라든가, 코끼리가 국립공원 입장료 받으려나 봅니다.”라고 농담을 한 것이다.
 
코끼리를 보고 겁을 먹었다. 이런 것을 보니 나의 경계를 시험하는 것 같아 보였다. 경계에 부딪치니 형편없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그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신, 수, 심, 법에 대한 새김만 있다면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음을 말한다.
 

 

 
깨어 있으면 두렵지 않다. 항상 새기고 있을 때, 항상 사띠하고 있을 때 두려울 것이 없다, 호랑이가 물어갈지라도. 스리랑카에서 두려움과 공포의 강제 코끼리 사파리를 했다.
 
 
2023-06-02
담마다사 이병욱